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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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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야 (2013) 평점 7.8/10
청야 포스터
청야 (2013) 평점 7.8/10
장르|나라
드라마
한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13.12.26 개봉
83분, 12세이상관람가
감독
(감독) 김재수
주연
(주연) 안미나, 김기방, 백승현, 동방우
누적관객

할아버지가 간직한 사진 속 어린 소녀
그 소녀를 찾기 위해 할아버지와 손녀딸이 역사의 현장으로 간다

끝내 지울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얼굴

지윤(안미나 분)은 대령 예편 후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어버린 할아버지 이노인(명계남 분)의 사진첩에서 어린 소녀의 모습이 담긴 낡은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평생 할아버지의 마음에 새겨진 소녀의 사진이다.

다큐멘터리 방송 편성을 위한 마지막 퍼즐
차피디(김기방 분)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이다. 거창 사건 다큐멘터리를 만들지만 편성이 취소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우연히 지윤과 이노인을 만난다. 이 사건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직감한 차피디는 자신의 작품에 이들을 이용하려 한다.

할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되뇌는 알 수 없는 말에 담긴 슬픈 비밀
사진 속 소녀를 수소문하고자 할아버지와 경남 거창을 방문한 지윤은 할아버지가 평소 입버릇처럼 되뇌던 “오줌 안 마려워?, 집에 가자”의 의미를 알아가게 된다...

“몰랐다면 알아야 하고, 알았다면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Intro여는 글 ]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
-조지 산타야나-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
-E. H 카-


“일본 놈 대창 위협에도 살았는데
설마설마 인민군 장총 구타에도 살았는데
설마설마 국군이 죄 없는 백성 죽이랴...”
-영화 ‘청야’ 속 인터뷰-




[ About Movie ]

“지금까지는 국가가 살기 힘들어서 우리 아픔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면
이제는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군민은 당연한 것이고 전 국민이 시대적 아픔을 공유하고
국가가 유족들의 아픔을 위해서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홍기 | 거창군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버리는 씻김굿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당시 거창군 신원면 일대의 마을 사람들 719명이 몰살당했다. 공비소탕이라는 명목 하에 국군이 주민을 공비와 내통한 통비분자로 몰아 집단 학살한 것. 희생자 대다수가 어린아이와 노인, 부녀자였던 이 사건이 최근 영화로 만들어졌다. 사건 현장인 거창에 귀농한 김재수 영화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당시 국군의 작전명인 ‘견벽청야’에서 따온 ‘청야’라는 제목은 단아함 속에 이토록 서러운 사연을 감추고 있다. 60년이 넘게 흘렀지만 끝나지 않은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의 이야기. 가해자와 피해자의 후손이 우연히 거창에서 만나 진실을 알게 되면서 화해와 용서하는 과정을 담았다.

운명처럼 다가와 기적처럼 이뤄진 영화 제작
2009년 거창군 신원면 청수리 수동마을로 귀농해 마을 이장 일을 보며 살아가는 바쁜 농사꾼 김재수 감독도 화제다. 영화 ‘클럽 버터플라이’, ‘천국의 셋방’ 등을 연출하며 충무로에서 유력한 인지도를 지닌 그가 아내와 함께 전혀 연고가 없던 이곳의 경관이 마음에 들어 둥지를 틀 때까지만 해도 사건 현장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비로소 감명 깊게 읽은 김원일 작가의 소설 『겨울 골짜기』을 기억해냈고, 책에 나온 지명을 따라가며 홀린 듯 현장 구석구석을 밟았다. 결국 감독의 제안으로 2011년 거창사건 60주기를 맞아 영화가 기획됐고 거창군에서 제작비 1억25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사)거창사건희생자유족회와 김재수 감독이 제작에 나서 출향인사, 기업인, 유족회 등 기관, 단체의 후원을 받아 가까스로 2억 4000만원의 예산을 꾸려 제작을 마쳤다. 2013 영화진흥위원회 장편독립영화지원사업 선정작.

감독의 든든한 인맥, 연기파 배우들 기꺼이 재능기부
명계남, 장두이, 이대연, 이효정, 지대한, 이숙 등 실력파 중견 연기자들을 발견하는 것도 이 영화의 쏠쏠한 재미다. 오랜만에 영화로 돌아온 감독의 열정과 영화의 취지에 공감, 조건 없이 함께하기를 자청했기 때문. 주인공은 충무로와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존재감을 키워가는 차세대 스타 안미나, 김기방, 백승현이 개인을 넘어선 역사의 아픔에 눈뜨는 젊은 세대로 열연하며 극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모든 촬영이 거창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주민들도 자연스럽게 카메라 앞에서 연기도 하고 촬영장으로 음식도 손수 나르며 영화에 대한 마음을 보탰다. 빠듯한 예산 탓에 일정은 빡빡해도 마음만은 한없이 넉넉했던 촬영은 그렇게 15박 16일의 강행군 속에 마무리되었다. 촬영지는 거창사건추모공원, 위천면 황산마을 고가, 요양병원, 실제 사건 현장인 신원면 등지로, 올해 3월말부터 4월 중순 사이에 진행되었다.


개봉을 앞두고 독립영화의 새 희망 '크라우드 펀딩' 시작
올 가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에서 ‘제2의 지슬’이라는 찬사와 함께 유례없는 만석을 기록했던 화제작 ‘청야’의 극장 개봉이 12월 말로 다가왔다. 현재는 막바지 홍보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굿펀딩(www.goodfunding.net)을 통해 개봉 비용과 공감하는 마음을 모아가고 있다. 앞서 '26년'과 '또 하나의 약속'도 제작두레를 통해 제작비를 마련하며 물심양면의 응원을 받았다. 이처럼 누리꾼들의 소액기부금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예술가의 창작활동을 후원하는 다리 역할과 더불어 문화적 다양성에 기여하는 새로운 활로가 되어주고 있다. 관심 있는 관객은 해당 웹사이트를 통해 예고편과 관련 정보 등 영화의 이모저모를 둘러보고 참여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참신한 화법
'청야'는 픽션이지만 극중에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에 실제 생존자와 유가족도 등장하여 그들의 삶이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증언함으로써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화법을 보여준다. 또한 일부 장면에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하여 참혹했던 당시 상황의 사실성을 담보하면서도 시각적 충격을 완화하여 함축적으로 표현, 청소년들도 영화를 보며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한 배려도 돋보인다. 이처럼 '청야'는 역사적 사실을 근간으로 하는 드라마 속에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자유롭게 접목시키며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강력한 메시지 전달에 성공하고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마이웨이'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동양적 정서를 세련되게 불어넣는 이동준의 감성적인 영화음악도 감동을 배가시킨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 위로받지 못한 슬픔에 바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파괴된 사람들을 기록하는 영화 제작이 봇물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상처’라 말할 뿐 여전히 명확한 정리를 하지 못하니 영화계가 나서는 것이다. 충북 영동 노근리 사건 소재의 ‘작은 연못’(2010)을 시작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1985’(2012)이 높은 호응을 얻으며 연일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다. 1980년 5월 광주와 1948년 11월 제주를 다룬 ‘26년’(2012)과 ‘지슬’(2013)은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김 감독은 “제주 4·3사건은 국가기념일이 됐고, 광주민주화운동은 피해보상이 다 이뤄졌다. 거창사건은 국가가 잘못을 인정한 판결까지 나왔지만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은 아직 요원하다”며 이 작품이 희생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을 넘어선 화해와 상생의 밑거름이 되고 응어리를 푸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했다.




[ Background관련배경 ]

‘견벽청야(堅壁淸野) - 성벽을 견고히 하고 들의 곡식을 말끔히 거두어들이다’

성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한편, 들에 있는 모든 곡식을 모조리 성내로 거둬들여 공격해 오는 적의 군량미 조달에 타격을 입히는 전법. 고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방어전술로, 적에게 내주어야 할 지역은 말끔히 청소를 해버린다는 뜻이다.

6·25 전쟁 후 지리산을 근거지로 출몰하는 공비들이 경찰과 청년의용대를 습격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힌 직후, 2월 9일부터 11일에 공비 토벌을 위해 주둔하였던 국군의 작전에 의하여 민간인이 학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작전명은 ‘작전 제5호’이고 비공식 작전명이 ‘견벽청야’였다. 빨치산(공비)의 보급원을 차단하기 위해 산골마을을 초토화시킨다는 의미. 앞서 2월 7일에 함양, 산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이미 일어났다.

국군은 거창군 신원면의 마을 사람들이 공비들과 협력하거나 내통한 마을사람들을 가려낸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을 신원초등학교로 모이게 하였고, 그 속에는 젖먹이 아기부터 90세의 노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군은 몇몇 군/경 관계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마을 사람들을 근처 골짜기와 계곡에서 이틀에 걸쳐 학살하고 시체를 솔가지와 장작으로 덮어 불을 질렀다. 이 엄청난 사건은 그해 3월 국회에서 거창군 출신 국회의원의 보고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고, 진상 조사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6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완전한 치유도, 참회와 용서도 석연치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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