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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베토벤 (2014) See, Beethoven 평점 6.3/10
씨, 베토벤 포스터
씨, 베토벤 (2014) See, Beethoven 평점 6.3/10
장르|나라
드라마
한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14.03.27 개봉
90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감독) 박진순, 민복기
주연
(주연) 김소진, 공상아, 오유진, 김중기
누적관객

수다는 앎이다! 수다는 밥이다! 수다는 약이다!
여고동창 세 여자가 펼치는 한여름의 발칙한 수다!?


무더운 여름날 대학가의 어느 카페, 세 명의 여고동창생이 만난다. 일, 사랑, 친구… 그녀들의 수다는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그 누구도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다. 친구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하진’, 자유연애주의자이지만 양다리가 발각되어 솔로 생활 중인 ‘성은’, 유부남과의 연애로 고민 중인 ‘영’. 인생의 무게는 녹록지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라면 버틸만한데… 그녀들에게 이 하루의 만남은 어떤 의미가 될까?

[ Intro ]

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울리면서 피사체가 기록된 순간은
마치 그가 속한 시간을 향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같다.
포착된 시간은 뷰파인더에 갇혀 상징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사진 속에서 되살아나 영원한 삶을 얻는다.

롤랑 바르트(1915~1980) [카메라 루시다]




[ Hot Issue ]

국내 최고의 인기 극단 ‘차이무’
화제의 동명 연극 전격 영화화
‘차이무’ 대표 여배우들의
환상적인 연기 앙상블을 극장에서 만난다!

1995년 창단이래 재미와 즐거움을 모토로, 유쾌한 웃음과 풍자가 넘치는 일명 ‘차이무식 코미디’를 한국 연극계에 브랜드화한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인기 극단 차이무는 ‘차원이동무대선(次元移銅舞黛船)’의 준말로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이동하여 관객들에게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연극을 만들어온 집단이다. 이상우 연출을 필두로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 문성근, 명계남, 송강호, 유오성, 강신일, 박원상 등이 차이무 출신이며, TV와 스크린을 통해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이성민과 이희준도 차이무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해 내공을 쌓으며 현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연극 [씨, 베토벤]은 2012년 4월 20일부터 29일까지 상연된 창작극으로, 차이무의 대표이자 배우이며 연출가인 민복기가 극작과 연출을 맡고, <실미도>(2003), <범죄의 재구성>(2004) 등 굵직한 작품에서 영화음악을 맡았던 한재권이 음악감독으로 동참해 상연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30대 여성들의 솔직, 담백, 짜릿한 수다의 향연으로 풀어가는 일상적인 고민과 하나씩 밝혀지는 여자들의 은밀한 비밀들을 ‘차이무식 코미디’로 매끄럽게 조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차이무의 대표 여배우 3인 김소진, 공상아, 오유진의 연기 앙상블은 연극 관객들 사이에서 명불허전으로 회자되며 성공적인 초연을 마쳤다. 심오한, 예술적인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관객들에게 유쾌하고 따뜻한 웃음을 전하는 작품 <씨, 베토벤>은 관객들과 호흡하는 소극장 연극 특유의 묘미를 살렸다는 호평 속에 높은 객석점유율을 자랑하며 재미있는 구성, 탄탄한 스토리의 매력을 고루 인정받았다. 특히 여성들의 일상적인 수다, 연애, 섹스, 커피 등을 맛깔나게 조합한 짜임새 있는 구성은 여성관객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호응을 모으는 데 한몫 했다.

이처럼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 [씨, 베토벤]이 2014년 영화로 관객들을 다시금 찾아온다. 짧은 상연 기간으로 미처 관람하지 못한 관객들의 리퀘스트가 빗발쳤고, 그 리퀘스트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번엔 연극 공연장이 아닌 극장 스크린에서 좀 더 섹시하게 튜닝된 영화 <씨, 베토벤>을 볼 수 있다. 연극의 원작자이자 연출가인 민복기와 다양한 분야에서 연출력을 쌓아온 신예 박진순 감독이 공동연출했으며 김소진, 공상아, 오유진, 김중기 등 연극과 동일한 배우들이 출연해 매력적인 연기 앙상블을 다시금 선사한다. 국내 최고의 인기 극단 차이무의 연극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에 연극, 영화 팬 모두의 이목을 끌고 있다.


연극 [씨, 베토벤]에서
영화로 튜닝된 <씨, 베토벤>의 의미
연극의 한계는 뛰어넘고,
영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연다!

연극은 영화와 달리 매 공연이 라이브로 진행되기 때문에 동일한 배우가 같은 대사로 같은 연기를 하더라도 실제로 똑같은 공연은 있을 수 없다. 또한 연극은 영화와 같이 반복 재생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관객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상연 기간을 놓치면 관객은 작품을 만날 수 없으며 작품 또한 관객을 만날 수 없게 된다. 또한 연극은 살아있는 배우들과 살아있는 관객들이 함께 호흡하며 한편의 작품을 완성하지만 영화의 경우 살아있는 배우들과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 추측하는 관객들의 호흡을 전제로 한다. 관객들은 이미 작품이 완성된 시점에서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것이다.

연극 [씨, 베토벤] 원작자이자 연출가이며 나아가 영화화된 <씨, 베토벤>의 연출을 맡은 민복기 감독은 “닫힌 예술이 아닌 열린 예술로서 연극과 영화의 고유한 매력을 고루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연극의 일회성을 포기하는 대신에 영화가 갖는 기록의 영원성을 획득했으며, 연극의 직접적인 교감을 포기하는 대신 영화의 클로즈업과 편집이라는 영리한 방식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꿈꾼 것이다. 단순히 연극의 시공간을 확장한다고 해서 모두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만이 갖는 편집의 역할은 연극의 영화화에 있어서 가장 큰 무기이자 독으로 작용해 많은 실패의 역사를 이어왔다. 물론 조셉 맨키에비츠의 명작 <이브의 모든 것>(1950)과 장진 감독의 대표작 <박수칠 때 떠나라>(2005)는 영화적 편집을 자제하고 연극적 대사와 공간 구성을 통해 연극과 영화의 장점을 잘 조화시킨 예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예는 지극히 드문 사례임은 틀림없다.

영화화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극단 차이무는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영화 <씨, 베토벤>을 탄생시켰다. 영화는 단순하다. 연극과 동일한 시공간 속에서 달라진 것은 연극의 원작자이자 연출가 그리고 동시에 영화의 감독이기도 한 민복기의 시각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영화 <씨, 베토벤>은 배우의 감성 연기와 다양한 시각적 디테일을 접할 수 있던 연극에서 과감한 클로즈업과 선택적 롱쇼트를 영리하게 조화시켰다. 연극만이, 영화만이 표현할 수 있는 고유한 기능을 한데 뒤섞은 것이다.

단 하루 동안 총 4대의 카메라를 통해 다층적으로 포착한 연극의 무대는 원 신(One Scene), 원 테이크(One Take)를 통해 영화로 재탄생되었다. 도합 네 개의 신과 네 개의 테이크는 연출가의 선택을 통해 연극적 재미를 고스란히 유지하는 동시에 영화의 집중력과 디테일을 살린 것이다. 배우는 연극처럼 살아있는 연기를 선보이고, 4대의 카메라는 ‘살아있는 그 순간’을 재빨리 포착한다. 이처럼 연극의 한계를 뛰어넘는 동시에 연극과 영화의 그 어떠한 강점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가 가득한 영화 <씨, 베토벤>은 바로 새로운 차원으로 연극을 확장시킨 동시에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About Movie ]

(여자에게) 수다는 앎이다!
그녀들의 수다엔 정해진 매뉴얼도 레시피도 없다
다이나믹한 수다를 통해 삶을 깨닫는 세 여자 이야기!

‘앎’은 안다는 것으로, 특정한 물건이나 사람 혹은 추상적인 어떠한 것을 이해할 수 있거나 그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지식, 거창한 철학이 아닌 일상 속에서 찾아오는 깨달음은 사소한 대화 속에서도 순간적으로 우리 삶의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끈다. <씨, 베토벤>의 주인공 ‘하진, 성은, 영’은 바로 그러한 사소한 순간의 ‘앎’을 공유하고, 각자 자신의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서로에게 협력적이고 상호보완적인 존재들이다.

여고동창생 세 여자가 한여름 오후 한적한 카페에서 만난다. 그리고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이들의 수다는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매끄럽고 유쾌하게 이어지지만 그 속에서도 세 인물은 쉽사리 속내를 드러내지 못한다. 사실 그녀들은 무엇이든 이야기하고 싶어서 만나는 친구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때때로 주변을 맴도는 그녀들의 너무 소소하고 장황한 수다는 그 자체로 인정하고 싶지 않고, 부정하려 했던 현실과 마주하는 계기가 된다. 자신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든 이뤄보려 노력했던 친구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하진’. 자유연애를 꿈꾸지만 정작 피상적인 관계에만 연연하고 있는 ‘성은’. 유부남과의 연애에서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 ‘영’까지. 그녀들 각자가 갖고 있는 비밀과 고민은 서로에게조차 공유되지 못한 채 위태롭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의 오래된 관계의 내공은 수다를 통해 결국 내밀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게 하는 지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결국 예기치 않게 털어놓은 불편한 비밀도 수다의 범주에서 함께 고민하고 비판함으로써 긍정적인 시너지를 만들어 낸다. 나아가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친구들의 거창한 조언이 아닌 스스로 깨달음, 앎을 터득하게 된다. 그녀들에게도 말 못할 비밀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군가와 자신의 비밀을 나누고 싶은 존재들이다. 계속해서 친구들의 연애, 사랑, 섹스 등 일상적인 수다는 이어지고 친구들은 결국 그러한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 일순간 깨닫는다.

영화 <씨, 베토벤>은 삼십 대 중반에 다다른 여고동창들의 수다에 관한 영화다. 친구들은 서로간에 나누는 수다를 통해 위로와 평안을 느끼는 동시에 어떠한 깨달음을 제시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들에게 넌지시 이야기한다. “삶이란 절대 거창하거나 완벽한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이처럼 삶의 일상적인 수다를 통해 추상적인 어떠한 것을 이해하는 것에 대한 영화 <씨, 베토벤>은 곧 앎을 전하는 영화로 관객들을 찾아갈 것이다.


(여자에게) 수다는 약이다!
상처, 불안, 우울… 모두 해소되는 ‘카타르시스’
상처를 지닌 세 여자를 힐링하는 ‘수다테라피’!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있다. 여자들이 모이면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 인식 속에서는 예부터 여자와 수다란 뗄 수 없는 관계다. 여자들은 왜 수다를 나눌까. 수다란 여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올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줄 영화 <씨, 베토벤>이 찾아온다.

여기 세 여자가 있다. 저마다의 일상과 고민을 가진 세 여자가 어느 여름날 카페에서 만난다. 그 뒤에 이어질 광경은 무리 없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잔, 간식거리, 담배, 그리고 끊이지 않는 수다의 향연! 여자들의 수다거리 또한 예상한 대로다.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상처, 원치 않게 맞닥뜨린 갑작스런 실연, 떼어내고 싶어도 떨어지지 않는 위태로운 사랑. 얼핏 심각하고 어두운 이야기들뿐인 것 같지만 여자들의 수다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스어 ‘카타르시스(catharsis)’는 문학용어에서 시작되어 심리용어로 사용되는 단어다.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 작품을 관람하며 마음 속에 쌓여 있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들이 극의 전개에 따라 해소되고 마침내 정화되는 일을 뜻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이 관객에게 미치는 중요한 영향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현대에는 정신분석 심리학에서 사용되며, 마음속에 억압된 감정의 응어리를 언어나 행동으로 표출하여 정신의 안정을 찾는 일을 뜻한다.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권하는 치료법이기도 하다. 여자들에게 수다란 바로 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하는 가장 저렴하고 쉬운 방법이다. 가슴 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지난날의 상처, 도무지 떨쳐지지 않는 스트레스, 하염없이 막막하고 가슴이 답답하기만 한 불안, 이 모든 아픔들을 치유하는 방식의 한 가지가 바로 수다인 것이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거침없이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며 감정을 분출하는 행동 자체가 바로 힐링 작용을 한다.

<씨, 베토벤>의 세 친구가 경험한 ‘수다테라피’에서 관객들은 치유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의 치유자가 되는 치유의 선순환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여자니까” “나는 삼십 대니까”는 자기 규정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 아닌 어떤 상처를 지녔든 어떤 고민이 있든 더 노력하지 않아도, 더 채우지 않아도 그 존재로도 충분한 친구라는 이름 그대로 서로의 곁에 머물며 수다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여자에게) 수다는 밥이다!
친구들과 나누는 맛있고 든든한 수다
삶을 즐기고 버텨낼 동력을 주는 ‘밥심’ 이상의 ‘수다심’!

1960~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겐 밥이 사실상 에너지원이었다. 쌀밥 구경은 명절이나 제사 등 큰일이 있을 때나 가능했고 보리나 감자, 고구마, 조 따위가 끼니 걱정을 덜어준 소중한 양식이 되기도 했다.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큰 그릇에 넘치도록 밥을 꾹꾹 눌러 담았던 ‘고봉밥’은 그 정도를 먹어야 할 정도로 무슨 일을 해도 힘들기만 했던 시기를 상징하는 단어다. ‘밥심으로 산다’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 먹을 거리가 마땅치 않았던 시기엔 밥이 곧 보약이었던 셈이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더 이상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들에겐 다른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다. 소통, 친구, 대화, 여유 등으로 대체된 현대인들의 결핍은 그 자체부터가 명확하지 않은 것들 투성이다. 구체적이지 않은 문제는 곧 추상적인 해결책만을 남긴 채 계속해서 결핍으로 이어지고 있다. <씨, 베토벤>은 바로 이러한 결핍에 관한 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은 자유로운 사랑을 갈망하고, 보다 술술 풀리는 인생을 간절히 원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진정한 사랑을 꿈꾸는 인물이다. 이들이 일상적으로 나누는 수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이들의 꿈은 현재 이들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현재의 불완전한 삶은 이들의 결핍과 연결되어 있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배우 생활과 과거의 상처로 인해 인생이 고단하기만 한 하진. 정작 본인의 사랑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성은과 진정한 사랑임을 깨달았지만, 그 상대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에 괴롭기만 한 영까지. 세 명의 여고동창생 각각의 고민은 각자의 결핍 나아가 영화를 보는 관객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결핍과 고민은 결국 일상적인 수다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고, 그것을 공유했다는 것만으로도 일부분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쯤 관객들은 그들의 결핍과 고민을 함께 고민하고 실제 여고동창생처럼 더러는 화내고 욕하며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털어놓음으로써 비로소 얻게 되는 것이야 말로 수다의 힘이 아닐까?

<씨, 베토벤>에는 과거 ‘밥심’으로 살던 시대와 달리 공감의 힘, 경청의 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다심’을 전하는 영화다. 오랜 친구와 만나 한가로운 오후에 펼치는 일상적인 수다와 친구의 존재는 바로 그 자체로 살아갈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씨, 베토벤>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들은 오랜 친구와의 즐겁고 허심탄회한 수다가 간절하게 그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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