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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트 93(2006)
United 93 | 평점7.3
플라이트 93(2006) United 93 평점 7.3/10
장르|나라
드라마
영국, 미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06.09.08 개봉
110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감독 폴 그린그래스
주연
주연 사이먼 폴란드, 낸시 맥도니엘
누적관객
66,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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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무역센터, 펜타곤에 연쇄 충돌한 3대의 민항기
세계를 발칵 뒤집은 9.11 테러사건!
그러나 그날, 납치된 비행기는 총 4대였다…


따뜻하고 평온한 분위기가 감도는 뉴저지 공항.
새로운 국장의 취임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미국연방항공국.
민항기들을 인도하고 진로를 체크하느라 바쁜 아침을 보내고 있는 관제센터.
편안한 하루의 시작을 알리듯 고요한 9월 11일 오전.
그러나 갑작스레 항로를 이탈하기 시작한 민항기로 평온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보스턴에서 L.A로 향하는 아메리칸 항공 'AA11'편이 예고 없이 항로를 이탈하고,
관제센터가 교신을 시도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다.
그 순간 들려온 이국적인 말투의 짧은 교신, "우리는 비행기들을 납치했다!"
다급해진 관제센터는 테러집단에게 납치된 "비행기들"을 찾아야만 한다.
美 영공에 떠있는 민항기는 총 4200대!
군과 항공국은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민항기들을 찾기 시작한다.

뉴욕 근처에서 갑자기 레이더망에서 사라진 'AA11'편.
그 시각, CNN에서는 뉴욕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가 충돌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된다.
세계무역센터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민항기가 재차 충돌하고,
이어 국방부 펜타곤에도 민항기가 추락한다.
미국 전역은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뉴욕은 극도의 공포로 마비된다.

같은 시각, 뉴저지에서 샌프란시스코를 향하고 있는 '유나이티드93'편의 승객들은
지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평온한 비행을 하고 있다.
하지만 승객으로 위장한 테러집단들이 행동을 개시, 비행기를 장악하자 공포에 휩싸이고,
가족들에게 마지막 목소리를 전하며 눈물을 흘리던 승객들은
오직 살기 위해 테러집단에 맞설 준비를 시작하는데…

9월 11일, 네번째 비행기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충격과 아픔으로 가득한 숨겨진 그 날의 비극이 재현된다!

[Prologue]

평온했던2001년 9월 11일, 미국의 민항기 4대가 이슬람 과격단체로 추정되는 테러단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납치된 4대의 항공기 중 2대가 세계무역센터에 정면으로 충돌했고, 이 여파로 세계무역센터 부속건물인 7호 빌딩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1대는 美 국방성인 펜타곤에 떨어져 125명이 사망했다. 마지막 1대의 비행기는 국회의사당을 목표로 향하던 중 펜실베니아 외곽의 들판에 추락했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이 테러사건은 CNN 방송망을 타고 생중계되었으며 세계 경제의 중심부이자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은 하루 아침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고 말았다. 미국 정부는 역사상 최초로 美 영공에 떠있는 4,200대의 민항기를 일제히 착륙시켰으며 이후 국제선의 이착륙을 금지시켰다. 이 날 4대의 민항기에 타고 있었던 탑승객 전원을 포함하여 총 5,000여 명의 무고한 시민이 생명을 잃었다.
9.11 테러사건으로 명명된 이 사건은 인류 역사에 기록될 잔혹하고 서슴없는 자살테러로 기억되고 있다.


[About the Movie]


전 세계를 커다란 충격에 빠뜨린 인류의 비극
9·11 테러사건을 최초로 영화화하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끔찍한 자살테러인 9.11 사건이 최초로 영화화된다는 소식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9.11 테러는 21세기를 경악하게 만든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그 날을 영화화하는 것은 보통 조심스러운 작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 사건을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영화로 제작할 필요가 있었고 그 적임자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나섰다. 폴 그린그래스는 9?11 테러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 날 일어난 사건과 그 여파에 대한 미디어의 보도를 조심스레 지켜봤다. <본 슈프리머시>의 제작을 마친 이 후, 9.11 테러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지만 적당한 시기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직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역사적인 사건을 영화로 제작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대한 사실에 근접한 객관적인 이야기를 만들기를 원했고 그 날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한 승객들과 승무원들, 비행기 조종사에 관한 감동적이고 흡입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세계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네 번째 비행기'인 'UA93'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UA93'편은 당초 테러범들이 목표한 국회의사당에 도착하지 못한 채 펜실베니아 외곽에 추락한 항공기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UA93'편에 대한 치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이 작품을 제작하려는 이유와 그 날 하루 동안 지상의 관제탑과 관제센터, 비행기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관점을 시간 순서대로 구성된 기획안을 완성한 뒤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 치밀한 사전 준비를 통해 탄생한 <플라이트93>은 사실적이고 충격적인 영상을 통해 보는 이들을 피할 수 없는 진실로 이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의 호평을 얻고 있다. 충격적인 아픔과 생생한 감동이 살아 숨쉬는 9.11 테러사건의 모든 것을 <플라이트93>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납치된 비행기의 제한된 공간, 91분의 비행,
그 안에서 펼쳐지는 긴박한 스토리!


<플라이트93>은 'UA93'편이 추락하기까지 91분간의 비행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UA93'편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날, 그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누구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다. 그 날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에게 그토록 끔찍한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그 날 희생된 이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테러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렇기에 영화는 의도적으로 비행기 조종사들과 승객들, 승무원들에게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었다. "<플라이트93>은 멋진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다. 관객들에게 영화 속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모인 46명의 사람들을 따라 비행기에 타서 91분간의 위험하고 공포스런 여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살을 시도하는 종교적 광신자들 무리와 무작위로 선택된 무고한 사람들이 휘발유를 원료로 날아다니는 기계를 제어하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는 이미지 말이다. 그것은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싸움이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들을 중심으로 현실감 있는 영화를 만들려는 노력이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플라이트93>를 탄생시켰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가 신뢰할 수 있는 사실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당신이 가진 정치적 성향과는 관계없이, 9월 11일에 일어난 그 사건이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 사건을 통해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직시하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만 할 때다."


연방항공국의 최고 지휘관 '벤 슬라이니'를 비롯해
실제 조종사, 승무원 그리고 일반인을 캐스팅!
그 날의 사실적인 공포와 아픔을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재현한다!


제작진들은 <플라이트93>이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공포와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서 숙련된 연기자가 아닌 일반인을 캐스팅 하기로 결정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분위기를 표현해 줄 빛나는 재능을 지닌 몇몇의 연기자들을 제외하고는 실제 조종사, 스튜어디스 그리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캐스팅을 진행했다. 당시 'UA93'편의 조종사와 승무원 역을 맡을 연기자는 인물에 사실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실제 조종 경험이 있고 승무원 훈련을 받은 인물이 필요했다. 고인이 된 조종사 제이슨 달 역을 맡은 J.J. 존슨은 실제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A)의 조종사이며, 부조종사 르로이 호머 역 또한 10년이 넘도록 민항기를 조종했던 게리 코목이 맡았다. 당시 사망했던 승무원들 중에서 두 명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스튜어디스를 캐스팅, 보다 사실적이고 실감나는 공포와 슬픔을 표현해냈다.

뿐만 아니라 9.11테러가 일어났을 당시 그 일을 직접 겪고, 사건의 진화를 위해 지휘에 나선 실제 인물들이 영화에 출연해 더욱 화제를 모았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연방항공국 국장을 역임한 벤 슬라이니다. 9.11 테러가 발생한 당일, 미 연방항공국에 첫 출근을 했던 그는 9.11 당시 미국 영공에 떠있는 4,200대의 민항기를 모두 착륙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최고 지휘관이었다. 미 영공에 떠있는 민항기를 일제히 착륙시킨 그의 명령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기록되었다. 그는 연방항공국 담당자들에게 4,200대의 비행기 중 납치된 비행기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린 후, 테러가 진행되는 모든 상황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는 자신의 첫 출근 날 발생한 이 끔찍한 사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음을 고백하며 영화에서도 직접 본인이 벤 슬라이니 역할로 등장한다. 그는 그 날의 사건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야말로 희생된 고인들을 기리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출연을 결정했다.

그 외에도 보스톤 관제센터의 관제관인 토마스 토미 로버츠, 군사 전문가 콜린 스코긴스, 북미방공본부의 무기 담당관인 제임스 폭스 소령, 선임 감독관이자 기술자인 제레미 파월 하사관이 실제로 영화에 출연했다.

연기를 하는 동안 그들은 항상 두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하나는 그들이 연기하는 고인이 된 인물들에게 위엄을 갖추자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말하듯 91분간의 비행 중 일어난 사건들을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재현해내자는 것이다. 이들은 5년 전 그 날의 상황을 영화 속에서 그대로 재현해내는 어려운 촬영에 기꺼이 참여해 사망한 이들에게 추도의 마음을 전했다.


<블러디 선데이>, <본 슈프리머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새로운 프로젝트!


작품성과 대중성을 오가며 뛰어난 연출력을 인정받고 있는 폴 그린그래스가 이번에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9.11 테러사건을 영화화해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그는 1972년 북아일랜드에서 일어난 시민권을 획득하기 위한 평화적인 행진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구성한 <블러디 선데이>를 통해 2002년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2002년 선댄스영화제 관객상, 2002년 영국 독립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최근 세계적으로 놀라운 흥행성적을 기록한 <본 슈프리머시>로 개봉 첫 주에 미국에서만 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고, 1억 7500만 달러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작품성과 스케일을 넘나드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 뿐만 아니라 수 많은 다큐멘터리의 각본과 감독도 겸해 특별한 감각과 독특한 시각을 인정받았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기에 앞서 영화 제작에 관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9?11 테러가 가지는 의미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텔레비전은 그 사건이 일어난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으며, 기자들은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9.11 테러 사건의 전후 관계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영화감독 또한 자신의 역할이 있다. 나는 영화감독으로서 한 사건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진다는 것이 그 사건 자체가 가지는 의미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해 9.11 테러가 가지고 있는 남다른 의미를 강조했다. 그 누구도 아닌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만들어내는 9.11 테러사건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전 세계가 지금 <플라이트93>을 주목하고 있다.


[Production Note]

50일간 계속된 희생자 가족들의 참여와 심층 인터뷰!
희생자들의 성격, 표정, 옷차림까지 그대로 재현한다!

# 희생자 가족들의 참여


그린그래스 감독은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정하고, 자료조사를 위해 'UA93'편에 탑승했던 희생자들의 유가족 모두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이번 영화를 만들려는 그린그래스의 간절하고도 명징한 목적과 당시의 일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협조를 부탁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다행히도 감독의 목적을 이해한 대부분의 유가족들이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제작자는 이야기했다. "사랑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존경을 표하기 위해 모두들 기꺼이 참여했다. 아직 고통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그들의 증언이 보다 사실적이고 정확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모두들 잘 알고 있었다."
유가족들은 <플라이트93>의 전 제작과정에 참여했다. 제작진들은 캐스팅이 결정될 때 마다 유가족들에게 알렸고, 전 출연진의 명단과 그들의 가족 역을 맡을 배우들의 사진도 보냈다. 몇몇 배우들은 개인적으로 유가족들을 만나기도 했고, 나머지 배우들도 전화로 연락을 주고 받았다. 또한 제작진은 2주에 한번씩 뉴스레터로 제작 과정을 알렸고, 그린그래스의 촬영방법이나 세트 제작, 음향작업, 그 외 모든 영화 작업에 관한 그들의 의견을 수렴해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유가족들은 이러한 용기 있는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제작진의 시도에 공감했으며 사실에 몇몇은 <플라이트93>을 '우리 영화'라고 부를 정도로 애정과 관심을 표했다.

승객 중 한명이었던 크리스틴 화이트 굴드의 딸인 앨리슨 바단은 이 영화가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을 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굉장히 민감하고 끔찍하며,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건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건에 대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남편 에드워드 P. 펠트(Edward P. Felt)를 잃은 샌디 펠트(Sandy Felt)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생을 살아갈 때 하기 힘든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기 힘들어도 그 일이 옳기 때문에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일이 그런 경우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가 개봉하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만드는데 참여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제 남편이 했던 일들을 기억하며 그가 제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있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승객이었던 루이스 J. 나크 2세의 동생인 케니 나크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건이 일어난지 5주년이 되는 해에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반가웠습니다. 저는 그 46명의 사람들의 존재가 잊혀지는 것이 싫습니다. 만약 제가 그 상황에 처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항상 그 사실을 생각해왔고, '만약 내가 플라이트 93기에 탑승했었고, 형이 오늘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겁니다. 아마 형도 같은 생각일 겁니다. 형이 '그들 모두를 존경하고, 항상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날 그들이 얼마나 명예롭게 행동했었나를 알리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 희생자 가족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한 자료 수집

그들은 100명이 넘는 유가족들과 7주에 걸친 기나긴 심층 인터뷰의 여정을 시작했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은 희생자들이 왜 비행기를 탔는지, 그들의 말투와 습관은 무엇인지, 어떤 성격을 가진 인물인지 세심하게 기록해갔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얻어진 결과물로 배우들과 촬영을 진행했다. 제작진은 영화 촬영을 영국의 파인우드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그것은 배우들을 마치 재판중인 배심원들을 격리하는 것과 같이, 9?11 테러의 아픔이 아직 깊게 남아있는 현실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촬영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승객인 린다 그론룬드 역을 맡았던 로나 달라스는 린다의 여동생 엘사와 여러 번 전화통화를 했고, 나중에는 린다의 어머니와 만남을 가졌다. 달라스는 엘사와 통화를 하게 되면서 "마치 친동생과 통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전화기를 통해 웃고 울었다. 엘사와 여러 번 통화를 했고, 그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라며 특별한 유대감에 대해 설명했다. 엘사는 달라스에게 녹음기에 남은 린다의 마지막 육성을 들려주었다. "린다의 마지막 목소리는 알려진 것 보다 더욱 더 괴롭고 초라하게 들렸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이토록 온 힘을 다해 간절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엘사에게 '사랑한다'라는 말로 통화를 마쳤다. 그 통화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승객 제레미 글릭 역을 맡았던 피터 허만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굉장히 어려운 일을 맡았다.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나에게 '당신이라면 제 남편 역을 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무한한 믿음을 표시했다. 이건 엄청난 책임감과 아픔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일이다."

승객 마크 빙햄 역을 맡은 맡았던 샤이엔 잭슨은 더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었다. "제작진이 유족들과 만나보라고 했지만, 정말 많이 망설여졌다.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 이메일을 통해 마크의 어머니와 연락하게 되었는데 아주 따뜻하고 소박한 분이었다. 마크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어떤 한 사람의 정신과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승객 토마스 E. 버넷 주니어 역을 맡은 크리스티안 클레멘슨은 이렇게 말한다. "통화 내용을 녹음해 놓은 기록을 봤는데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승객들이 침착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톨스토이는 예술의 목표는 대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질문을 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것이 그린그래스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 그 날, 그 상황에 완벽하게 몰입하기 위한 준비 작업

'UA93'편의 승객으로 분할 배우들은 2주간의 철저한 리허설 과정을 거쳐 험난한 여정을 시작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들의 정보를 되새기며 철저하게 인물에 몰입했다. 배우들은 마치 연극 무대에 서는 것과 같이, 리모델링을 마친 보잉 757기에 탑승해서 배치 받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 후 비행기 문이 닫히고, 이륙해서 펜실베니아 외곽에 추락하는 그 순간까지 91분간의 비행을 실시간으로 재현했다. 그들은 2주간의 리허설 기간 동안 대본 없는 즉흥연기를 연습하면서 감독이 원했던 '실제 같은 장면'들의 틀을 서서히 갖춰가기 시작했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지만 가장 현실감이 잘 드러나는지에 관해 끊임없이 토론했다. 젊은 사람들은 이 상황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나이가 든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승무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우리는 이런 의문점에 관해 토론했고, 즉흥 연기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나갔다."

승객 조진 로즈 코리건 역을 맡은 마르셀린 휴고는 이야기한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연기자들이 자신이 맡은 인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스스로가 판단해서 연기하기를 원했다. 끔찍한 상황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사람과 배우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감독이 직접 나서서 배우들의 마음 자세를 명징하고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드문 일이다. 나는 이 작품이 아주 영향력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공항기록, 공공기록 등 9월 11일의 모든 기록을 찾아라!
전문적인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실제상황의 리얼한 재현


9월 11일에 일어난 비극적인 테러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그린그래스 감독은 CBS의 유명한 시사 프로그램 <60 Minutes Ⅱ>의 프로듀서인 마이클 브로너의 힘을 빌렸다. 이번에는 시민들과 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여러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모은 그린그래스 감독은 몇 개의 주요한 장소에서 이번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장소들은 'UA93'편이 이륙한 뉴아크 국제공항의 관제탑,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한 두 대의 민항기가 이륙한 보스턴의 관제센터, 미국 영공에 있는 모든 항공기를 관리하는 미연방항공국의 작전지휘센터, 뉴욕 주 북부지방에 있는 북미방공본부의 육군작전센터이다. 9월 11일 아침에 일어난 사건에 관한 브로너의 세세한 설명이 시나리오의 주축이 되었다. 게다가 브로너는 항공기를 납치한 테러범의 신상부터 시작해 그 날 아침에 미국 영공을 비행하고 있던 다른 비행기들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정보를 조사했다. 또한 9?11 테러 위원회의 보고서와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촬영장에 참석해 주었던 위원회 의원들을 통해 값진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말한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UA)의 승무원들과 파일럿, 희생된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서 자세하고도 성실하게 설명해준 유가족들, 군 관계자들, 9?11 위원회 등 모이기 쉽지 않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최대한 사실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전문적인 조사가 없었다면 이 거대한 사건을 쉽게 재현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날의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 하기 위한 설득력 있는 조사와 준비과정, 그 속에서 발생하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탄생한 용기가 이 영화의 결론이자 목적이다.


'UA93'편을 완벽하게 재현하라!
고철덩어리에 불과한 비행기가 9월 11일의 '보잉 757'기로 변신하다!


제작 초기,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비행기였다. 테러가 발생하고 희생자들과 함께 사라져버린 비행기에 대한 철저한 자료 조사도 함께 이루어졌다. 제작팀은 운 좋게도 더 이상 비행을 할 수 없는 20년 넘은 고철덩어리 '보잉 757'기를 찾아냈다. 그들은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런던 외각의 파인우드 스튜디오로 비행기를 분해해서 수송했다. 그 후 비행기 조립과 관련된 9,6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메뉴얼을 참고하여 140피트 높이의 기체를 조심스럽게 재조립했다. 비행기는 하나의 기체로 재조립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섹션에 따라 분리 제작되었다. 조종실과 일등석, 비즈니스 석과 이코노미 석 등을 따로 조립함으로써 횡경사, 상승, 하강,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의 리얼한 움직임을 연출해냈다. 미술팀은 좌석 시트와 객실을 적절하게 손질하고, 항공사 로고와 담요, 조명, 잡지, 심지어 비행기 내부의 텔레비전 모니터에 나오는 이미지까지 바꾸는 등 내부 인테리어를 'UA93'편과 동일하게 꾸몄다. 비행기가 완성되자마자 촬영에 들어갔다. 첫 촬영은 비행기 전체의 모습을 찍는 것이었다. 문을 열고 닫는 장면, 승객이 탑승하는 장면, 비행기의 외관 등을 세밀하게 촬영해나갔다. 그 다음은 객실과 조종실을 나누어 촬영했다. 특히 나침반을 수평으로 유지하는 유압식 짐벌이 장착된 조종실은 특수효과팀이 직접 참여해 사실감을 높였다. 일등석은 비행기가 가파르게 떨어지는 장면을 위해 180도로 회전할 수 있게 제작되었으며 부상을 막기 위해 딱딱한 플라스틱과 금속 부분을 부드러운 재질로 감싸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비행기가 급강하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스턴트맨이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배우들은 직접 연기하기를 원했으며 몸 안에 보호 패드를 껴입으면서까지 성공적인 스턴트 연기를 해내 전 스탭들의 박수를 받았다.


[Epilogue]

9월 11일의 교훈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특별한 움직임

2002년 9월 24일, 미 국회는 <플라이트93>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2001년 9월 11일 영문도 모른 채 사망한 'UA93'편의 승객들과 승무원들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새로운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법안이었다. 추도행사는 2001년 9월 11일, 'UA93'편이 추락했던 펜실베니아 주 생크스빌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완성될 <플라이트93> 추도 공원은 약 2,200 에이커에 달한다. 그 중 1,300 에이커에는 9.11 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이고, 나머지 900 에이커는 지역 주민들과 단체들이 협력해서 보호할 예정이다. <플라이트93> 추도 공원은 일반인의 공개적인 경쟁을 통해 건설된 첫 번째 국립공원이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년 동안 국내외의 전문가들과 일반인들로부터 1,000개가 넘는 작품들을 모집한 끝에 미국 국립공원청은 최종적으로 L.A에 있는 회사인 폴 머독 아키텍츠를 추도 공원의 설계 담당으로 선택했다. 그들은 영원히 9월 11일의 악몽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의 테러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반성과 각성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플라이트93> 추도 공원을 건설하기로 마음 먹었다.
www.honorflight93.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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