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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2006) Our School 평점 9.4/10
우리 학교 포스터
우리 학교 (2006) Our School 평점 9.4/10
장르|나라
다큐멘터리/드라마
한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07.03.29 개봉
131분, 전체관람가
감독
(감독) 김명준
누적관객
일본땅 조선아이들의
`용감한` 등교가 시작된다!

흑가이도 조선학교 아이들의 희망다큐

곱다고 봐주는 사람들도 없는데 어이하여 너는 여기에 피었는가?
분계선 코스모스 같은 아이들... 볼수록 사랑스럽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우리학교’ 입니다!

해방직후 재일 조선인 1세들은 일본땅에서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 자비로 책상과 의자를 사들여 버려진 공장에 터를 잡아 ‘조선학교’ = ‘우리학교’를 세운다. 처음 540여 개가 넘던 학교는 일본 우익세력의 탄압 속에 이제 80여 개의 학교만이 남게 되었다. 김명준 감독은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교원, 학생들과 3년 5개월이라는 시간을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낸다.

“조선사람은 조선학교에 다녀야 한다”
- 일본땅 조선아이들의 ‘용감한’ 등교가 시작된다!

‘우리학교’의 학생들은 여느 10대들과 다름없이 명랑하고 밝다. 일본이라는 타국땅에서 조선인이라는 이방인으로 살아가지만 ‘우리학교’라는 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동포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기 위해 공부하고 운동한다. 북에 대한 적대감이 반영된 일본 우익세력의 무작위적 협박과 이로 인한 신변의 위협을 겪으면서도 ‘우리학교’의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들은 ‘조선사람은 조선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그 평범한 진실을 어렵게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PROLOGUE 】

‘우리학교’를 소개합니다!
해방 직후 일본땅에 세워진 조선인들의 민족학교,
‘조선학교’ = ‘우리학교’

해방 직후 조국으로 건너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게 된 조선인 1세들은 조국의 말과 글을 지켜가기 위해, ‘조선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잊지 않기 위해 사비를 들여 의자와 책상을 사고 버려진 공장에 터를 잡아 조선인들을 위한 학교, ‘조선학교’를 세웠다. 540여 개이던 조선학교는 일본 우익세력의 탄압 속에 60여 년이 지난 현재 80여 개의 학교만이 남았지만, 일본땅 조선인들의 기상은 여전하다. 조선학교는 ‘우리학교’라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라는 단어가 가지는 특별하고 소중한 의미 그대로 후손들에게 우리말, 우리글, 우리 민족성을 가르치기 위한 민족 교육체로서의 자긍심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이 해방되고 일본이 패망했을 때, 그 때까지 일본 국적이었던 재일동포들에게는 ‘식민지 이전 시대의 조선’ 국적이 부여되었다. 이후 한국국적을 취득한 재일동포들도 많이 있지만, 현재까지도 ‘조선’국적을 버리지 않고 있는 동포들 역시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사라진 조선, 혹은 기호로서의 조선의 국민으로, 즉 현실적으로는 ‘무국적자’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학교는 일본 문부과학성으로부터 정식학교가 아닌 각종학교로 분류되고 있다. 각종학교는 학교교육에 비견되는 교육을 행하는 학교로, 공식적으로 학교 졸업자격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대입수험자격 또한 얻지 못한다. 따라서 일본에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수험자격을 얻기 위한, 일종의 ‘대입검정’ 시험을 따로 치러야 한다.

‘조선학교’라고 하면 흔히 조총련계의 북조선을 떠올리는 남쪽의 사람들. 그리고 북조선과 비슷한 억양의 말투를 사용하고 북조선을 마음의 조국이라 생각하는 조선학교 아이들이 더 많은 현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은 우리나라 정부의 태도에 기인한다.


조선학교가 생기던 초창기 가장 어려웠을 때, 당시 사회주의국가로 살림이 넉넉했던 북쪽 정부는 재일동포를 위한 교육 원조비를 지원해주었다. 북쪽 정부의 이런 지원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지만, 이에 비해 전쟁 직후 넉넉치 못한 나라살림으로 재일동포들의 문제까지 관여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남쪽 정부는 이후 경제적 여력이 생긴 다음에도 ‘조선학교’에 대해 북쪽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이데올로기 공세로만 일관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들이 조선학교 아이들과 선생님들에게 고향은 남쪽이지만 자신들을 알아주고 위해주는 조국은 북쪽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우리학교는 ‘해방기의 조선’의 정신을 이어오고 있는 민족학교라는 점이다. ‘우리학교’의 아이들은 ‘조선인’으로서의 민족교육을 받을 뿐, 자신의 국적은 자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가지고 있다. <우리학교>의 정식 개봉을 통해 우리사회가 일본 내 조선학교 = 우리학교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진지한 고민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HOT ISSUE 1】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확인된 살아있는 감동의 위력!
2006 부산국제영화제, 2006 인디다큐페스티발 연일 매진 사례 기록!

2006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 수상!
2006 올해의 독립영화상 수상!
2006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작 선정!
2007 다큐 열풍을 이어갈 다큐멘터리 최고 기대작!!


<사이에서> <비상> 등 2006년에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돌풍이 여느 해보다 거셌다. 이런 다큐멘터리의 열풍을 2007년에도 꾸준히 이어갈 최고 기대작으로 떠오른 영화 <우리학교>!
<우리학교>는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 수상(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 2006년 올해의 독립영화상 수상과 함께 2006 인디다큐페스티발 공식 개막작으로도 선정되며 이미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우리학교>는 먼저 선보인 부산국제영화제와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매 상영마다 매진 사례를 기록했으며, 그 매진 행렬은 서울독립영화제와 지역상영회까지 이어졌다. <우리학교>에 대한 이러한 폭발적 반응은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에 의한 결과물이라 더욱 값진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3월 29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우리학교>가 얼마나 많은 관객들을 눈물과 감동의 도가니로 빠뜨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HOT ISSUE 2 】

혹가이도 조선학교 아이들의 ‘하나를 위한 꿈’을 만난다.
반갑습니다~ ‘우리학교’! 조선학교와의 뜨거운 만남!

국내 최초! ‘조선학교’에 관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박치기>등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들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이 개봉하여 의미 있는 흥행을 거두면서 한국사회에서 조선학교와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가 떠올랐다. 그리고 조선학교 출신의 재일감독인 <69 식스티나인> <훌라걸스>의 이상일 감독, <피와 뼈> <수>의 재일조선인 감독 최양일 감독 등의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면서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조선학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최초로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의 개봉은 조선학교에 대한 사실적이고도 실제적인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 있는 사건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우리의 글’과 ‘우리의 말’을 배우기 위해 ‘조선학교’를 선택한 우리 아이들. <우리학교>는 더없이 순수하고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하나를 위한 꿈’에 성큼 다가서 있는 이 아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안아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 ABOUT MOVIE 1 】

“조선사람은 조선학교에 다녀야 한다”
일본땅 조선아이들의 ‘용감한’ 등교가 시작된다!

조선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조선학교 아이들
일본 우익세력의 탄압에도 민족교육의 자존감을 지켜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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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또상, 오까상’ 아니고 ‘아버지, 어머니’ 부를 때부터 ‘조금 남하고 다르다, 나’라고
생각했습니다.”

- 학생 조성래 (고급부 3학년) : 언제 처음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는지

“1세 동포들이 많이 보러오십니다. 감동시키자! 뜨거운 눈물 흘릴 수 있도록! ”
-교사 박대우 : 우리학교 교내 합창대회 전 아이들에게

“그것을 입으면 뭔가… 조선사람으로서의 의식이 커진다고 할까, 나에게 용기를 준다고 할까…”
- 학생 오려실(고급부 3학년) : 추운 날씨에도 치마 저고리를 입는 이유에 대한 물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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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으로서의 자존감을 잊지 않기 위해 재일조선인 1세들이 직접 세운 민족학교인 ‘조선학교’. ‘우리학교’라고도 불리는 조선학교는 일본땅 조선인들의 민족 교육체로, 일본에서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조선인으로서의 나’를 지키기 위해 일본학교가 아닌 ‘조선학교’, ‘우리학교’라는 용감한 선택을 한 재일조선인 학부모와 아이들. 졸업 후 대학진학을 위해 다시 시험을 치러야 하고, 때로는 일본 우익단체들의 무작위적 협박에 치마 저고리가 찢기는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조선인으로서의 자존감을 가지고 꿋꿋하게 ‘우리학교’로의 등교를 이어가는 이 아이들은 국적에 앞서 ‘조선인이라는 긍지’를 가장 먼저 가슴에 새긴다.



【 ABOUT MOVIE 2 】

“우리를 보시라 그 어디 부럼 있으랴”
‘서로의 산’이 되어 살아가는 조선학교 아이들의 기특한 성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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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지금쯤 소년원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 학생 윤태영(고급부 3학년) : 우리학교에 다니길 잘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조선말만 쓰는 우리학교에서 조선말이 익숙치 않아 아예 입을 다물고 살았는데… 그런 사정을
알고 반장이 편입생들은 일본어를 써도 된다고 해서… 정말 울 뻔할 정도로 기뻤습니다. 너는
왜 알아주는가 나의 사정을…”

- 학생 오려실 (고급부 3학년) : 학교에 처음 편입해 조선말이 익숙치 않아 일부러 말도 하지 않고 아이들과 서먹하게 지내던 시절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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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조선 민족의 말과 글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육체인 ‘우리학교’. 이곳의 아이들이 학교에 입학해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바로 ‘고맙습니다’이다. 하지만 우리학교 아이들이 학교에서 우리말보다 먼저 배우는 가르침은 바로 서로를 알아주고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 즉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귀중함이다. ‘조선인’이라는 동질감으로 뭉쳐 함께이기에 서로에게 더욱 특별하고 행복한, 서로의 산이 되어 살아가는 조선학교 아이들. 함께한다는 것의 소중함과 특별함을 아는 조선학교 아이들의 용감하고 기특한 용기가 당신의 마음을 흔든다.



【 ABOUT MOVIE 3 】

“어려움이 있을 땐 사양 없이 ‘우리학교’를 찾아오십시오!”
동무 같은 선생님이 심장으로 건네는 소중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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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 같은 선생님!’ 우리 마음을 잘 알아 줍니다.”
- 학생 리지옥(고급부 3학년) : 우리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질문에

“아이들하고 한 이불 속에 다 같이 들어가 자는데 한 녀셕이 ‘이런 거 일본학교에서는 생각
못한다’ 하니, 더더욱 사랑스럽고 사랑해주어야 한다고 느끼지요.”

- 교사 김유섭 : 우리학교가 특별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지금까지 해왔던 세계하고는 영 다른 세계가 있어서… 이 아이들은 정말로 밝은 표정으로 생활하고 있구나. 아주 신선해서…”
- 교사 후지시로(축구부 코치/일본인 선생님) : 조선학교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졌다고 기죽지 마라. 너희들다운 게임이었다. 너희는 백(100%)내었다. 오늘을 잊지 말자”
- 교사 박유사 : 일본학교 대항 축구대회에 패한 후 아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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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해 손수 케익 만들어 주기,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어린 학생들을 위해 언니, 오빠, 부모가 되어 함께 놀아주고 품에 안아 재워주는 등 한결 같은 모습으로 아이들의 든든한 벗이 되어주는 조선학교의 선생님들은 ‘우리학교’가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다. ‘아이들이 사랑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들 자신부터 조선학교를 가슴 깊이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조선학교의 선생님들은 ‘우리학교’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졸업생들을 바라보며 아이들이 맞이해야 할 험난한 세상을 알기에 가슴이 더욱 먹먹해진다. 조선학교 선생님들의 “어려움이 있을 땐 사양 없이 ‘우리학교’를 찾아오라”고 하는 졸업식에서의 마지막 한마디는 그래서 더욱 눈물겹다.



【 PRODUCTION NOTE 1 】

아내를 통해 시작된 ‘우리학교’와의 운명적 만남!

조선학교와 재일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극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출자였던 故 조은령 감독과 촬영감독이었던 김명준 감독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재일 조선인을 다룬 <하나>라는 장편 극영화 시나리오를 썼던 조은령 감독은 당시 촉망 받는 여성감독으로서 우리에게는 한국 최초 칸 영화제 단편 경쟁 부분에 초청되었던 <스케이트>의 감독이기도 했다. 조선학교를 다룬 극영화촬영에 앞서 가제 <프론티어>(가제)라는 극영화 메이킹 다큐를 준비하던 김명준 감독의 아내 조은령 감독은 갑작스런 사고로 거짓말처럼 유명을 달리한다. 결혼 7개월 만의 일이다.

재일조선인의 문제를 온몸과 마음으로 받아 드렸던 조은령 감독. 김명준 감독은 아내를 위해 장편 다큐 <하나를 위하여>를 완성하고 혹가이도로 향한다. 그는 아내를 통해 시작된 우리학교와의 아름다운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장편 다큐 <우리학교>의 제작에 착수한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왜곡하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신뢰하고 있는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선생님들과 아이들을 모습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RODUCTION NOTE 2 】

촬영기간 3년, 편집기간 1년 6개월
혹가이도 조선학교 아이들과의 특별한 만남과 기록

2002년부터 시작된 촬영이 2003년 잠깐의 공백기를 딛고 다시 시작된다.

김명준 감독은 장편 다큐멘터리 <우리학교>를 위해 3년 5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혹가이도 조선학교에 머물렀다. 일본말을 할 줄 몰랐던 김명준 감독은 비교적 조선말이 익숙한 ‘우리학교’ 선생님들과는 금새 가까워질 수 있었지만 일본말이 더 익숙한 아이들과 허물없이 지내기까지는 1년 남짓의 시간이 걸렸다. 명절이나 방학 때면 학교에 홀로 남을 김명준 감독을 위해 몰래 식사당번을 서주던 선생님들, 처음에는 카메라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던 아이들도 나중에는 ‘명준형님은 자연태 찍기를 좋아한다’며 일본땅에서 조선학교 학생으로 살아가는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던 해맑은 조선학교 아이들까지…

모든 촬영을 마치고 2005년 4월 500여 개가 넘는 촬영 테잎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온 김명준 감독의 이 사랑스런 아이들과의 3년 5개월간의 특별한 교감은 영화의 편집에만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했다.



【 PRODUCTION NOTE 3 】

제작비 7000만원, 최소 스탭만으로 완성한 독립다큐멘터리!
멀티 플레이어 스탭들의 활약으로 최고의 디지털영화가 탄생하다!

3년 5개월이라는 장기간을 일본에 체류하며 완성한 장편 다큐멘터리이지만, 제작비용은 현금 5,500만원, 현물지원 1,500만원, 토탈 7,000만원이라는 최소비용으로 완성되었다.

부족한 제작비와 인력예산의 한계 때문에 <우리학교> 스탭들은 한명한명이 모두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만 했다. 엔딩 크레딧을 찬찬히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김명준 감독과 박소현 조감독이 직접 촬영, 편집, 구성, 대본을 모두 완성했으며, 고영재 프로듀서가 직접 사운드, 믹싱, 예고편 등을 담당하는 등 <우리학교>는 스텝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재능과 열정을 다해 애정으로 만들어낸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우리학교>의 모든 편집이 끝나고 최초로 상영된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화면’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우리학교>는 근래 제작된 디지털 영화 중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 EPILOGUE 】
혹가이도 조선학교 21기 학생들… 영화를 보고

조선사람으로서 생활하는 것은 지금 정말 어렵지만,
동포나 조국, 우리 꿈을 위하여 배우고 생활하고 있는 학생과 선생님들을 보고 있으면
용기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장소도 있고, 감동도 많이 받았습니다.
한 명 한 명의 웃음이 아주 빛나고 있고, 기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나도 그 사람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랑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

영화 속 조국방문 갔을 때의 나는 우리나라의 도시를 보고 아주 곱다고 느꼈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재일조선인으로서 살고 있어서
역시 지금부터 우리가 지켜야 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고급부 축구부 시합이었습니다.
나는 시합에 져버렸던 선배들의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매우 감동했습니다.
**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우리학교가 역시 제일 좋다고 느낄 수 있었다.
어디에 가도 나는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학생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그럭저럭 학교에 다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우리학교>를 보고 그 중요한 마음이 되살아났습니다.
자기가 조선학교에 다니는 것은 굉장한 일이고 정말 조선사람으로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조선사람 아니었으면 이 동포사회를, 우리동무를, 우리학교를 모른 체 살고 있었겠지요.
**

이 영화 하나하나 장면들이 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났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웃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눈물들이
다 귀중한 ‘보물’처럼 느끼기도 했습니다.
**

<우리학교>는 정말 ‘우리학교’를 그냥 찍고 있어서 정말 신선한 기분으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학교가 싫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그런 것을 느끼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우리학교를 더 소중히 귀중하게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

우리학교와 같은 학교는 세계 어디 찾아도 없다고 생각하고,
우리학교가 어떤 학교인가 1세 동포들이 세우고 지켜왔던 학교가 어떤 학교인가를
영화를 보았던 사람에 그런 문제를 안겨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우리학교에서 자라나고 있는 학생이 어떤 학생인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학교에서는 정말 사람다운 사람이 자라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반도 남쪽에서는 잊혀진 존재였던
재일 조선인들의 안식처 <우리학교>.

조선학교를 몰랐던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품어야 할 또 하나의 이름’으로
<우리학교>가 기억되기를 고대해 본다.

2007년 모두의 <우리학교>가 되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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