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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2006) Klimt 평점 6.4/10
클림트 포스터
클림트 (2006) Klimt 평점 6.4/10
장르|나라
드라마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06.06.29 개봉
2017.03.16 (재개봉)
97분, 청소년관람불가
감독
(감독) 라울 루이즈
주연
(주연) 존 말코비치, 베로니카 페레스
누적관객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 곧 쾌락이다

꽃 같은 열정과 신비한 관능의 화가 클림트
세기말의 흥분과 긴장감이 감돌던 1900년. 화려하고 관능적인 아르누보 스타일을 상징하는 클림트의 그림은 고국인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혹독한 야유를 받지만 파리는 환호와 찬사를 보낸다.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철학”이라는 작품으로 금메달을 수상한 클림트는 축하파티에서 프랑스 무희이자 여배우인 레아를 소개 받고 이때부터 그에게 터질듯한 영감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 레아에 대한 열정이 시작된다.

에로스와 아름다움, 사랑과 열정으로 직조된 매혹의 태피스트리
환상의 뮤즈이자 에로틱한 이상, 육체적 욕망의 현신으로서 그녀는 클림트의 작품 속에 거울처럼 투영되고, 그녀의 아름다움과 여성성은 클림트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영원한 탐색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레아와 똑같이 생긴 또다른 레아가 등장하고 의문의 사나이가 자신을 그림자처럼 쫓자 클림트는 점차 환영에 시달리고 그의 정신적, 예술적 방황은 최고조에 이르게 되는데…

“요한계시록의 네 기사는 결코 따로따로 오는 법이 없다. 20세기 초반, 세르비아의 분리 이후 빈은 전쟁의 위협과 배고픔, 전염병처럼 휩쓸고 간 매독, 결핵으로 고통 받았다. 그렇다면 마지막 기사는 죽음이었을까? 아니다 죽음은 이미 앞서 세 가지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었다. 네 번째는 열정과 기쁨이었다. 바로 그것이 영화에서 돌고 도는 핵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왈츠이다. 춤을 추고 춤을 추고 돌고 돌고 또 돈다.”
– 라울 루이즈



About Movie

1. THE KLIMT PROJECT

클림트의 ‘황금빛 월드’를 창조하라!


클림트가 죽은 지 정확히 100년 후인 2002년, 대망의 ‘클림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가 주축이 되어 독일, 프랑스, 영국의 프러덕션이 손을 잡고 3년 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탄생시킨 <클림트>는 각국의 최고 배우들과 최고의 제작진이 승선한 거대 프로젝트였으며 이처럼 국제적인 협력이야말로 예술적으로 도전거리가 엄청난 영화의 재정과 배급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제작자 디터 포클라코(Dieter Pochlatko)는 각본과 연출에 있어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포악한 영혼> 등을 통해 깊은 인상을 받은 라울 루이즈 감독을 일찌감치 점찍어 두었고 클림트 역에는 오로지 존 말코비치만을 염두에 두었다. 다행히 라울 루이즈 감독이 먼저 연출 제의를 승낙했고 이미 루이즈 감독과 작업한 적이 있는 존 말코비치 역시 합류를 결정했다. 말코비치 외에도 베로니카 페레스(독일), 스테판 딜레인(영국), 새프론 버로우즈(영국), 니콜라이 킨스키(프랑스) 등도 곧 프로젝트에 승선했다.

촬영은 2005년 1월에서 3월까지 오스트리아 빈과 독일의 쾰른에서 이루어졌다. 세부 디테일까지 정확한 클림트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영화의 많은 부분은 빈의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으며 내부 촬영을 위해서만 스튜디오 세트를 사용했다. 19세기 말 빈에서 유행하던 혁신적 아르누보 스타일의 의상이 100벌 넘게 제작되었으며, 세기말 빈의 벨 에포크적 매력이 넘치는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더불어 환상적인 비주얼의 향연을 선사한다. 촬영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루이즈 감독과 함께 작업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빛의 마술사’ 리카르도 아로노비치가 맡아 황금빛을 머금은 클림트의 작품만큼이나 풍부하고 다양한 색체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음악 역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포악한 영혼> 등에서 이미 루이즈 감독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칠레 출신의 호르헤 아리아간다가 맡아 최고의 팀워크을 보여줬다.


2. KLIMT VS RAUL RUIZ

라울 루이즈 감독, 클림트와 예술적 영혼을 공유하다!


“나는 클림트의 작품이 겨냥 당했던 것과 유사한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전체보다는 세부에 집중하고 전체적인 표현보다는 장식을 중요시했던 것과 같이. 그러나 이런 경향은 인류가 ‘디테일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던 때’, 바로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그 당시의 시대적 특징이었다. 영화는 아름다움과 환희, 그리고 데카당스로 가득차 있지만 결코 죽음과 미래에 대한 전조도 놓치지 않고 있다. 나는 영화가 한 세기의 마지막이었던 당시를 잘 반영하길 바란다.”

라울 루이즈 감독은 연출에 있어 클림트 작품의 독특한 스타일에 의존했다.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풍부하고 도발적이며 획기적인 신기원을 이룩한 예술가 클림트의 삶을 스크린으로 가져오기 위해 눈부신 아름다움과 환상적인 색채, 공간의 왜곡과 복잡한 앵글을 사용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매독으로 인해 악화되는 클림트의 정신 상태와 함께 통렬하게 표현되는 것들(공감이 미세하게 변하고 물체와 벽이 움직이고 빛의 근원이 흔들리며 배우의 움직임은 율동과 같고 연기는 파편화된)을 정교화하여 포착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60여 가지의 스타일 효과로 놀라운 테크닉을 보였던 감독은 <클림트>에서 결국 120여 가지의 스타일을 선보이는 데 성공했고, 클림트의 예술은 물론 그가 살고 있던 19세기 말의 아름다움과 환희, 데카당스를 풍부히 재현해냈다.


3. KLIMT & THE END OF ERA

세기말의 열정과 환희가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영화는 클림트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삶을 단선적으로 늘어놓지 않는다. 그보다는 차라리 환각이나 착시라고 해도 좋을 만한 환상이 개입하고 세기말 빈의 흥미진진하면서도 성적인 긴장감으로 가득한 퇴폐적 분위기를 끝없이 돌고 도는 어지러움과 기분 좋은 흥분이 특징인 ‘왈츠’와도 같은 구성으로 잡아냈다. 불가사의하게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고 갑작스럽게 끝나는 왈츠와 물질과 상상의 형태가 뒤섞이고 중심점을 향한 끝없는 나선형 장식들로 이루어진 그의 그림처럼 영화 <클림트>는 역사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격변의 진통을 겪은 세기말의 빈과 파리를 배경으로 이 새로운 물결의 선봉장으로서 예술가 클림트가 겪는 비난과 찬사, 예술에 대한 열정, 로맨틱한 모험 등을 그의 그림만큼이나 환상적이고 매혹적으로 스크린 위해 펼쳐놓는다.

영화의 한 축은 한 평생을 화려하고 관능적인 그의 그림처럼 살다간 클림트의 삶과 예술이다. 그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모델들과의 사랑(클림트는 이들과의 사랑으로 10명이 넘는 자식을 두었다), 이처럼 자유분방한 클림트를 묵묵히 받아주었던 평생의 정신적 연인 에밀리 플뢰게와의 관계(‘키스’의 주인공), 육체적 욕망과 환상적인 에로스를 대변하는 레아와의 사랑, 클림트를 자신의 우상이라고 밝힌 에곤 실레와의 우정과 예술적 교류 등을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직조해냈으며, 이 모든 건 매독에 걸린 클림트의 환상과 함께 현기증이 날만큼 빠르게 돌아간다.

그리고 나머지 한 축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세기가 바뀌는 시점, 빈의 커피하우스에 모여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당시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이루고 있다. 장식을 배제하고 철저히 기능 중심의 순수주의 건축을 주창했던 아돌프 루스와 철학가 비트겐슈타인, 쇼킹한 알레고리로 오스트리아 정부와 빈 상류사회의 반감을 산 클림트를 끝까지 옹호했던 여성 평론가 베르타 추커칸들과 후원자 세레나 레데러 등이 등장하며, 이들 사이의 사건과 대화를 바탕으로 세기말 오스트리아 빈의 긴장감을 생동감 있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영화는 클림트의 예술과 그의 인생에 대한 성스러운 오마주를 받친다.


4. GUSTAV KLIMT (1862~1918) & HIS ART

“예술가 클림트가 궁금한 사람은 내 작품을 보라.”


오스트리아 출신의 천재적 화가이자 ‘빈 분리파’의 설립자인 구스타프 클림트는 인습적이지 않고 에로틱한 그림들로 20세기 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빈 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난 클림트의 예술에 대한 관심은 금은 세공업을 했던 아버지로부터 온 것이었다. 이 예술가의 정식 수련은 빈의 국립응용미술학교(미술공예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빈 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클림트는 1883년 벽화를 중심으로 특화된 독립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19세기 아카데미의 전형적 화풍을 따랐고 이런 특징은 1888년 빈 부르크 극장의 벽화와 미술사 박물관의 계단실 장식에서 보여진다.

1897년 클림트의 성숙한 스타일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아카데미 예술에 반하여 아르누보 성향이 강한 고도의 장식적 스타일을 추구하는 화가들의 모임인 빈 분리파를 결성하였다. 곧 그는 빈 대학의 강당 천정에 걸릴 세 편의 우화적인 벽화를 그리게 되고 극심한 비난을 받는다. 이 작품들의 에로틱한 상징과 비관적 성격은 커다란 스캔들을 일으켰고 벽화는 거부되었다. 1902년 작품인 벽화 ‘베토벤 프리즈’와 브뤼셀의 ‘스토클레 프리즈’(1905~1911)하우스의 식당 벽화는 정확한 선형의 드로잉과 과감하고 자의적인 장식 패턴 및 금박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클림트는 추상적 모티브와 구상적 모티브, 양식화를 두루 사용하였으며, 모자이크 기술을 사용한 클림트의 가장 성공적인 작품은 ‘키스’(1908)를 비롯 빈의 패셔너블한 예술 후원자인 ‘프리차 리들러의 초상’(1906),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1907) 등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클림트의 작품인 ‘키스’에서는 키스하는 남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아하고 유기적인 윤곽으로 추상화된 모자이크 형식의 로브에 둘러싸인 채 꿈처럼 떠있다. 또한 그림자를 배제하고 평면적이면서도 정교하게 구성된 장식으로 오히려 피부의 풍부한 관능을 강조하고 있다. 선과 생물학적 장식의 리드미컬한 부유와 금박은 클림트의 미증유적 그림의 특징이며 아르누보 운동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1) 키스(1907/08년), 그림의 모델은 클림트 자신과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그의 평생 연인 에밀리 플뢰게이다.
2) 물뱀Ⅱ(1904~1907년), 영화 포스터에 쓰인 이 작품은 아름다운 여성의 자아도취적 순간을 꿈결처럼 그려냈다.
3) 무희(1916~1918년경), 클림트에게 예술적 영감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 프랑스 무희의 모습으로 영화의 모티브가 된 그림
4) 다나에(1907/08년), 신화 속 주인공 다나에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대담하게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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