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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영화 (2009) Enlightenment Film 평점 8.4/10
계몽영화 포스터
계몽영화 (2009) Enlightenment Film 평점 8.4/10
장르|나라
가족/드라마
한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10.09.16 개봉
121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감독) 박동훈
주연
(주연) 정승길, 김지인, 오연아, 이상현, 박혁권
누적관객
과연, 우리는 잘 살고 있습니까?

오랜 병환에 시달렸던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모인 가족들.
예정된 죽음 앞에서 그들은 각자 다른 아버지와의 기억을 소환하는데...

아버지 학송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모인 정씨 집안 가족들. 이 땅에서 나름 주류라고 자위하며 무리 없이 살고 있지만, 왠지 모를 불안과 불편함의 골들은 군데군데 균열을 보이며 가족들의 오랜 어두운 문제들을 드러낸다.

일제시대 친일로 부를 축적한 조부모, 한국전쟁과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며 성공지향적인 가치관으로 가부장의 화신이 된 아버지, 그 폭력적인 아버지로 인해 유년시절 정신적 외상을 입은 딸. <계몽영화>는 삼대에 걸친 이들의 과거를 통해 한 집안의 어긋남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어떤 선택들이 이들의 현재를 만들었는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얽힌 실타래를 풀어낸다.

[ Director’s Commentary ]

시작은 아쉬움 때문이었다

2005년, 단편 <전쟁영화> 최종 편집 시기. 영화 주인공 캐릭터 정학송의 윗대의 이야기와 후대의 이야기를 연결시켜 영화를 만들면 꽤 흥미로운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나름의 판단을 했다. 사실 <전쟁영화>는 지금과는 다른 버전도 있었는데, 그것은 1965년과 현재가 교차하며 진행되는 결말이었다. 선대의 태도가 현대 후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관해 표현하려 했으나 짧은 시간 안에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구조였다. 그래서 영화의 주를 이루는 1965년 시제를 유지하기로 하였고 추가촬영을 하여 완성본을 만들게 되었다. 이후, 위에서도 언급한 선대의 태도들이 현대의 우리들에게 어떤 식으로 전이되었는지 반복되고 있는 삶의 동선들을 표현하고자 했던 초기의도를 장편의 호흡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여건이 조성되면 꼭 제작해보고 싶었다.


2008년, <계몽영화> 시나리오 초고 완성
1895년 학송의 조부, 1931년 학송의 부, 1965년 학송과 유정(전쟁영화와 동일), 그리고 사이사이 학송과 유정의 자손들의 현재 시제가 가교 역할을 하는 구조를 가진 시나리오였다. 2008년 6월, 중앙대학교 첨단 영상대학원 장편영화 제작지원에 선정 되어 제작진을 꾸리게 되었다. 전작에서 호흡을 맞췄던 이강민 촬영감독, 오랜 친구인 백경인 미술감독이 합류하였다. 몇 차례의 제작진 회의, 첫 번째 합의점은 사계절을 담아내자는 것이었다. 여러 시대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영화이니, 근본적인 차이를 두고 각 시대를 표현하는 방식이 관객들을 설득하는 데 있어 효과적이라 판단되었다. 문제는 장기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는 것, 허나 연출자 입장으로서는 욕심이 났다. 꽃들과 녹음 그리고 눈발(雪)(날씨가 도와준다면)이 공존하는 영화라...


1931년, 학송의 아버지, 정길만 에피소드
6월에 제작이 결정되었고 곧 여름. 일제 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길만 분량을 촬영하기로 했다. 당시 척박했던 농민의 생활상과 녹색으로 가득 찬 논밭의 대비를 통해 당시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기에 여름이란 계절을 선택하였다. 공개오디션, 지인들의 소개를 통해 연기자들이 결정되었다. 정길만 역할은 배우 이상현, 약간 순진해 보이는 외모가 길만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데에 적격이라 생각되었다. 이 에피소드에서 중점을 두었던 것은 1931년 당시를, 수탈과 저항이란 단순한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그리지 말자는 것이었다. 8월 중순 촬영이 시작되었고 8월말, 촬영이 종료되었다.


기다림 그리고 시나리오 수정. 개인적인 경험
1895년 에피소드는 길만의 아버지가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이 필요했다. 따라서 겨울을 기다리게 된 상황. 그러나 여러 고민과 논의 끝에 1895년 에피소드를 삭제하고, 대신 학송의 딸인 태선의 과거 에피소드로 빈자리를 메웠다. 클라이막스를 추동하며, 윗대의 선택들의 최종결과물인 태선에게 아버지 정학송과의 관계에 분열을 주어야 전체적인 균형이 맞다라고 판단하였다. 사실 2005년 <전쟁영화>를 확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제일 처음 떠오른 샷이 학송의 어린 딸(혹은 아들)이 최루탄 소리가 들리는 골목에서 아버지 심부름을 다녀오는 샷이었다. 내 유년기의 한 부분을 대표할 수 있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도착한 장면. 시나리오 안에서 점점 웃음이 줄어들고 있었다.


현재, 1983년 그리고 서교동 집
제작여건상 가을과 겨울을 나누어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현재 부분은 겨울, 1983년 분량은 의상과 미술, 소품 등으로 늦가을 분위기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영화분량 중 50% 정도의 분량을 소화해내어야 했기 때문에 프리프러덕션을 꼼꼼히 챙겨야 했다. 15회차 촬영. 현재의 태선 역할에 오우정, 1983년 어린 태선 역할에 신규리, 태선의 남편 김성호 역할에는 박혁권을 캐스팅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캐스팅인 서교동 집. 집의 촬영은 2009년->1983년->1965년 순으로 진행되었다. 한 장소(서교동 집)를 세 가지의 모습으로 표현해야 했고, 시나리오에 설정된 계절과 집을 다시 세팅해야 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계산하여 가능한 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촬영을 해야만 했다. 서교동 집, 병원, 장례식장, 산소 등등을 오가며 숨 가쁘게 한 달여 동안 촬영을 했다.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봄, 1965년, 2009년 <전쟁영화>
<계몽영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전쟁영화>를 다시 촬영하는 작업이다. 물론 다른 시대와 연결고리가 필요했기에 대사를 수정했고 다른 에피소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연기 톤도 원판과는 다르게 조정하였다. 이런 몇몇 변경된 요소들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은 4년 전 완성된 <전쟁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셋트, 조명, 촬영 등등의 업그레이드 2009년 버전이랄까? 최소한 나에게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개화하는 시기를 기다렸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봄의 풍경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싶었다. 학송의 집인 서교동 마당에는 꽃들을 심었고 잔디를 깔았다. 학송 역할의 정승길, 유정 역할의 김지인과 리허설을 하는 동안 인물에 대한 그들의 달라진 해석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4년 동안의 변화라 생각했고 그들의 의견에 동의 했다. 내 해석도 달라졌으니. 중앙대 안성 캠퍼스에 세트를 만들고, 다방 장면을 촬영했다. 전체 촬영 일정 중 가장 즐거웠던 4월의 촬영. 촬영 완료.


편집, 보충촬영, 완성.
편집을 하니 비어있는 부분, 커다란 구멍이 보였다. 그냥 두기에는 문제 있는 영화를 그냥 방치하고 넘어가는 기분이 들어 제작자인 박남희 PD와 함께 몇몇 제작진과 배우들을 설득, 아니 문제점을 솔직히 얘기했다. 그리고 7월 어느 날, 겨울이 배경인 새로운 신을 촬영했다. 이제 진짜로 촬영완료, 아니 종료.

2010년 9월
이곳저곳 <계몽영화> 소개란에 자주 보이는 작가의도.

<계몽영화>를 ‘태도’에 관한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정씨 집안 3대를 구성하는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그들의 시간을 어떤 태도로 대면하는지,
그리고 그 태도가 다음 세대로 전이 되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를 목격하고 표현하고 싶었다.

개봉 후 위의 의도가 미진하게나마 관객들에게 전달되길 기원한다.




[ Hot Issue ]

각종 영화제에서 쏟아지는 러브콜!
이 이상의 상찬은 없다!!

2009 부산국제영화제 ACF(아시안 시네마 펀드) 장편독립영화 후반작업지원작으로 선정된 <계몽영화>는 그 해 10월, 2009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상영되었다. 저예산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점과 시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냈다는 영화에 대한 소개는 상영 전부터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상영 후 관객과 평단의 뜨거운 반응은 기대를 뛰어넘는 연출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였다.

영화 참 잘 만들었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일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한동안 기분이 좋을 정도로 상당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다. 독립영화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보는 즐거움이 상당했고 시대의 재현, 대사의 농도, 시대와 성별을 넘나드는 캐릭터에 대한 탁월할 만큼의 이해를 갖추었다는 생각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평론가 김시원)

이 후 <계몽영화>는 국내 최대의 독립영화 축제인 2009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경쟁부문에 초청 상영되었다. 치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정씨 집안 가계에 속한 다양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한 배우들에 대한 호평도 쏟아졌다. 그리고, 과연 <계몽영화>는 2010년 독립영화 최대 기대작으로 떠올랐다.

분명 이지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를 지닌 태선 역의 오우정은 이 영화의 발견이다. 그리고 수더분한 이미지와 농익은 연기를 보여준 김성호 역의 박혁권은 이 영화에서 재발견해야 할 배우로 거듭난다. 배우들의 호연과 낭만과 비극을 두루 아우르는 서사의 장중함까지. 실로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작품이다.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심사단 이도훈)

2010년에도 <계몽영화>를 향한 각종 영화제의 러브콜은 끊이지 않았다. 2010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 초청 상영돼, 해외에서도 세밀한 고증으로 표현된 미장센과 연출력을 인정받았고 2010 인디포럼, 2010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까지 초청 상영되었다. '독립영화'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아낌없는 상찬을 받으며 관객과 평단을 사로잡은 <계몽영화>는 9월 16일, 드디어 개봉한다.


근현대사를 소환시킨 완벽한 고증!
이 이상의 디테일은 없다!!

<계몽영화>는 현재의 뒤틀린 가족관계가 발화된 지점을 보여주기 위해 현대극과 시대극을 오간다. 저예산으로 제작되는 영화에 과거를 재현해내야 하는 시대극은 제약이 될 수 밖에 없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과 인물들의 의상과 헤어, 소품 등이 모두 그 시대에 맞게 준비가 되어야 하므로 추가적으로 많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몽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시대적 고증과 효과적인 촬영방법에 대한 고민으로 디테일을 끌어올려 주류 상업영화 못지 않은 비주얼을 담아냈다.

1931년 일제강점기 조선의 모습은 길만의 동선을 중심으로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시가지 일대를 재현했다. 스케치를 바탕으로 손수 제작한 상점들의 간판 및 외관을 비롯해 조선인과 일본인이 섞여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위해 기모노, 제복 등 다양한 의상이 필요했음은 물론이다. 또한 길만이 소작농들을 회유하는 장소인 기독교회관, 농가의 모습 등은 수원KBS센터, 남양주종합촬영소 등을 오가며 당시와 가장 가까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1965년 에피소드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중앙국제다방이다. 학송과 유정이 선을 보고 3번째로 만나는 곳이자, 미래를 약속하는 장소인 다방은 박동훈 감독의 전작인 단편 <전쟁영화>에서도 극을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공간이었다. 상황은 <전쟁영화>와 다르지 않지만, 장편화된 시나리오에서 추가되는 내용과 기술적인 통일감을 위해 다시 촬영된 다방씬은 더욱더 세심한 고증을 바탕으로 60년대를 복원시켰다. 다방 전체의 미술뿐만 아니라 당시에 처음 등장했던 삼양라면, 보석 브랜드인 티파니 반지 등과 같은 상징적인 소품들도 그 시절의 모습 그대로 협찬, 제작해 사실감을 높였다.

1983년대에도 학송이 주로 음악을 감상하는 2층의 녹음기, 구식 칼라 TV 등은 80년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대마다 전혀 다른 장소와 인물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어야만 했기에 더욱더 철저하게 기획된 역사적 고증은 우리를 시간여행으로 안내한다.


3대를 넘나드는 배우들의 연기 호흡!
이 이상의 앙상블은 없다!!

<계몽영화>는 3대를 아우르는 가족들이 등장하기에 조부모, 부모,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까지 많은 인물들이 존재한다. 노역 분장을 마다하지 않은 배우들의 호연뿐만 아니라 서로 피를 나누고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준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은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의 백미다.

길만 역으로 분한 이상현은 평범한 가장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친일이라는 반민족적 행동으로 갈등하는 인물을 인상 깊게 연기했다. 특히 그의 눈매는 연민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선해 보이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위선적인 행동도 마지않는 이중적인 모습은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학송 역의 정승길은 1965년 유정을 만나 낭만적인 프러포즈를 하는 행복한 모습에서 가부장의 화신이 된 83년, 그리고 간경화로 죽음에 이르는 현재의 모습까지 50여 년의 세월을 표현하는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단편 <전쟁영화>를 통해 정승길과 함께 호흡을 맞춘 김지인 또한 마찬가지다. 학송과 결혼을 약속하던 순수한 모습부터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학송의 임종을 지켜주는 속 깊은 어머니의 모습을 섬세하게 연기했다. 특히 <전쟁영화>에서도 등장했던 학송과 유정이 만나는 다방씬은, 한층 무르익은 정승길과 김지인의 완벽한 호흡으로 <계몽영화>에서 더욱 업그레이드 되었다.

태선 역의 오우정은 특유의 도시적인 이미지와 차가운 듯 안정된 목소리 톤으로 유년기 시절의 상처로 쉽게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는 현재의 태선을 강렬하게 연기했다. 태선의 남편이자 태선의 오빠인 태한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성호 역을 맡은 박혁권 또한 정씨 집안에 가장 가깝게 살을 맞대고 있는 인물로 분해, 어긋난 가족의 폭력에 희생되는 약자의 모습을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계몽영화를 촬영하기 전 단편 <우유와 자장면>(2009)에서 부부로 출연한 바 있는 그들은 다시 한번 부부역할을 맡아 더욱더 깊어진 연기 호흡을 보여주었다.

자칫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많은 등장인물들에도 불구하고 과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연기와 완벽한 호흡을 통해 빚어진 연기 앙상블은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보는 이를 압도한다.




[ About Movie ]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이후, 신군부시대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캐릭터화하다!

<계몽영화>는 1931년과 1965년, 1983년과 현재, 이렇게 4개의 시간으로 쪼개져 있다. 정씨 집안의 계보가 이어졌던 근 80여 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시간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방점을 찍고 있는 사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한정된 러닝타임 속에 시대마다 정확한 특징을 녹여내기 위해 영화는 시대를 함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상징들을 캐릭터화했다. 인물들의 대사나 행동보다 강렬하게 기억되는 물질이나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다.

1931년, 일제강점기를 대변하는 상징은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다. 1908년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식민지 착취기관인 이곳은 주권을 빼앗기고 고통 받는 소시민의 삶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다. 아내와 갓 태어난 둘째 아이를 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해야만 하는 길만이 동척에 다니며 소작농에게 고리를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살아남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일제강점기의 단면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길만의 둘째 아들 정학송은 한국전쟁 이후 시대인 1965년, 유정에게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 다방을 찾는다. 자중지란의 전쟁이 끝난 후 황폐화 된 국가는 박정희 정권의 출범 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대적인 국토개발과 수출산업을 단행한다. 학송은 자신이 나일론 주식회사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유정에게 청혼을 한다. 2차 산업에 종사한다는 사실은 당시의 학송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수식어였던 것이다.

1983년, 신군부시대에 유년기를 보내는 어린 태선은 학송이 시키는 녹화, 녹음 심부름을 하는 것이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비리로 부와 권력을 축적한 학송의 고지식한 여가 생활, 그것이 바로 클래식을 듣는 것이다. 1984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최초 내한 공연을 가진 것은 대한민국의 문화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당시의 상류층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기도 했다.

시대 상황에 묻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시대마다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정확한 특징을 바탕으로 근현대사를 캐릭터화 시켜 표현하고 있다. 시대를 사용할 때에는 의미와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감독의 지론은 상징적인 사건들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극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가족들의 변화를 반영하는 공간, 이층양옥집
시대의 흐름 속에 상징을 담아내다!

<계몽영화>안에서 '집'이란 역사다. 1965년 학송이 유정에게 청혼할 때 자랑했던 '북한산 족두리 봉이 보이는' 베란다가 있는 이층양옥집이며, 1983년 독재자처럼 군림하고 있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뎠던 태선의 상처가 묻어있는 곳이며, 2009년 현재 땅값이 상승하는 시기를 기다리느라 방치된 채 망가져 있는 문이다. 이렇듯 오랜 시간 동안 한 가족의 사연을 담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족을 대표하는 이층양옥집을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영화는 계절의 변화로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는 가족의 상황을 암시한다.

1965년의 집은 새롭게 출발하는 봄이다. 유정과 만나기 위해 채비를 하는 학송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삽입곡인 '문리버'를 흥얼거리고,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새집을 단장하고 있는 아버지 길만이 그를 배웅한다. 앞마당에 핀 진달래, 개나리와 함께 화창한 봄날의 전경은 학송의 프러포즈와 더불어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예고하는 설렘이 묻어난다.

가족의 뿌리가 깊게 내려앉은 1983년의 집은 늦가을이다. 이 공간에는 학송의 모든 역사가 존재한다. 홀로 음악을 감상하는 2층의 공간과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나누는 거실의 어두운 공기는 독재적으로 가정에 군림하는 학송을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낙엽이 흩뿌려진 마당,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가족내부의 균열들. 견고하게 다져진 듯 보이는 내부지만 스산한 기분마저 드는 집의 외관은 계절의 변화와 맞물리며 비극의 태동을 암시한다.

2009년 현재의 집은 다시 시작할 지, 끝일지 알 수 없는 쇠락한 겨울이다. 찬란했던 가족의 역사에 중심에 있었던 것이 무색하게, 이제는 먼지 쌓인 퇴물로 전락한 집. 학송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빈집을 찾은 태선과 태한의 앞에는 눈 덮인 앙상한 나무들만이 마당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곧 내려앉을지 모르는 현관문의 상태 또한 가족의 현재를 반영한다.

각기 다른 계절로 표현된 집은 단순히 공간으로써의 목적이 아니라 인물들의 상황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정된 장소가 주는 답답함과 표현의 제약을 상쇄하고, 집중도 있는 인물들의 묘사와 세밀한 연출력으로 더욱 밀도를 살린 미쟝센은 제한된 공간을 오히려 풍부하게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몰입의 스펙터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야기!!

4개의 각기 다른 시대가 나오고 그 공간들도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영화의 플롯은 순차적으로 시간을 나열하지 않는다. 현재를 기점으로 정씨 집안 가족사의 방점을 찍었던 과거와 대과거를 오가고 있는 시간은 유기적으로 맞닿아 있어 연결성을 잃지 않는다. <계몽영화>의 시간 구조를 간단하게 도식화 해보면 다음과 같다.

시간 구조 : 1965년 - 현재 - 1931년 -현재 - 1983년 -현재 - 클라이막스 - 엔딩

오프닝이 끝나고 처음으로 등장하는 1965년 에피소드의 마지막 장면은 학송과 유정의 고궁 데이트 장면이다. 벤치에 앉아 대화를 주고받던 그들 사이에 보이스 오버로 공보소리가 울려 퍼진다. 전쟁을 연상하게 하는 공보소리 다음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비행기 소리는 학송의 임종을 보기 위해 미국에서 한국으로 온 태선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이다. 이 소리를 함께 배치시킴으로써 영화는 시대에 따라 소리를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이는 지를 느낄 수 있게 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학송이 숨을 거두기 직전, 그의 눈앞에 길만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의식이 불투명하던 병상에서도 길만의 일본 이름인 ‘요시미츠’를 발작적으로 외치던 학송이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은 생김과 동시에 시간은 19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일행각으로 집 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길만을 찾아온 옛 친구이자 독립군인 상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터트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떠난 그 때, 길만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리고 운명의 시간인 오후 2시가 되자, 학송의 죽음을 알리는 장례식 현장으로 돌아온다. 이 후 유품정리를 위해 방치된 옛 집을 찾은 태선은 2층에서 앞마당을 내려다보며 어릴 적 상처로 남았던 1983년의 기억을 또 다시 소환한다.

물 흐르듯이 시대를 넘나드는 <계몽영화>의 플롯은 절묘하게 맞물리는 상황들의 연결로 오히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함께 흐르는 듯한 착각마저 준다. 마치 흩어진 퍼즐의 조각을 맞추듯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아가는 시간의 순행과 역행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엔딩의 현재의 태선에서 시점에서 시작되어 4개의 시대를 하나의 컷으로 보여주는 판타지 장면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진 가족의 관계를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 History Tip ]

1931년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
1908년 일제가 조선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식민지 착취기관. 일본정부의 직접적 지배하에서 그들의 특권에 기초한 독점적 특수회사로, 극 중 동척이라 불린다. 동척에 들어가 친일행위를 하는 길만은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점을 앞세워 동척의 사업을 소작농들에게 설명하며 회유하려 한다.


1965년 한국전쟁 이후

수출 1억불 달성
박정희 대통령의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으로 1964년 11월 30일에 수출 1억불을 달성, 이 날을 ‘제1회 수출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학송은 ‘수출이 아니면 죽음’이라는 사훈의 나일론 주식회사를 다닌다. 그리고 유정에게 프러포즈를 하면서 당시 급부상한 섬유산업에 종사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안정된 직장’을 가졌다는 것을 어필한다.

삼양라면
삼양식품이 일본의 명성식품으로부터 기계와 기술을 도입, 1963년 9월 15일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생산했다. 한국전쟁 이후 식량부족으로 절대 빈곤에 처해 있던 국민들의 끼니를 해결해 주었던 라면의 당시 가격은 10원이었다. 학송은 유정에게 보자기에 쌓인 라면 위에 반지를 넣은 이벤트를 준비한다.


1983년 신군부시대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 내한 공연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이 ‘클래식 음악의 황제’라 불리는 전설적인 지휘자 카라얀과 함께 198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최초 내한 공연을 가졌다.(극 중 1983년) 클래식 애호가 이자 카라얀의 팬인 학송은 태선에게 이 공연의 라디오 실황중계를 녹음하라고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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