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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먼 집 (2015) Dear Grandma 평점 9.4/10
할머니의 먼 집 포스터
할머니의 먼 집 (2015) Dear Grandma 평점 9.4/10
장르|나라
다큐멘터리
한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16.09.29 개봉
92분, 전체관람가
감독
(감독) 이소현
주연
(주연) 박삼순, 장춘옥, 이소현
누적관객

아흔 셋,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가 자살을 시도했다.

취업준비를 하며 보내던 어느 날,
나의 가족이자 오랜 친구인 할머니가 먼 곳으로 떠나려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직 나는 할머니를 보낼 수 없어 곁에서 지키기로 했다.

"할머니 죽으믄 나도 못 본디 괜찮애?"

무서우면 할머니를 가장 먼저 찾던 아이,
할머니가 해주는 옛날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던 아이,
이제 훌쩍 자란 나는 어느새 작아진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할머니, 내가 영화 열심히 찍을 테니까 다 보고 돌아가셔. 그 전에 돌아가시면 안돼”

[ ABOUT MOVIE ]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제8회 프로젝트 마켓’ 관객상 수상!
언론과 관객의 잇따른 극찬과 호평! 전세대가 공감하는 인생 다큐멘터리 탄생!


<할머니의 먼 집>은 2015년 겨울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 영화제 관객들과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일찌감치 화제작으로 등극했다. 이후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제8회 프로젝트 마켓’에서 관객상과 KB국민카드상을 수상하였으며,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16회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초청 상영되었다. 뿐만 아니라 ‘2016 천안여성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제17회 제주여성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되어 상영을 앞두고 있다. 할머니와 손녀의 가슴 따뜻해지는 사랑스러운 일상을 통해 삶과 죽음, 가족의 소중함 등 보편적이면서도 누구나 공감 가능한 주제에 대해 화두를 제시하며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한다. 한국독립다큐멘터리 시장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례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흥행 바톤을 이어받아 전 세대를 사로잡는 인생 다큐멘터리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아흔 세 살의 할머니는 왜 자살을 택했을까?
할머니 손에서 자란 손녀의 눈으로 바라본 할머니의 일상!
가장 평범한 일상에서 포착한 소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아흔 세 살의 할머니는 자신이 모아둔 돈 30만원을 화장대 위에 두고, 병원에서 받은 수면제를 모아 자살을 시도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의 자살 소식은 손녀에게 청천벽력 같았다. 언제나 항상 내 곁에 있을 줄 알았던, 바쁜 일상 속에 잊고 지내던 가족을 향한 애틋한 감성과 더불어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만드는 영화 <할머니의 먼 집>은 삶의 기쁨과 슬픔, 나이 듦 등 ‘노년의 삶’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와 어딘가 닮아 있다. 더불어 ‘할머니의 집’이 주는 소박하지만 정다운 마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족을 향한 유쾌하면서도 따스한 감성을 안겨준다.




[ 제작일지 ]


2013년 여름


취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여느 평범한 취준생들처럼 나는 토익학원에 다니면서 매일 이력서를 썼고, 가끔은 운 좋게 최종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귀하와 같은 훌륭한 인재와 함께하지 못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할머니를 뵈러 화순에 가자고 했다. 며칠 전, 할머니가 수면제를 모아 자살을 시도하셨고, 오늘에서야 병원에서 깨어나셨다는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엄마 배에서 나와 눈을 떴을 때부터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어디를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면 언제나 할머니부터 찾았고, 할머니랑 1㎝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 했었다. 할머니가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를 떠나려 하셨다니. 믿기지 않았다.

화순에 내려간 나는 처음에는 할머니랑 같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할머니께 찍어도 되느냐고 물으면 “워따 뭐 이런 송장 같은 할매를 찍냐. 이쁜 너나 찍으라.” 라 말씀하셨지만 정작 카메라를 들이대면 할머니는 예쁜 모시옷으로 갈아입고 “할머니 저그 산책 갈랑께, 산책하는 거 찍어라.” 라 말씀하시며 좋아하셨다.
이렇게 밝은 할머니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 궁금했지만 나는 선뜻 묻지 못했다.
문득 할머니를 스틸 사진이 아닌 영상으로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일상을 단편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드리고 싶단 생각에서였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박수를 받으면 할머니는 더는 ‘죽어야 쓴디’라는 말을 하지 않으시지 않을까? 한 달이면 할머니의 적적함도 덜어드리고 다큐멘터리를 찍기에도 적당한 기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구직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


2014년 봄

한 달을 생각하고 시작한 촬영은 어느새 1년을 넘어서고 있었고, 영화는 나의 처음 의도와는 달리 단편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돈이 필요했지만, 경제 사정이 녹록지 못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 마감 일주일 전, 친구에게 제작지원에 대한 정보를 듣고 부랴부랴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했고, 얼마 안 있어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면접장에는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한 심사위원이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누군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분은 내 작업에 호감을 느끼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셨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왠지 나를 뽑아 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중에 선정결과가 나오고 나서 그 심사위원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그분은 내가 10여 년 전, 장편 상업영화 연출부에 들어갔다가 3일 만에 힘들다고 도망쳤던 작품의 감독님이셨다. 아마 그 감독님께서는 나를 못 알아보셨기에 선정해 주신 것 같다. 윤인호 감독님 죄송합니다, 그땐 다시는 영화 안 할 거라며 그만뒀었는데…….

제작비가 생기니 든든해졌다. 일단 프로듀서에게 소정의 인건비도 줄 수 있게 되었고, 외장 하드도 구입하고, “이런 것을 찍어서 어따 쓰냐?” 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께 “나라에서 찍으라고 돈도 줬어!”라고 자랑할 수 있었다.


2015년 1월 2일

이제 정말 편집을 해야 하는데 편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장편영화가 어떤 서사를 가져야 하는지 고민해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다. 프로듀서 다경이가 신사동에 영화 쪽에서 일하다 신 내림을 받은 용한 점집을 열었다고 했다. 우리는 현금 5만 원을 들고 신녀님을 찾아갔다.
다경이는 이 영화를 ‘관혼상제’가 다 들어가는 풍요로운 영화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머니 집 마당에서 전통혼례 하는 장면을 엔딩으로 넣고 싶다며 올해 안에 나에게 결혼 운이 있냐고 신녀님께 물었다. 신녀님은 결혼 운 따위는 있지도 않지만 엔딩 장면은 여름쯤에 찍을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으며 다시 작업에 매진하기로 했다.


2015년 여름

신녀님이 말씀하신 여름이 왔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엔딩씬이 될 거라는 말인가?

할머니 집 앞에 새로 지은 집 현관에는 센서 등이 달려 있는데, 할머니가 집을 오갈 때마다 등이 저절로 켜지는 것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할머니와 저녁을 먹고 들어가는데 센서 등이 또 켜졌다. 할머니가 “저 집 주인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불을 켜준다.” 라고 하시며 정말 목청껏 “불 켜줘서 매번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한참을 주인이 뭐라고 대답하나 기다리시더니 “귀가 잘 안 들리니까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시며 집으로 터벅터벅 들어가셨다.
원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는 카메라가 없는 법이다.

촬영을 2년 동안 해왔지만 계획적이지는 못했다. 그때그때 결정하시는 할머니의 일과를 나는 그냥 졸졸 따라다녔다. 카메라가 없으면 할머니랑 더 가까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카메라가 우리 사이를 방해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작업 덕분에 나는 의무적으로 할머니께 한 달에 일주일씩 머물렀고 누구보다 할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간이 내 생애에 절대 후회하지 않을 순간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곧 신녀님 말씀대로 전통혼례보다 아름다운 엔딩씬을 찍었다.


2015년 가을

정식으로 서울독립영화제에 상영하기 전에 엄마가 편집 마지막 버전을 확인하고 싶어 하셨다.

“어떤 내용일지 잘 모르겠지만 딱 두 가지 내용만 없으면 돼.”
“그게 뭔데?”
“할머니가 자살 시도 하신 거랑 엄마가 할머니 빨리 죽기 바라고 있다는 말 한 거. ”
“엄마 그러면 영화에 내용이 없어…….”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우리 가족의 민낯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일이 두렵기도 했고 이런 부분을 어떻게 잘 담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많이 고민하였다.

할머니는 죽고 싶어서 자살 시도를 하셨다.
엄마는 할머니가 빨리 할아버지 곁에 가게 해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가 오래오래 내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나는 이 세 개의 바람이 만나는 지점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엄마의 서사를 짤 때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자 했다. 엄마에게 이 부분에 관해 설명하고 나서 일단 보고 결정하시라고 했다.
정말 원하지 않으시면 빼겠다고.

엄마는 영화를 보시고 진심을 말한 부분을 빼놓고 넋두리하는 부분만 썼다며 수정을 요청하셨다. 엄마 인터뷰를 오랜 시간 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급하게 고르느라 포인트를 빼먹은 것이다. 나는 엄마 말씀대로 편집을 바꿨고 영화는 진심에 조금 더 다가갔다.


2015년 11월 28일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작 발표가 난 후 나는 할머니를 꼬시기 시작했다.

“할머니, 있잖아. 내가 그 동안 할머니 영화 찍은 거 서울에 있는 큰 극장에서 틀기로 했어. 사람들이 엄청 많이 보러 올 텐데, 같이 보러 갈라요?”
“뭐더러 서울 사람들이 그것을 보러 온다느냐.”
“할머니가 예쁘니까 그렇지.”
“안가. 나 늙어서 그런데 가면 민폐야.”

하지만 당일 날, 일가친척들이 모두 할머니를 모시러 갔고 할머니는 7년 만에 서울로 향했다. 인디스페이스 극장 안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보고 할머니는

“오메, 우리 손지 말이 참말이네! 사람들이 징그랍게 많다잉”

하시며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영화를 보는 내내 온갖 추임새를 다 하셨다. 특히 돌아가신 외숙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오메 우리아들!” 하시며 좋아하셨고 “저렇게 보니까 꼭 살아있는 같네!” 하시며 눈물을 훔치셨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좀 얼어계셨지만, 할머니는 정말 많은 사람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할머니는 “이런 보잘것없는 저를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두 손 모아 인사를 하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도 다 알아. 내가 손주를 잘 둬서 이 사람들이 보러 온 거지?”

소원을 이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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