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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코트 (2011) Jesus Hospital 평점 8.5/10
밍크코트 포스터
밍크코트 (2011) Jesus Hospital 평점 8.5/10
장르|나라
드라마
한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12.01.12 개봉
91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감독) 신아가, 이상철
주연
(주연) 황정민, 한송희, 김미향
누적관객
따뜻하지만 잔인한 이름

화려하지만 무거운, 따뜻하지만 잔인한...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입니까?


우유배달로 홀로 억척스럽게 살고 있는 현순은 남들에게 밝히기 어려운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입원중인 노모와, 만삭의 딸 수진뿐. 어느 날, 현순은 언니와 남동생이 노모의 연명치료를 중단하자고 이야기하자 거세게 반발하며 분노의 말을 내뱉는다. 현순의 비밀을 눈치채고 있던 가족들은 현순이 이단의 종교에 빠졌다고 결론 짓고, 현순을 따돌리려는 작전을 세운다. 결국 가족들은 그 작전에 성공하고 드디어 연명치료를 중단 하려는 순간, 이들을 도왔던 현순의 딸 수진이 갑자기 엄마 편을 들며 상황이 점점 꼬이기 시작하는데…

[ Hot Issue : 01 ]

2012년 웰메이드 독립영화의 첫 신호탄!
서울독립영화제(2011) 대상, 부산국제영화제(2011) 2개 부문 수상작!
최고의 연기, 사려 깊은 촬영, 밀도 있는 연출의 완벽한 앙상블!


2011년 한국영화계는 그 어느 해보다 한국형 장르영화와 다양성 영화들이 역동적으로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해다.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 <아이들...>로 시작해 <써니>는 상반기 최고 히트작이 되었고, <그대를 사랑합니다>, <풍산개>, <블라인드>는 SNS의 파급력을 보여주며 틈새 시장을 이끌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전무한 기록인 220만 관객을 모았고, <도가니>의 열풍과 <최종병기 활>, <완득이> 또한 하반기 관객을 휩쓸었다. 특히 개봉 전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독립영화 <혜화,동>, <파수꾼>, <무산일기>가 신인감독들의 빛나는 데뷔작으로 각광받으며 의미 있는 스코어를 기록했다. 또한 음악영화 <플레이>, 다큐멘터리 <트루맛쇼>, <고양이 춤>과 ‘잔혹스릴러’를 표방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이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질적, 양적으로 성장한 2011년 한국영화계를 지나, 2012년 새해 믿을 수 없는 놀라운 데뷔작 또 한 편이 당도한다. 2011년 하반기 부산국제영화제 2관왕과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석권하며 최고 화제작으로 떠오른 신아가, 이상철 감독의 공동연출작 <밍크코트>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종교적 신념과 갈등의 문제, 가족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애정과 증오 등을 매우 밀도 있고, 긴장감 넘치는 카메라 작업으로 완성한 작품’(서울독립영화제 2011 대상 선정평 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생애 최초로 타이틀롤을 맡은 주연배우 황정민의 신들린 연기는 ‘명불허전’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며, 조연배우들의 내밀한 심리연기와 시종일관 극의 긴장을 이끌어내는 촬영, 탄탄한 구성과 절정을 이끌어내는 뚝심의 연출력에 SNS를 비롯한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밍크코트>. 2011년 충무로 차세대 스타로 급부상한 배우 <혜화,동>의 유다인, <파수꾼>의 이제훈 처럼, 여배우 황정민 또한 개성 있는 마스크와 카리스마 넘치는 역량을 인정받으며 충무로의 열렬한 러브콜을 기대하게 하며, 관객들의 뇌리에 ‘현순’이란 캐릭터와 함께 여배우 황정민 이름 석자를 각인시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일반 관객들은 물론 영화 관계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밍크코트>는 <혜화,동>, <파수꾼>, <무산일기>가 견인했던 2011년 신인감독의 빛나는 데뷔작 바통을 이어받으며, 2012년 웰메이드 독립영화의 첫 신호탄을 쏜다. 신들린 연기, 신들린 촬영, 신들린 연출의 완벽한 앙상블의 웰메이드 독립영화 <밍크코트>는 1월 12일 개봉해 어느 신성가족의 무거운 진실을 밝힐 예정이다.


[ Hot Issue : 02 ]

국내최초 ‘연명치료 중단(존엄사)’ 소재의 문제작!
안락사 문제를 다룬 <밀리언달러 베이비>, <씨 인사이드>, <청원>
<밍크코트> 윤리적, 종교적 문제를 넘어 ‘가족의 문제’를 묻다!


애매한 걸 척척 정해주는 만능 애.정.남도 당당하게 정해 줄 수 없는 어려운 문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윤리적 문제인 ‘연명치료 중단’(존엄사)은 그래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의학계,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다. 2009년, TV 뉴스와 신문 사회면을 뜨겁게 달군 일명 ‘김할머니 사건’은 회생가능성 없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시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 하였고, 평소 환자 본인이 무의미한 연명시술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법원에 진술 하면서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존엄사가 인정된 사례이다. 이를 계기로 ‘존엄사’란 말도 이제는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중립적인 단어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윤리적, 종교적, 법적, 의학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존엄사 문제는 민감한 사안으로,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다룬 ‘연명치료 중단(존엄사)’은 물론 적극적 의미의 존엄사인 안락사에 대한 영화도 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안락사’를 다룬 작품들이 다수 있고, 이는 우리 보다 그 논의가 사회적으로 더 활발하게 진행된 덕이다.

2004년 개봉하여 전세계 관객들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의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복싱경기에서 사고를 당해 전신마비에 두 다리까지 절단하게 된 애제자의 안락사 부탁을 들어줘야만 하는 스승의 모습을 그린 영화다. 2007년 개봉한 <씨 인사이드>는 26년간 전신마비로 고통 받았던 주인공이 정부를 상대로 자신의 죽을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법적 투쟁을 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실화로 많은 관객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최근 개봉한 인도 영화 <청원>에서도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인 채 14년을 산 주인공이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달라’는 청원을 하는 법정 드라마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혹은 자신의 존엄한 생을 위해 ‘아름다운 선택’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많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도 있는 게 사실.

<밍크코트>는 위 작품들과는 좀 다르게 죽음의 당사자가 아닌 그 죽음을 목도 혹은 선택해야하는 가족들에게 초첨을 맞춘 영화다. 8개월째 연명치료로 숨을 부지하고 있는 노모의 호흡기를 떼는 것(연명치료 중단)을 가족 구성원들의 각기 다른 현실적인 경제력과 종교적 신념 사이의 갈등을 신랄하게 묘사한다. 죽음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관계된 사람들, 가족 모두를 결박하는 남은 이들의 삶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밍크코트>는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통해 인간존중의 윤리적, 종교적인 문제를 넘어 우리사회의 ‘가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심도 깊은 가족영화다.



[ Movie Tip ]

존엄사 [尊嚴死, 연명치료 중단]

최선의 의학적 치료를 다하였음에도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질병의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가 임박하였을 때 의학적으로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계호흡이나 심폐소생술 등을 뜻한다.

이에 비하여 안락사는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 행위에 의한 죽음이라는 점이 다르다. 안락사 중에서도 환자의 요청에 따라 고통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 약제 등을 투입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기는 것을 '적극적 안락사', 환자나 가족의 요청에 따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이나 약물투여 등을 중단함으로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소극적 안락사'라고 한다. '소극적 안락사'를 존엄사와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다.

안락사나 존엄사는 윤리적•종교적•법적•의학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논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나라에서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는 존엄사와 안락사를 모두 합법화하여 가장 진보적 입장이고, 미국은 오레건주와 워싱턴주에서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며 40개 주에서는 인공호흡기 제거 등의 소극적 형태로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2006년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에 대하여 사실상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가이드 라인을 제정하였고, 영국도 대체로 폭넓게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한국에서는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존엄사(김할머니 사건)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 판결에 따르면, 식물인간 상태인 고령의 환자를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것에 대하여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현 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루어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연명치료가 무의미하고 환자의 의사가 추정되는 경우로 제한하기는 하였으나 사실상 존엄사(또는 소극적 안락사)를 인정한 첫 판례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법일반 참조)



[ About Movie : 01 ]

신을 믿습니까? 가족을 믿습니까? 자신을 믿습니까?
가족과 종교 문제를 아우르는 특별한 가족영화!


재미와 감동이 공존하는 시쳇말로 ‘웃기다가 울리는’ 공식을 흥행 매뉴얼로 채택하는 장르는 헐리우드 영화는 물론 한국영화, 특히 가족영화들이 끊임없이 답습해온 형식이다. 설, 추석 연휴는 특히 패턴화된 가족영화들이 진검승부를 가르는 처절한 전쟁터. 그런 2012년 1월 설 특수 전쟁터에 가장 특별한 가족영화 한 편이 등장한다. 묵직한 주제의식과 대담한 연출,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를 호평 받으며,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2관왕과 서울독립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2012년 웰메이드 독립영화의 첫 신호탄이 될 화제작 <밍크코트>다.

<밍크코트>는 의식불명 노모의 연명치료 중단 문제로 갈등을 겪는 가족들의 이야기로, 진짜 가족이 전면에 등장하는 가족영화지만 잔재미로 관객들을 현혹시키고, 클라이막스에서 억지 감동을 이끌어내는 흥행 패턴화된 가족영화들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다. 관객들에게 <밍크코트>가 다가가는 방식은 야구에서 우직하게 직구를 던져대는 팀의 에이스의 위엄과 닮아 있다. 관객의 반응을 계산해가며 완급조절을 하는 대신, 영화는 대사 하나하나, 등장인물의 표정 하나하나에도 혼신의 힘을 담아 관객에게 직구를 던진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지금 당신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신의 말씀인지 가족의 사랑인지 자신의 믿음인지 아니면 그 어떤 대가인지를. 결국 그 모든 것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 밝혀지는 비밀의 무거운 진실 앞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무너지지 않을 도리가 없음을 여실히 증명해낸다. 가난하고 볼품 없지만 자신이 믿는 존재 앞에서는 당당한 줄로만 알았던 주인공 현순이 사실은 ‘누구든 자기 친족,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신하는 자보다 불신하는 자보다 더 나쁘다.’라는 교리를 거스르며, 오래도록 형제들을 증오하고 있었음을 고백할 때 관객들은 그녀와 함께 절규한다. 현순의 형제들 역시 남부럽지 않은 믿음을 지녔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들간의 믿음을 져버리고 서로를 불신하고, 거짓을 행하고, 돈을 탐했다는 비밀이 드러날 때 관객들은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음을,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음을 목도하고 회한의 눈물을 함께 흘릴 것이다.

가족과 종교 문제를 아우르는 특별한 가족영화 <밍크코트>는 화려하지만 무거운, 따뜻하지만 잔인한 ‘밍크코트’ 처럼 가족이라는 것이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가도, 한편으론 그 존재 자체가 한없이 무거운 삶의 업보이며, 때로는 그 어떤 세상의 풍파도 막아 줄 따뜻한 울타리지만, 반면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핏줄로 견고하게 엮인 덤불가시처럼 잔인한 감옥일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가족의 속살을 들여다 보라고 이야기하는 영화 <밍크코트>는 종교의 교리가 아닌 도덕적 상식으로써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가치라는 커다란 깨달음에 도달한다. 삶과 죽음의 문제, 구원의 문제, 가족간의 갈등과 화합의 문제를 밀도 있는 연출과 진지한 주제의식으로 깊이 있게 다룬 <밍크코트>는 2012년 새해, 관객들에게 가장 따뜻하고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다.


[ About Movie : 02 ]

신들린 연기, 신들린 카메라, 신들린 연출!
핸드헬드와 클로즈업으로 직조하는 몰입의 스펙터클!!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클로즈업 샷이 대개 무언가를 강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임팩트하게 쓰인다면, <밍크코트>의 경우는 오히려 기본 샷이 클로즈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카메라가 인물들의 얼굴에 극도로 밀착한 촬영을 택한 영화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화면 전개방식과 거리낌 없는 클로즈업 촬영은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캐릭터들의 불안한 심리를 밀도 있게 담아내며, 관객에게 긴장감 넘치는 몰입을 선사한다. <밍크코트>에서의 세밀하고 노련한 클로즈업 촬영은 눈동자의 떨림과 송송한 모공은 물론 시종일관 뾰족한 말의 화살들을 쏟아내는 인물들의 격앙된 얼굴 근육까지 포착하며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감독은 애초부터 가장 중요한 감정의 밀도를 보여줄 씬을 현순이 병원 옥상에서 절규하는 씬으로 정하고, 그 클라이막스 씬을 위해 카메라가 멀리 빠지는 것을 전략적으로 아꼈다고 밝혔다. 특히 옥상 씬은 현순의 모든 믿음과 희망이 부숴지고 절망 만이 남았을 때 처음으로 신에게 진심으로 고백하고 회개하는 장면이다. 아무 것도 없는 불모의 공간에 홀로 선 현순을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카메라를 통해, 관객은 절체절명의 순간 오직 두 손 모아 회개하고, 절규할 수 밖에 없는 한 인간의 절박함을 오롯이 느낀다. 그 절규를 보듬듯 카메라에 천천히 잡히는 하얀 눈송이들은 관객들에게 묘한 정서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밍크코트>는 관객이 스토리를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영화다. 특히 핸드헬드 카메라가 클로즈업으로 리드미컬하게 직조해가는 감정의 증폭들을 따라가다가 보면 어느 순간, 여과 없이 드러나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외적 갈등과 조우하게 되는 특별한 몰입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 About Movie : 03 ]

어머니의 딸, 딸의 딸...모녀 삼대 이야기
제목 ‘밍크코트’가 내포한 다양한 함의


영화 제목으로의 ‘밍크코트’는 그다지 호감이 가는 제목이 아니다. 환경과 동물보호가 전세계의 이슈인 만큼 2011년 현재 ‘밍크코트’란 물건은 탐욕과 부의 상징은 물론 부정적인 허영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옷. 신아가, 이상철 감독은 영화가 완성된 시점에서 개봉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까지 끊임없이 ‘밍크코트’라는 제목에 대해 교체를 고민했다. 하지만 다른 제목을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는 상징성을 내포한 제목 ‘밍크코트’를 결국 지킬 수 밖에 없었다.

<밍크코트>에서 밍크코트는 현순의 부자 언니 명순이, 노모가 쓰러지기 전에 사드린 효도 선물이다. 하지만 노모는 명순 모르게, 힘겹게 우유배달을 하는 딸 현순에게 자신의 밍크코트를 벗어준다. 현순은 자신의 딸 수진의 생계와 건강 때문에 급하게 돈이 필요하자 망설임 없이 그 밍크코트를 팔아 돈을 댄다. 어머니의 밍크코트는 가난한 딸에게 잠시나마 온기를 전해주고, 또 그 딸의 딸을 위해 쌀이 되고, 약이 된다. 그렇게 밍크코트는 모녀 삼대를 이어주는 따뜻한 사랑이 된다.

또한 극중에서 밍크코트는 가난한 현순과 넉넉하게 사는 언니 명순, 그리고 남동생의 처 경숙의 경제적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품이다. 형제들 앞에서 스스로 돈 벌어 대학까지 나왔다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현순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그녀들의 안락한 부를 시샘하고 있다. 명순 언니가 노모에게 사줬다는 밍크코트를 마다하지 않는 현순의 심리는 그런 시샘에서 기인한다. 비슷해지려는 욕망.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야 하는 가족은 경제적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밍크코트는 결국 가족간의 불화에 이르게 하는 단초가 된다.



[ Production Note ]

1. 산소호흡기
2009년 2월. 이상철이 혼자 제작, 연출, 주연, 촬영을 겸한 <병신>이란 영화를 찍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남자가 자다가 깨어보니 반신불수가 되어있더라는, 말도 안 되는 내용의 영화였다. 처음엔 쟤 또 저러는구나 하는 심정으로 보았으나 뭐라도 찍어보겠다고 방구석에서 혼자 캠코더 한 대 들고 생쇼를 하는 모습을 보며 그래, 저런 시도 자체가 어찌 보면 진정한 영화인의 자세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듬해 이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에서 <변신>이란 제목으로 상영(만) 되었다.) 이에 자극받은 나는 돈 없이도 찍을 수 있는, 즉 제작비가 별로 필요 없는 이야기를 구상했고, 자연스레 말로 썰 푸는 연애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러다가 여자주인공이 가족, 친인척들과 상가집에서 얽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들이 반영된 곁가지 플롯 하나를 떠올렸는데, 얘기를 들어 본 친구 한 명이 여주인공과 가족들 부분만 떼어내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20장짜리 트리트먼트를 썼다. 이때의 제목은 <산소호흡기>였다.

2. 밍크코트
친구들에게 모니터링을 했다. 제목을 듣고 반응이 없던 친구들이 내용을 듣고 좋다고 했다. 서로 부족한 부분과 아이디어를 얘기하다가, 모녀 삼대를 아우르는 물건 같은 게 있으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나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엄마가 거의 독점하듯 챙겨온 밍크코트를 떠올렸다. 일단 제목은 <밍크코트>로 하고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3주 만에 시나리오를 쓰고 의기양양 독립영화 제작지원에 냈다. 하지만 두 달 후 영진위 홈페이지엔 내 이름이 없었다. 나는 내 시나리오를 재밌어했던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3. 시작
그로부터 1년 뒤. 최근 몇 년간 공모전에 응모하기만 하면 80프로 당선 확률을 자랑하는 양 모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최근에 찍은 단편을 서울독립영화제에 내려고 막판 마무리 편집을 위해 모인 와중에 그동안 뭘 썼냐고 물으셨다. 이런 내용의 영화에 별로 관심도 없으실 거 뻔히 아니까 건성으로 대답하는데, 농담하듯 영화의 주요한 아이디어를 툭툭 내뱉으셨다. (이 아이디어들은 <밍크코트> 후반부 수진의 수혈 시퀀스의 주요 모티브가 되었다.) 그동안 내 테마와 맞닿아있는 뭔가를 애타게 찾던 나는 이거다 싶어 곧바로 시나리오를 고쳤고 한 달 후 나는 영진위 2차 면접실에 앉아있었다. 괜히 당선률 80프로가 아니었다.

2010년 11월. 독립영화제작지원 단편부문에 당당히 지원 확정된 뒤, 이상철은 시나리오에 살을 더 붙이면 장편영화로도 충분히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를 부추겼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함께 시나리오 수정에 들어갔다. 에피소드와 캐릭터에 중점을 두었던 시나리오는 점점 가족중심의 대결 구도의 드라마로 바뀌어갔다.

4. 캐스팅
2011년 12월. 캐스팅 고를 마무리 짓고 본격적인 캐스팅작업에 들어갔다. 이상철이 주인공 현순 역으로 연극배우 황정민 배우님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지구를 지켜라>의 순이만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이상철은 최근 본 단편 <꽃님이>를 한번 보라며 추천해주었고 영화를 본 나는 이분이 현순이를 맡아 주신다면 우리가 평소 그렇게 꿈꿔오던 캐릭터를 그려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턱대고 연락처를 수소문, 시나리오를 전달했다. 며칠 후 황정민님은 공연 중인 <사랑이 온다>를 보러오라고 하셨다. 맨 처음 뵌 황정민님은 정말 눈이 맑으시고 인상이 좋으셨다. 그날 밤, 근처 바에서 간단히 맥주를 한잔 마시면서 선배님은 흔쾌히 출연을 해주시겠다고 말씀해주셨다. 우리는 쾌재를 부르며 돌아왔다.

그 다음 중요한 배역은 큰언니 명순 역이었다. 이상철은 <밀양>에서 약국 집사 역으로 나오셨던 김미향 선생님이 어떠냐고 했다. 최근에 출연하셨던 <나무 없는 산>에서의 연기도 일품이셨던 미향선생님. 황선배님과 함께 두 분이 연기하시는 현순과 명순이 머릿속에 환하게 그려졌다. 우리는 아는 인맥을 총동원, 미향선생님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하지만 걱정이 앞섰다. 이창동 감독님 영화에 출연하셨던 분인데 우리처럼 이렇다 할 경력도 없고 예산도 없는 초짜들의 영화에 출연을 해주실까.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메일을 드렸고, 며칠 후 맑고 친절한 목소리의 소유자 김미향 선생님은 명순 역할을 해주시겠다고 약속을 해주셨다.

생각보다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우리에겐 영진위에서 받은 제작지원금 천이백만 원이 전부였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찍자며 의지를 불살랐다. 하지만 그다음 중요한 배역인 수진이 캐스팅이 잘되지 않았다. 필름 메이커스에 배우 모집 공고를 내자 순식간에 백 여 통의 메일이 밀려들었는데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의 수진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상철과 내가 원하는 수진의 이미지가 약간 달랐다. 거의 내 페르소나나 다름없는 수진이를, 정말 똑부러지게 캐스팅하고 싶었다.

시간이 계속 흘렀다. 딱히 이렇다 할 사무실도, 피디도 없던 우리는 이상철의 친구가 동료들과 함께 쓰고 있는 공간에 잠시만 있겠다며 또아리를 틀었다. 영화 한 편 찍겠다고 민폐 끼치는 건 정말 싫었지만, 우리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온갖 민폐를 다 끼치며 준비를 해나갔다. 1월이 되고 날씨는 점점 추워졌다. 영화의 배경이 겨울이라 늦어도 2월엔 영화를 찍어야 했다.

드디어 수진이를 찾았다. 중국 여배우 서기를 닮은 송희씨는, 마치 내 마음속을 훤히 꿰뚫고 있기나 한 것처럼 그동안 그토록 찾아 헤맸던 수진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상철과 나는 이보다 더 좋은 캐스팅은 있을 수가 없다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평소 하이파이브를 싫어했던 나였지만 이날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5. 로케이션 스카우팅
2011년 1월. 터무니없는 개런티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스탭들을 섭외하는 동안 어느덧 크랭크인 날짜(2011년 2월 14일)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은 산더미 같은데 겨울이 가기 전에 영화를 찍어야 했다. 일단 겨울 장면이 나오는 실외장면 위주로 회차를 짜고 나머지 병원장면은 모두 3월로 넘겼다. 병원은 촬영섭외가 아주 어려운 곳이라는 정평이 나있는 곳인데 원장님이 평소 문화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셔서 촬영에 협조적이시라는 말을 듣고 수원의 모 병원으로 갔다. 예상보다 병원이 크고 비주얼이 아주 훌륭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옥상도 생각했던 장소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공간이 재밌고 아주 좋았다. 촬영을 맡은 선영언니는 이렇게 병원이 협조적으로 나올 때 얼른 찍어야한다며 좋아하셨다. (결국 이 병원에서는 수술실장면만 촬영하게 되었다.) 우리는 웬만하면 이곳에서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전주영상위원회에서 추천한 남원의 모 병원으로 그냥 한번 보러갔다.

가는 길에 눈이 날렸다. 지금 영화를 찍고 있다면 얼마나 화면이 풍성할까 생각하니 아깝고 초조했다. 이상철은 혹시나 어디라도 쓸데가 있을까 싶어 풍경인서트를 찍으라고 선영언니를 계속 쪼았다. 그 옆에서 나는 Pieter Bruegel의 ‘눈 속의 사냥꾼’처럼 찍어달라고 계속 칭얼거렸다.

남원에 도착해서 병원을 둘러봤다. 그런데 이 병원도 다른 식으로 훌륭했다. 자재나 소품이 거의 없어 썰렁한 게 단점이었지만 거의 영업을 하지 않는 병원이라 촬영하기엔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먼 곳까지 온 김에 전주에 있는 예수병원도 둘러보았다. 이곳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에 있는 병원이라 옛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솔직히 시나리오를 쓸 때 여기서 찍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미 리모델링을 한 뒤여서 우리 영화와는 분위기가 별로 맞지 않았다. 그 대신 예수병원이란 간판을 보며, 제목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예수병원? 너무 세지 않을까? 결국 영문타이틀을 예수병원, JESUS HOSPITAL로 가기로 결정했다.

결국 병원촬영은 남원의 병원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촬영조건은 둘째 치고, 우리 영화에서처럼 피가 모자라는 상황이 조금이라도 설득력 있으려면 병원 자체가 시내에서 떨어져있는 병원이어야 한다는 이상철의 의견 때문이었다. 결국 결정은 했지만 걱정이 되었다. 저 크고 썰렁한 공간을 어떻게 채우나. 다행스럽게도 선영언니의 작은 아버지가 전주 인근에서 노인 병원을 운영하고 계셨다. 우리는 중요한 소품을 빌려야한다고 무작정 선영언니에게 우겼다.

6. 프러덕션
2011년 2월. 촬영에 들어가자 돈이 바닥났다. 결국 이상철이 부모님으로부터 천만 원, 내가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오백만원을 얻기로 했다. 사실 부모님 돈은 남의 돈이 아니니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돈이다. 하지만 부모님들께서 어떤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 돈을 주었을지,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여튼 온갖 자잘한 사건사고가 이어지며 서울에서의 8회차 촬영이 끝났다. 이제 대망의 병원촬영이 시작될 차례. 그런데 왠지 병원 쪽에서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자꾸만 우리를 피하시는 것 같고 나중에 전화하라는 말만 되풀이되었다. 우리를 위해 시간을 비워놓았던 스탭과 배우 분들은 병원 촬영이 언제부터냐고 계속 물어왔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이상철은 그냥 짐 싸가지고 내려가자고 했다. 결국 짐으로 가득 찬 이상철의 부모님 차를 끌고 선영언니와 함께 남원으로 갔다.

나는 한 달 전 내 친구가 봐준 타로점이 떠올랐다. “영화가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지고 중간에 멈출 수도 있어.” 아 이 말이었나. 병원은 갑작스런 사정으로 촬영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당장 오늘부터 스탭들이 남원으로 내려오고 있다. 내일이면 배우들도 내려올 것이고 우리는 지금 당장 빈 병실에 세팅을 해야 한다. 이상철이 행정실장님에게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실장님의 표정을 살폈다. 왠지 들어주실 것 같기도 했다. 워낙 인상이 좋으시고 우리를 차마 내치지 못할 것 같은 얼굴이셨다. 나도 이상철의 말을 거들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이틀 뒤 대망의 병원촬영이 시작되었다.

7. 남원에서의 2주일
2011년 3월. 모텔과 병원을 오가며 촬영을 했다. 그런데 거의 허허벌판에 뚝 서있는 병원인데다 영업도 하지 않으니 대낮에도 복도 저편에 뭔가가 슥 나타날 것 같은 기운이 서렸다. 밤이 되면 혼자서 화장실을 못갈 정도로 묵직한 뭔가가 우리를 짓눌렀다. 몇 년 전 이곳에서 공포영화를 했던 경험이 있는 윤종민 녹음기사는 자꾸 빨간 코트 입은 여자애가 돌아다닌다며 겁을 주었다. 그 때문인지 카메라 두 대의 포커스 풀러가 뻑뻑해지며 포커스를 맞출라치면 여지없이 유리 긁는 듯한 끼익-끼익- 소리를 냈다.

몇 회 차가 지나갔을 때쯤 일본 대지진 뉴스가 들렸다. 단 며칠 이곳에 있었을 뿐인데 그 소식이 저 먼 별나라 소식처럼 들렸다. 왠지 우리만 이곳에 뚝 떨어져 지구의 시간과 상관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몇날 며칠이 흐르며 비디오 영화 찍듯 마구 회차를 줄여나가는 사이 어느덧 모든 분량을 마치고 대망의 현순 옥상 씬과 수진 회복실 씬이 남았다. 그동안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현순이 감정의 모든 걸 쏟아내야 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너무 긴장이 됐다. 솔직히 남원촬영 후반부터는 콘티가 없이 그냥 막 찍어대는 상황이었다. 황선배님은 자신도 어떤 연기가 나올지 해봐야 안다고 하셨고 우리는 그런 선배님의 연기를 쭉 뒤쫓으며 카메라 두 대로 찍는 방법을 택했다. 드디어 황선배님이 옥상으로 나오셨다. 터벅터벅 걸어 나오시다가 하늘을 바라보시고..... 소리를 지르셨다. 그리고 그 다음은....

솔직히 이 영화를 시작한 이래 남원 촬영까지 누군가 우리 영화를 돕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옥상 씬을 찍기 전날 기상예보에서는 눈이 온다고 했다. 혹시 정말로 눈이 내리는 게 아닐까. 영화 속에서처럼 마법의 순간이 재현되지나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없었다. 다음날 찍어야 할 중요한 촬영분량과 더 이상 찍지 말라는 병원에서의 결단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영화현장은 항상 사고가 따라다닌다. 그래서 항상 긴장을 해야 하고, 긴장을 늦추는 순간 여지없이 펑크가 생긴다. 우리 현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큰 사고 없이 잘 해나가다가 거의 마지막에 가서 사고가 생겼다. 인명사고는 아니었지만 돈을 지불해야 할 일이 생겼다. 병원 측에 또 애원을 해 가격을 낮추고 남은 돈 다 털어 촬영을 마쳤다. 어느덧 2월의 햇살은 봄기운을 머금고 있었고 촬영은 약 5회를 남겨두고 있었다.

8. 마지막 촬영
2011년 6월. 교회분량 촬영을 마지막으로 총 23회차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남원에서 돌아온 지 석 달 만에 우리는 배우, 스탭분들과 쫑파티를 했다. 이때는 부산영화제 초청이 막 결정된 때였고, 나는 실로 오랜만에 달콤한 행복감을 느꼈다.

9. 후반작업
2011년 7월. 최종 편집에 박차를 가하던 우리는 우리가 편집을 한 베가스 프로라는 편집툴이 D.I업체와 사운드 믹싱 스튜디오 시스템에 전혀 호한이 되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은 즉 파이널 컷 프로로 전체 편집본을 다시 재작업하거나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결국 우리 때문에 애꿎은 후반업체 기사님들께서 한 컷 한 컷을 찾아 붙여야 하는 고생을 하셔야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내리는 동안 도대체 이 지난한 작업은 언제 끝나나 고통스러웠다.

10. 영화의 완성
2011년 10월. 부산영화제 일주일 전. 영화의 최종상영본이 완성되었다. 세방 현상소 시사실에 스텝과 주요 배우들이 모여 영화를 보았다. 다행히 영화에 대한 감상이 나쁘지 않은 눈치였다. 촬영 기간 동안 소소한 의견충돌도 있었던 황정민 선배가 따뜻한 포옹을 해주셨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대망의 부산영화제 상영. 상영본이 늦게 완성된 덕에 스크린 테스트도 못하고 첫 상영에 들어갔다. 혹시나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상영 내내 가슴을 졸이며 영화를 보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극장 안에 박수가 울려 퍼지는 순간, 기쁨보다 안도감이 온몸을 감쌌다. 영화를 본 관객 분들은 영화의 단점보다 장점을 훨씬 따뜻하게 봐주셨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 중에서 가장 흐뭇한 얘기는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는 얘기였다. 나 역시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영화의 모든 배우, 스텝의 이름을 더 다양한 영화의 크레딧에서 보게 되리라 확신한다. 더불어 우리도...^^

2010년 겨울부터 2011년 늦은 봄까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찍자며 카메라 한 대 달랑 들고 으쌰으쌰 의기투합해준 모든 밍크 팀원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글 신아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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