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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1998) An Enternity 평점 0/10
영영 포스터
영영 (1998) An Enternity 평점 0/10
장르|나라
드라마
한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8분
감독
(감독) 김대현
누적관객

개구리가 요란스레 울어대는 한여름 밤의 농가 부엌, 머리를 감는 늙은 어머니가 있다. 켜켜이 쌓인 지나온 세월의 먼지들을 털어내듯 정성스레 얼굴을 닦아내는 늙은 어머니에게는 마음 한복판 대들보처럼 자리잡은 아들이 있고… 하지만 지금, 장대한 아들은 주검이 되어 어머니 앞에 누워있다. 아들은 언제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어머니에게 다가온다. 무심하게 들려오는 시계 종소리. 아들의 시간도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 간다. 가버린 아들. 멈춰진 어머니의 마음. 어머니는 시계추를 잡아 시간을 잡는다.

헤어져도 살아있다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 않아도 언젠가 만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를 그리워할 수 있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은 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그를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는 단지 기억 속의 추상으로 자리잡게 된다. 따라서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살아있을 때와 죽었을 때에 따라 전혀 다른 상태가 된다. 나와 같은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그는 나의 의식 속에서만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영>에서 늙은 여인이 죽은 아들을 염하는 과정은 이제 기억 속의 추상으로서만 존재하게 될 아들을 보내는 의식이다. 그녀가 행위를 하나하나 끝낼 때마다 내쉬는 긴 한숨과 대(對)를 이루어 보여지는 살아있는 아들의 모습은, 더 이상 물질로는 존재할 수 없는 기억을 위한 진혼(鎭魂)이며 영영 돌아오지 않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녀는 이 의식을 마감하기 위해 시계의 추를 정지시킨다.
시간은 아들이 죽었을 때와 살았을 때, 오프닝 시퀀스의 세 가지 층으로 구성된다. 늙은 여인이 머리를 감아 정갈하게 빗고 천장에 시선을 고정시킨 후에 영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 영화는 아들이 죽은 후에 그를 기억하는 현재의 (머리감는) 여인의 플래쉬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겹쳐지는 시간의 구조는 살아있던 이에 대한 기억과 죽은 이에 대한 기억이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기억을 영영 지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늙은 여인의 들리지 않는 깊은 한숨은, 기억은 남아있어도 기억의 대상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절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영영>은 죽음과 기억에 대해 사유하는 영화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영원히 지속되는 기억과 그 기억을 불연속적으로 만드는 죽음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 것이기 때문이다.
(1999년 제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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