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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2004) Road 평점 9.2/10
길 포스터
길 (2004) Road 평점 9.2/10
장르|나라
드라마
한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06.11.02 개봉
95분, 12세이상관람가
감독
(감독) 배창호
주연
(주연) 배창호, 강기화
누적관객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가보지 못할 아름다운 여행

잊기 위해 걷고,
그리워서 또 걷습니다...

미워서, 그리워서, 눈물로 걷는… 길

장터가 아직 우리 삶에서 풍요로웠던 70년대 중반, 태석은 이십년 넘게 무거운 모루를 지고 각지의 장터를 떠도는 대장장이다. 다음 장을 향해 길을 가던 중 그는 서울에서 내려온 신영이라는 여공을 만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가는 길이라는 그녀는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는 빨간 코트에 커다란 ‘스마일’뱃지를 단,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처녀. 태석은 신영을 버스를 탈 수 있는 곳까지 데려가 주기로 한다.

길 위에서 태석은 줄곧 옛날을 떠올린다. 세상 없이 사랑했던 그의 아내, 그녀가 있어 매번 돌아갔던 작은 초가집, 가장 절친했던 친구 득수, 그러나 그로 하여금 지난 이십여년간 집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 했던 득수의 배신까지 그는 기억 속의 길을 미움과 그리움 속에 걷는다. 그리고 태석은 신영이 그 원수 같은 득수의 딸임을 알게 되고,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는데….

【 영화이야기_ 하나 】

지금, 배창호 감독이 서 있는


“누구든지 한 두 편의 괜찮은 소설은 쓸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문학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한 두 편의 소설을 쓴 많은 작가가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작품을 남기고 있는 소수의 작가들이다. “
-서머셋 몸

2006년, 배창호 감독이 오래간만에 새 작품으로 관객을 찾는다. <길>은 그가 감독한 17번째 장편영화.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한 후 <깊고 푸른 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으로 온 국민의 마음을 울리며 메가톤급 히트를 기록했던 배창호 감독. 지금과는 달리 극장이 온통 헐리웃 영화 일색이었던 환경에서 80년대 내내 관객으로부터도 평론가들로부터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30대의 젊은 나이에‘한국의 스필버그’로 시대를 풍미했던 선구자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히트작들의 면면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흥행작들은 단순한 공식에 따라 만들어진 공산품이 아닌 서로 다른 내용과 개성을 가진 걸작들이었다. 타고난 모험가이자 치열한 장인이었던 배창호 감독은 언제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여럿 가지고 있었고 이를 각기 다양한 영화적 방식을 통해 선보이길 원했으며 그것을 실행하는 데 거침이 없는 사람이었다. 지나친 롱테이크라며 관객들의 항의를 받았다는 <황진이> 이후, <안녕하세요 하나님>, <꿈> 등은 배창호 영화의 변화를 알린 대표적인 영화들이다.

91년, 배창호 감독의 30대의 마지막 영화 <천국의 계단>을 끝으로 그는 연출의 일차적 목표로서 대중성보다 한국영화의 전통과 예술적 성취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후 <젊은 남자>, <러브스토리>, <정>, <흑수선>등으로 장르와 규모를 불문,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과 표현으로 한국영화계를 풍요롭게 해왔다. 2006년, 그는 신작 <길>로 다시 한 번 우리들 앞에 선다.

<길>은 데뷔 후 약 20여년이 흐른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지는 소박하지만 다정한 길의 풍경을 보여주는 작품. 독립영화 형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결코 녹록치 않은 시대재현과 그야말로 발품을 팔아 담아낸 전국 각지의 ‘길’의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시리게 할만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단순히 풍경의 넉넉함 뿐 아니라 보는 시선의 넉넉함에서 오는 따뜻한 포만감이 더욱 관객들을 유혹한다.

길은…
배창호의 로드무비다.


언제나 로드무비를 좋아해왔다는 배창호 감독은, ‘길’에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아한다. 이번 영화 <길>을 찍으면서 사계절 내내 눈길, 오솔길, 꽃길, 황톳길, 염전길 등 전국 각지의 길을 찾아다니면서도,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찍으니 소풍 온 것처럼 좋기만 하고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도 좋고 빔 벤더스 감독이 만드는 로드무비들도 좋아한다는 배창호 감독은 오랫동안 <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을 간직해왔다. 그에겐 모든 인생이 ‘길’이고 모든 사람들이 ‘나그네’로 보이기 때문이다. 길 위에 선 인간들로부터 진한 정서를 이끌어내며 <고래사냥 1,2>, <안녕하세요 하나님> 등 이미 여러 편의 로드무비를 만들었던 배창호 감독은, 흔히 예술영화로 취급되는 로드무비로 흥행신화까지 만들어낸 한국 로드무비의 신화다.

배창호의 문예영화다.

어렸을 때는 임권택 감독 같은 분들이 왜 그렇게 전통적인 이야기,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웃는 배창호 감독. 하지만 작품활동을 할수록 우리 영화에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 역할을 방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배창호는 이미 그의 최전성기인 80년대 이미 현재 3,40대들에게 문화적 아이콘으로 남은 <황진이>(장미희 주연)를 연출하며 전통문화에 관심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꿈>을 통해 일찍이 국내에 소개된 바 없는 신라시대를 무대로 이야기를 풀어냈으며 최인호 등 동시대 문학가들의 작품을 영화 언어로 풀어 쓴 장본인이다. 덕분에 오랫동안 길러진 전통적 정서와 아름다움에 대한 그의 오랜 관심과 노하우를 자랑하며 <길>은 작은 영화들로선 꿈꾸기 힘든 수려한 자태와 정신적 깊이를 펼쳐 보인다.

배창호의 러브스토리다.

배창호 감독은 평소 “예술과 종교는 같은 것이다. 둘 다 사랑이다”라는 로댕의 말을 좋아한다. 비평가들로부터 흔히 한국영화사에 처음으로 낭만주의적 상상력을 가져온(뿐만 아니라 동시대인들로부터 열광적 호응을 얻은) 장본인으로 평가되는 배창호 감독만큼 ‘사랑’에 집착하는 감독도 없을 것이다. <길>의 개봉 전 출간된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결코 많지 않은 그의 연애 경험은 스스로에게 그토록 강렬했던 듯, 그래서 그의 영화 속에 다 들어있는 듯하다. 실제로 그는 결혼에 성공한 노총각이었던 자신의 경험을 살린 <러브스토리>를 부인과 함께 영화화하기도 했다. 50년대와 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길>의 사랑은 그 시대처럼 얌전하고 은근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더욱 강렬하다. 결코 ‘뽀뽀’하지 않고, 대신 사랑하는 이를 업고 ‘내 사랑’을 노래하는 <길>의 사랑은 20년을 두고도 잊지 못하고 눈물 흘릴 정도로 징한 배창호식 사랑이다.

배창호의 주연작품이다.

<길>의 촬영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결정된 것은 감독이 주연을 맡기로 한 것이었다. 그것은 이후 캐스팅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는 방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배창호 감독 자신에게 자신만큼 주인공 태석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등 뒤에 무거운 모루를 지고 쉬임 없이 산천을 떠도는 장돌뱅이이자 자존심강한 대장장이 태석은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언제까지고 그리워하며 괴로워하는 우리 모두인 동시에 끊임없이 다음 작품으로 나아가야 하는, 그리고 창작의지를 고집 세게 주장하는 장인으로서의 감독 자신이었던 것이다. <길>은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 자신의 <러브스토리>에 이어 배창호 감독이 세 번째로 주연을 맡은 장편 영화다. 대학시절부터 연극반 활동을 하며 이장호, 이명세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해 주연급의 연기를 펼쳤던 배창호 감독이지만 타 지방 사투리를 재현하기란 쉽지 않아 그 고장 어른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배워 옮겼다고. 아무튼 감독의 연기력을 차치하더라도, <길>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엔 태석의 진심이 담겨있음에 틀림 없다.


【 영화 이야기_ 둘 】

가장 보편적인 정서_ 사랑, 용서에 대한 영화
그리고‘이 땅에 사라져가는 것들을 위하여’


<길>은 사랑과 용서에 대한 영화다.
주인공 태석은 부인을 그토록 사랑할 수 없었다. 함께 장을 도는 못난 친구 득수 또한 그토록 사랑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정 많은 사내인 태석이 그 둘에게 느낀 배신감은 20년을 집 없이 홀로 걷고도 치유되지 않는 깊은 상처일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쉽게 사람들을 덜컥 믿어 버리는 탓에 신영 또한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 가득 있을 만큼 상처가 많은 아이였다. 두 사람은 함께 길을 걸으며 산 속 외딴 마을로 간다. 누구도 따뜻이 어루만져주지 않았는데도 길 끝에서 두 사람은 용서하고 용서받는다. 그러고도 그들의 앞엔 한없이 갈 길이 남아서, 무언가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길의 의미일 지도 모른다.

배창호 감독은 <길>에 ‘고흐가 말했듯이, 농부가 좋아할 수 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표현한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 <길>은 복잡하지 않고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엷은 종이에 수묵 담채가 스며들 듯이 마음을 저며오는 온갖 아름다운 풍경과 그리움들이 가득하다. 언제라도 스스로 길을 떠나 땅을 밟아 본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만한 하늘빛과 땅빛 그리고 꽃과 강물의 빛깔들이 디지털 장비를 거치지 않고 필름에 선명하게 담겼다.

70년대와 50년대라는 시대 배경에 맞는 ‘길’의 모습을 찾기 위해 <길>의 스탭들은 수없이 많은 길을 오르내렸다. 변산 반도의 뻘밭, 구례 산수유 마을, 함평 5일장, 정선의 오지, 강원도의 너와 집들… 한때 익숙했던 풍경들을 찾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여행이 필요했다. 그러나 사라져가는 이 많은 것들을 더 이상 찾아나서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배창호 감독의 30대 때, 겨울마다 강원도에 가면 어느 지역에서든 다른 영화를 찍고 있는 촬영팀을 만났던 시절을 기억한다. 영화의 수가 예전보다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카메라에 담길 만한 아름다운 것들이 그냥 버려지는 것은 아쉬울 따름. 배창호 감독은 모두가 잊어버려 있었는 줄 모르던 것들을 보여주며 ‘여기 있다’고 이야기한다.


【 영화 이야기_ 셋 】

배창호 감독이 만드는 독립영화
‘형식주의자 아닌 내용주의자’


배창호 감독은 80년대 가난하고 열악했던 한국영화현장에서 돈과 기술이 아닌 온몸과 열정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감독이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최고인기의 유명배우들과 함께 인기 작품들을 만들었고 <황진이> <꿈> <흑수선> 등 제작비가 많이 드는 큰 규모의 영화들도 감독했던 그가 규모에서 자유로워져 스탭 25명, 제작비 5억이라는 독립영화의 틀에 몸을 맞출 수 있는 것은 아마 그의 시작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규모도 장르도 상이한 16개의 작품들을 만들며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줬던 배창호 감독에게 대중영화냐 예술영화냐를 결정하는 것은 연출방식이 아닌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이다. 대중들이 흥미로워하는 연애 얘기나 액션 추리물 같은 것은 당연히 유명 배우들을 등장시키고 멋지게 찍는다. 하지만 <길>에서 보여진 노스탤지아같이 한정된 관객에게 어필하는 주제를 가지는 영화는 규모를 줄여서 꼭 필요한 것들만으로 찍기도 한다.

그에겐 아직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엔 커다란 이야기도 있고 작은 이야기도 있다. <길> 같은 독립영화가 될지 투자를 필요로 하는 상업영화가 될 지는 이야기 자체의 필요가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배창호 감독은 어떤 이야기에든 말 그대로 열과 성을 다할 것이다. 작가 최인호는 시나리오를 쓰는 그를 보고 ‘저렇게 정성을 들이는 놈이라면 하느님도 감동할 것이다’고 감탄한 바 있다. 배창호 감독은 영화는 노하우나 테크닉이 아닌 진정성의 문제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그 어느 감독 못지 않은 노하우와 테크닉을 가진 사람의 대답이라 더욱 의미심장한 그의 대답이 한없이 젊다.


【 촬영 이야기 】

2003년 겨울, 검은 모루를 지고 길을 떠나다

김제, 광활한 만경평야에는 검은 까마귀들이 하늘을 덮으며 날아다녔고, 황량한 들판 가운데 섬처럼 서 있는 외딴 폐가에서 전 스탭은 추위와 바람을 맞으며 눈가루를 뿌렸다. 남도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5일 장터 함평장. 검문소, 폐가, 들길, 낡은 버스, 그곳은 아직 옛 5일장의 풍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른 봄
삼척 환선굴. 상여 가는 길 언덕 너머에 둘러싸인 산은 북망산천이었다. 요령소리와 함께 울리는 상여꾼의 만가는 돌아올 수 없는 망자의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태백, 장터, 눈길, 여인숙, 너와집, 상여길, 아기무덤.

흐드러진 봄
태백, 도계, 왜관, 안동을 ‘길’따라 돌아들어선 지리산 산동마을에는 노란 산수유가 만발했다. 빛바랜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을 낡은 이발소, 주막집, 버스 정류장, 태석의 엣 집. 그 모든 것들은 오래된 세월 속에 나이든 나무처럼 살아있었다.

여름
하남, 검단산을 돌아 태석과 득수는 장을 찾아 떠돌고 있었고 계절을 잊은 스탭들 또한 그들의 뒤를 따라 길을 갔다. 한 여름 잠시 여장을 풀고 세트 촬영에 들어가다.

가을
변산반도, 곰소, 그리고 다시 들린 계화도에는 시간이 거꾸로 흘렀다. 기울어져 비껴 비치는 가을 햇살 아래 염전 길. 함석 지붕, 타아르 칠한 듯한 검게 물든 판자집, 후줄근 소금기 먹은 낡은 폐가들.
그 날 태석은 버려진 목선 앞, 붉게 물든 뻘 밭을 가로지른 마른 물길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다시 겨울, 드디어 모루를 내리다
성주, 구례, 섬진강을 돌아 다시 옛날 장터. 좁은 골목길, 세월의 무게를 처마에 드리운 고옥과 조청 엿 작업장. 50년대를 재현한 장터를 위해 성주군민들 모두가 손을 걷어 붙였고, 벌교 산자락에는 쪽빛 모시들이 바람에 너울거렸다. 그리고 태석과 우리는 ‘길’이라는 모루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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