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상세 본문

영화 메인 탭

괜찮아, 울지마(2001)
Let's Not Cry! | 평점9.4
$movie.getMainPhotoAlt()
괜찮아, 울지마(2001) Let's Not Cry! 평점 9.4/10
장르|나라
드라마
한국, 우즈베키스탄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07.08.30 개봉
96분, 전체관람가
감독
감독 민병훈
주연
주연 무하마드 라히모프
누적관객
1,890
도움말 팝업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모스크바에서 도박으로 빚을 떠안고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의 한 작은 마을로 돌아온 무하마드.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그의 손에 들린 바이올린을 보고 그가 도시에서 성공한 연주자인 줄로 착각 한다. 그러나 허풍을 떨며 돈을 빌리러 다니는 그의 친구들은 반겨주질 않고 가족들의 삶 또한 여전히 고단해 보인다.

무위도식하며 여전히 불안한 시간을 보내는 그에게 어느 날 새로운 전령사가 찾아온다. 그의 창가에 매일같이 달걀 하나가 놓아져 있는 것이다. 곧 응급차 운전수의 딸이 자신을 흠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무하마드는 고마운 마음으로 소녀에게 머리핀을 선물하고,한편 그의 정체를 의심하던 어머니는 결국 아들의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보게 되고 실망만 하게 된다.

어느 날 그를 의심하는 마을 사람과 집으로 찾아온 경찰들을 피해 무하마드는 할아버지 작업장으로 피신을 하고야 만다. 그곳에서 태연한 척 호기를 부려가며 집을 팔고 대도시로 이사 가자며 할아버지를 강하게 회유하자 할아버지는 그의 욕망과 거짓을 꾸짖는 대신 자신이 수 년 동안 가슴에 담아 두었던 비밀을 그에게 털어 놓는다.

할아버지의 우화 같은 이야기를 들은 무하마드는 깨달음과 가족의 의미를 알게 되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향을 등진 채 길을 떠난다.


[ About Movie ]

“그루지아 공화국의 거짓말쟁이 낯선 이방인에게 영화의 영감을 선물하다.”

<괜찮아, 울지마>는 전작 <벌이 날다>가 끝난 시점인 1999년 말 기획되었다.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란의 거장 모센 마흐말바프감독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아 해외영화제에 널리 알려진 <벌이 날다>는 그 해 이탈리아, 그리스, 독일, 러시아 등에서 많은 상을 수상하며 민병훈 감독에게 커다란 영예를 안겼다.

그러나 그에게는 <벌이 날다>가 다소간의 짐이 되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러시아 출신의 공동 감독인 잠쉐드 우스마노프와의 공동 연출로 인해 <벌이 날다>가 잠쉐드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든 것이고 중앙아시아의 타지크스탄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한국사람이 이렇게 만들 수 없다는 시샘이 민병훈 감독에게 들려왔다. ‘당신들이 그렇게 의심한다면 이번에는 내가 단독으로 영화를 만들겠다’며 재도전의 의식끝에 시나리오 구상에 들어간 민병훈 감독은 2000년 그루지아 공화국을 여행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화의 소재나 다름없는 한 시골의 탄광마을에서 22살의 베짱이 같은 친구를 만나게 된다.

모두들 석탄을 캐러 간 사이 혼자 마을에 남아 매일 노래만 부르고 춤을 추며 무위도식하는 이 낯선 남자는 민병훈 감독에게 말을 걸어왔고 그와 원치 않는 만남을 갖는다. 그 청년은 록음악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음악 테잎을 모스크바에 보내 음반사와 곧 계약할거라는 등 허풍을 떨었다. 계속 지켜보니 이 친구가 거짓말도 잘하고 철이 없어 보이는데 한편으로는 연민의 정이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 때문에 예정보다 오래 머무르게 된 민병훈 감독은 낮에는 카드게임을 하고 저녁이면 술도 마시고 그의 친구 집에도 놀러 가며 지내게 되었지만 주변인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여행 마지막 날 이 친구는 민병훈 감독의 전화번호를 묻고 자신을 한국에 초청해 달라며 애원 하기 시작했다. “결국 마을을 떠나면서 이 친구가 손을 막 흔들어 주는데 굉장히 처연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 친구를 보며 나를 보는 느낌도 들었고 괜찮아 울지마 모티브가 이 친구에요.” 그래서 이런 얘기를 주인공을 통해서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벌이 날다>의 연장선에 있는 얘기도 되면서 내가 교감하는 얘기로 확실히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혼자의 힘으로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에서 외국배우와 현지스텝과 한국 스텝들에 의해 완성되었고 2002년 체코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와 그리스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그에게 드리웠던 의심의 멍에를 말끔히 씻어 버렸다.


<벌이 날다>, <괜찮아, 울지마>, <포도나무를 베어라> 두려움에 관한 3부작
2007년 마침내 두 번째 두려움을 만나다.

<벌이 날다>는 자신보다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검사와의 두려움에 맞선 한 교사의 이야기이고 <괜찮아, 울지마>는 도박 빚에 쫓긴 한 남자가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거짓이 탄로나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친다는 이야기이며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신과 여자 문제에 직면한 한 신학대학생의 두려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부터 두려움에 관한 3부작을 만들고자 했던 민병훈 감독의 3부작은 마침내 끝을 맺었지만 <괜찮아, 울지마>는 안타깝게도 국내에 개봉을 하지 못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에서 나오는 대사 중에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마음까지도 부정하게 되고 거짓을 진실처럼 믿게 된다”는 말처럼 <괜찮아, 울지마>는 도박에 빠져있던 한 젊은 남자가 빈털터리가 되면서 빚쟁이에 쫓겨 고향인 우즈베키스탄의 한 마을에 돌아오지만 그는 성공한 바이올린리스트로 잘못 알려져 있고 계속된 거짓말로 인해 두려움에 직면하게 되자 결국 동네를 떠나게 된다.

주인공 무하마드는 재산을 처분해 대도시로 이사 가자고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조르지만 할아버지는 우화 같은 이야기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먼 옛날, 이 곳에 잃어버린 새끼 낙타를 찾아 울면서 떠돌아다니는 어미 낙타가 있었단다. 어미 낙타는 새끼를 찾지 못한 채 중국으로 팔려가게 되었고 슬픔에 잠긴 어미 낙타는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먼 중국까지 하얀 젖을 짜놓았단다. 그때 나온 젖이 하얗게 굳어서 지금의 돌산으로 변해 버린 것이고 네 아버지는 멀리 떨어져 있는 너를 보며 이 돌로 집을 지어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였지.”
“그럼 저는 잃어버린 새끼 낙타겠네요?” / “넌 아직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잖니!”

“벼랑 끝에 섰을 때 희망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주인공 무하마드가 두려움에 마을을 떠나지만 그는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닌 희망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일지 모른다. 그래서 <괜찮아, 울지마>라는 제목이 더 없이 잘 어울려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뒤늦게 도착한 수작의 귀환’ 6년 만에 국내 관객을 만난다.
37회 체코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 _ 특별언급상, 비평가상 수상
43회 그리스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 _ 예술공헌상, 아시아, 유럽상 수상

전작 <벌이 날다> 이후 중앙 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의 한 작은 마을에서 만들어진 <괜찮아, 울지마>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되어 호평을 받았고 이후 카를로비바리 국제 영화제와 테살로니키 국제 영화제에서 특별 언급상과 비평가상, 예술 공헌상과 아시아, 유럽상 등을 수상하며 또 다시 좋은 평가가 이어졌다.

세계 10대 영화제에 속할 만큼 알아주는 영화제에서의 수상 실적에도 불구하고 <괜찮아, 울지마>는 국내 시장 여건과 제작사의 투자, 배급, 마케팅에 대한 준비부족으로 국내 개봉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의 제목처럼 정말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지만 이제 곧 개봉을 앞두고 ‘괜찮아, 울지마’라는 농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가고자 했던 방향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목표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민병훈 감독의 집념과 다양성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이 늘어나서 일 것이다.

2007년 <포도나무를 베어라>와 <괜찮아, 울지마>의 연이은 개봉으로 마침내 두려움에 관한 3부작을 매듭 지은 민병훈 감독에게는 개인적으로나 한국의 영화사적으로도 뜻 깊은 해로 기억될 것이다.




[ Production Note ]

민병훈 감독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 내다.
<괜찮아, 울지마> 우즈베키스탄에서의 고군분투 제작기 풀 스토리

<괜찮아, 울지마>의 탄생 배경부터 개봉까지 모든 과정을 풀어내면 한 권의 책으로 엮일 만큼 끝이 없다. 그것은 곧 <포도나무를 베어라> 개봉 이후 민병훈 감독이 <괜찮아, 울지마>의 국내 개봉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작 후 6년의 세월이 지났다. 제목만큼이나 험난했던 지난 기억을 끄집어 내었다.


제목만큼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다.
프로듀서, 촬영, 시나리오, 감독, 통역 등 1인 4역을 해낸 민병훈 감독

<벌이 날다> 이후 그루지아 공화국에서의 여행을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구상하던 민병훈 감독은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재수생 시절 알던 친구였는데 10년 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의 회사와 함께 인터넷 영화로 잘 알려진 류승완 감독의 <다찌와마리>, 김지운 감독의 <커밍아웃>, 장진 감독의 <극단적 하루>를 기획, 제작하는 일을 도와주게 되면서 <괜찮아, 울지마>는 기획되었다.

그러나 세 작품은 네티즌들로부터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것까지 좋았지만 제작비대비 수익률은 좋지 않았지만 그 회사로부터 장편영화 제작을 제안 받은 민병훈 감독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그루지아 등 세 곳의 촬영 후보지를 정하고 영화 촬영 조건이 가장 나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촬영하기로 정하고 홀로 우즈벡에 들어가 촬영 준비를 하게 된다.

이후 국내 스텝 13명과 현지스텝 30명을 꾸려 오디션을 보고 시나리오 번역을 하고 현지 우즈벡 필름과 합작으로 영화화 하기로 결정하고 두 달 만에 촬영은 완성했지만 그가 한국에 돌아오기까지 무려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모두가 반대한 내전지역에서 마침내 카메라는 돌아간다
영화의 내용상 로케이션 장소가 영화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았기에 신중에 신중을 다해 헌팅을 다닌 민병훈 감독은 최종적으로 우즈벡의 수도 타슈켄트에서 12시간 정도 떨어진 키르키즈스탄의 국경지대인 호바 마을을 낙점하자 현지스텝은 물론 국내 스텝들에게도 심한 반대에 직면한다. 이유는 그곳이 국경지역이고 내전지역이라는 것이었다.
스텝들을 설득해 우여곡절 끝에 촬영지로 선택되었지만 문제는 또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듀서를 비롯해 현지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민병훈 감독 혼자 프로듀서 역할을 해야 했다. 오디션을 끝내고 모든 배우들의 캐스팅을 마치자 이번엔 의상과 소품, 미술, 발전차 등을 섭외해야 했고, 혼자 발로 뛰며 촬영에 들어갔지만 제작비가 제때 들어오지 못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며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70% 촬영중 제작 중단!! 모두 한국으로 철수하라!!
한국 스텝중 러시아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민병훈 감독이었기에 여러가지 힘든 상황은 너무 너무 많았다. 현지인과 국내 스텝들을 다독거려가며 70%쯤 촬영을 하고 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바로 국내 제작사가 더 이상 제작비가 없으니 모두 철수 하라는 것이었다.

민병훈 감독은 모든 스텝들을 모아놓고 한국에서 제작비가 없어 제작을 포기한다는데 나는 절대 포기 못한다. 갈 사람은 가라 그리고 우즈벡 대표에게 당신들이 나를 믿는다면 내가 어떻게든 돈을 갚을 테니 나를 믿고 나머지 30%를 찍자고 설득했다.


민병훈 감독, 빚 갚을 때까지 우즈벡에 볼모로 잡혀있다.
필름 수급과 충분치 못한 제작비에 풍족하게 먹지도 못한 고생은 사치에 가깝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것은 한국에서 보내주는 필름을 수급하는 문제였다. 현지의 까다로운 통관 절차와 제작사가 없기 때문에 몰래 밀수로 필름을 들여와야 했다. 민병훈 감독은 작품의 소중함 때문에 70%의 분량을 영국의 유명한 현상회사인 딜럭스사에 현상을 하며 작품에 자신감을 얻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나머지 분량을 완성하고 몰래 스텝과 필름을 한국으로 보내고 국내 제작사를 설득해 30%의 제작비 약 1억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결국 주변인들과 은행의 대출을 통해 그 빚을 다 갚고서야 한국으로 올 수 있었지만 문제는 후반 작업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제작사는 민병훈 감독에게 돈이 생길 때까지 기다라는 답변만 했고 결국 공동제작사를 구해 후반작업을 했고 몇 차례의 어려움을 넘기며 부산국제영화제 출품되었다.


고진감래 <괜찮아, 울지마> 해외영화제에서 빛을 발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굉장히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괜찮아, 울지마>는 영화 첫 스크리닝 후 세계 3대 영화제인 칸느, 베니스, 베를린 외에 카를로비바리 등 해외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았다. 그러나 후반 작업을 한 공동 제작사가 결정을 늦추고 해외배급사가 없는 관계로 결국 카를로비바리 국제영화제만 출품하게 되었고 이후 영화사는 자취를 감추었으며 그 후 2년의 세월을 더 보내게 되었다.


2007년 9월! 제작후 6년.. 마침내 국내에 개봉되다.
이후 민병훈 감독은 판권의 주체자가 아니란 이유로 <괜찮아, 울지마>에 대해 아무런 권한을 가질 수 없었다. 결국 민병훈 감독은 원 제작사의 대표가 공동제작사의 대표를 설득해 판권 포기를 받아내게 하고 자신이 돈을 마련해 결국 판권을 확보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제작 후 5년이 지난, 2006년 이었다. 그 후 <포도나무를 베어라>가 국내 개봉되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이어 <괜찮아, 울지마>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더보기펼치기

네티즌 평점

0
평점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