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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
The Double Life of Veronique, La Double vie de Veronique | 평점8.6
재개봉 메인포스터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 The Double Life of Veronique, La Double vie de Veronique 평점 8.6/10
장르|나라
드라마/판타지
프랑스, 폴란드, 노르웨이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1991.11.09 개봉
2016.06.23 (재개봉)
98분, 청소년관람불가
감독
감독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주연
주연 이렌느 야곱, 필립 볼테르
누적관객
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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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저는 혼자가 아닌 것 같아요…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여자 아이 둘이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다. 폴란드의 베로니카와 프랑스의 베로니끄, 둘은 상대방의 감정과 경험을 어렴풋하게나마 공유하며 서로의 존재를 느낀다. 노래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베로니카는 우연한 기회에 콘서트 독창자로 발탁되지만, 공연 도중 갑자기 심장이 멎어 숨을 거둔다. 한편 베로니끄는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던 중 까닭 모를 상실감에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던 그녀는 어느 날 학교를 방문한 마리오네뜨 인형극을 보던 중 인형사 알렉상드르에게 강렬하게 이끌리는데…

[ ABOUT MOVIE ]

<세 가지 색> 시리즈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 감독 작품
운명과 우연, 예감에 대한 신비로운 걸작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십계>, <세 가지 색> 3부작을 연출한 폴란드 출신의 전설적인 거장 크쥐시토프 키에슬로브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이름과 생일, 얼굴까지 빼닮은 폴란드의 베로니카와 프랑스의 베로니끄의 삶과 사랑을 통해 인생에서 마주치는 운명적인 만남과 놀라운 우연, 신비로운 예감을 아름답게 그려낸 걸작이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키에슬로브스키가 <십계> 시리즈 이후 처음으로 만든 장편영화이며 이후 <세 가지 색> 3부작에서도 이어질 유럽 공동제작 방식의 시발점이 된 작품이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도플갱어’인 두 여성의 삶을 신비로우면서도 시적인 감각으로 재현한 영화다. 외모와 재능, 심지어는 건강상의 문제까지 공유하고 있는 이들 두 사람의 평행적인 삶을 추적하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통해 영화는 삶의 불가해한 질서를 보여준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이름과 외모가 닮은 두 사람을 등장시키는 한편, 신비한 분위기의 여주인공이 낭만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로맨스를 펼쳐낸다는 매혹적인 스토리로 이후 수많은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아멜리에>의 장 피에르 주네, <러브 레터>의 이와이 슌지, <미스터 노바디>의 자코 반 도마엘을 비롯하여 왕가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톰 티크베어 등의 명감독들이 키에슬로브스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인 2역을 맡은 배우 이렌느 야곱은 섬세한 연기력은 물론 선과 미가 일체를 이룬 순수한 광채를 발산하며 몽환적인 감성을 자아낸다. 여기에 키에슬로브스키의 대다수의 영화들에서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바 있는 즈비그뉴 프라이즈너의 호소력있는 선율이 더해져 영화의 회화적, 음악적 감동을 극대화시킨다. 제44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및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제17회 LA 비평가협회상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최면을 걸듯 넋을 잃게 만드는 영화”(Washington Post), “모순마저도 매력적인 시적(詩的) 영화”(New York Times), “이따금씩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느끼는 낯선 감정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Roger Ebert), “초월성에 대한 관능적이고 신비로우며 경이로운 고찰”(Apollo Guide), “잊혀지지 않는다”(ColeSmithey.com) 등의 찬사를 이끌어 낸 세계 영화사의 걸작이다.

이름, 생일, 얼굴까지 빼닮은 두 여인의 비밀스러운 운명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배경

1991년작인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제작 당시 폴란드는 격변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자유주의 노조를 결성한 폴란드는 공산주의 일당 독재를 무너뜨리며 1989년 복귀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자유국가로 진입한다. 1991년 소비에트 공산 정권이 무너지고 동유럽의 다른 국가들도 사회주의 체제의 급격한 몰락을 겪으며 자유화의 길을 걷게 된다. 정치〮사회적으로 서유럽에 통합되는 과정을 겪으며 동유럽 영화계 또한 이러한 사회상황에 큰 영향을 받으며 발전한다. 이와 같은 시기에 제작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동구의 몰락과 서구로의 통합이라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주인공 베로니카와 베로니끄를 각각 동유럽과 서유럽의 알레고리로 삼은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도입부, 합창 연습을 하던 중 소나기가 내리자 주위는 아수라장이 되고, 베로니카만이 비를 맞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이때 길을 가득 채우며 카메라 앞으로 다가오는 트럭과 그 짐칸에 실린 거대한 석상은 마르크스의 동상임을 짐작케 한다. 베로니카가 사는 폴란드는 점점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옅어지고 있다. 사회주의는 역사의 흐름속에서 점차 밀려나는 것을 느끼며 자유주의 진영을 의식한다. 그러던 중 심장병을 앓는 베로니카가 요절하고, 그녀의 죽음은 신비한 경로로 베로니끄에게 경고하여 성악가의 길을 포기하게 만든다. 동서로 나뉜 유럽이 경계를 지우고 하나가 되면서 두 개의 삶을 이어가던 베로니카와 베로니끄 중 한 사람은 존재 이유가 없어졌고, 그 결과 베로니카가 죽고만 것이다. 한편 자본주의는 다른 반쪽의 몰락을 감지하며 상실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을 잊어갈 즈음, 자꾸만 반쪽의 존재를 일깨우는 메세지가 날아든다. 자유주의는 혼란을 느낀다. 자신과 똑같았던 또 다른 존재를 얼른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서로를 바라보는 한 지점(사진)에서 갑자기 자유주의는 깨닫는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닌 인간이라는 하나의 의식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또 한 벌의 사회주의를 본다.(똑같은 인형 두개) 폴란드의 베로니카와 프랑스의 베로니끄, 두 사람의 평행적인 삶을 추적하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통해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은 인간 내면에 있는 동질성을 강조하며 이념을 초월하여 통합된 사회를 추구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순수와 관능을 오가는 절정의 아름다움!
키에슬로브스키의 뮤즈이자 전설의 히로인 이렌느 야곱!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주인공 베로니카와 베로니끄, 1인 2역을 맡은 이렌느 야곱의 열연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루이 말 감독의 <굿바이 칠드런>에서 단역을 맡으며 스크린에 데뷔한 이렌느 야곱은, 우연한 기회에 키에슬로브스키 감독의 눈에 띄어 첫 번째 주연작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타이틀 롤을 얻게 된다. 키에슬로브스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애초에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주인공으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의 앤디 맥도웰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스케줄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고, 그 다음으로 염두에 두었던 <세 가지 색 : 블루>의 주인공 줄리엣 비노쉬 역시 <퐁네프의 연인들> 촬영 때문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 때 눈에 띈 것이 영화 출연 경험이 거의 전무한 스물 다섯살의 배우 이렌느 야곱이었다. 촬영에 들어가자 키에슬로브스키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녀는 매혹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난해하고 신비스러운 주제를 지닌 이 영화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할 만큼 명민한 배우였다. 그녀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는 분신과도 같은 두 여인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키에슬로브스키는 그 두 사람이 지닌 공통적인 삶의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그녀들은 재능과 열정을 지녔지만 삶에서 뭔가 빠진 게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세상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씩 느끼는 공허함이 아닐까.” 신비로운 외모와 지적인 분위기 그리고 선과 미가 일체를 이룬 순수한 광채를 발산하며 섬세한 연기력을 선보인 이렌느 야곱은 평단과 관객 모두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키에슬로브스키는 <세 가지 색>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세 가지 색 : 레드>에서 이렌느 야곱을 다시 캐스팅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연상시키는 순수하고 신비로운 매력에 깊이있는 연기를 선보인 그녀는 이 작품으로 명실상부 키에슬로브스키의 뮤즈로 자리매김했다. 키에슬로브스키의 죽음 이후에도 이렌느 야곱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빔 벤더스 감독의 합작 <구름 저편에>를 비롯해 할리우드에도 진출,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키에슬로브스키와 함께 한 두 편의 영화만큼 그녀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영화는 없었다.

아름답고 시적인 영상미와 가슴을 저격하는 프라이즈너의 음악
여전히 세련되고 감각적인 아트필름의 진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영상과 음악과의 절묘한 조화다. 키에슬로브스키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 대해 ‘음악에 관한 영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영화의 음악은 <십계>와 <세 가지 색> 시리즈의 음악감독인 즈비그뉴 프라이즈너가 담당했다. 즈비그뉴 프라이즈너는 현대 유럽 영화음악을 대표하는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졌던 걸출한 영화음악 장인으로, 키에슬로브스키의 작품들 외에도 루이말 감독의 <데미지>, <남자가 사랑할 때> 등의 영화음악을 맡아 심금을 울리는 내성적 음률과 성가적 장엄함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키에슬로브스키의 페르소나라고도 불리는 즈비그뉴 프라이즈너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18세기 폴란드 작곡가 ‘반 덴 부덴마이어’라는 가상의 인물로 소개된다. 1991년 영화가 국내에 최초로 개봉했던 해, 라디오 클래식 채널에는 반 덴 부덴마이어에 대한 관객들의 문의가 이어졌다고 한다. 단조의 음계를 사용하여 몽환적이고 우울한 느낌을 자아내는 반 덴 부덴마이어의 음악은 신비롭고 탐미적인 영화 속 장면들과 드라마틱한 조화를 이룬다. 영화의 주제가 격인 ‘E 단조를 위한 협주곡(Concerto in E minor)’은 다양한 형식과 버전으로 변주되며 주인공의 내면을 적절히 표현해 준다. 특히, 이 곡은 폴란드 베로니카와 프랑스 베로니끄를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로니카는 콘서트 무대에서 이 곡을 열창하다 쓰러져 숨을 거두고, 평소 반 덴 부덴마이어를 좋아하던 베로니끄는 이 곡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이 곡은 베로니끄가 관람하는 인형극 속 인형이 천사로 부활하는 장면에서 다시 등장한다. 베로니카는 죽었지만, 그녀와 베로니끄의 인연의 끈이 음악을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키에슬로브스키는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의 연결고리를 나타내는 수많은 매개체를 극 중 심어놓았는데, 그 중 가장 효과적인 연결고리는 바로 음악이다. 음악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라도 가장 공감하기 쉬운 예술 형식이며, 인간은 결코 개별적으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지구 어딘가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면?
인생에서 마주치는 운명적인 만남과 우연, 예감에 대한 고찰!

외모는 물론 음악적 재능, 심장병, 사소한 습관들을 공유하고 있고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비슷하게 엮어져 있는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의 삶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베로니카는 베로니끄보다 한발 앞서 모든 것을 경험한다. 난로에 손을 데고,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오디션에 통과해 솔리스트로 나아가고, 우연히 마주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베로니끄를 먼저 알아본다. 그녀는 콘서트에서 독창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심장이 멎어 숨을 거둔다. 베로니카는 죽었지만 반지, 끈, 녹음 테이프 등 극 중 여러 장치들로 인해 이들 두 사람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콘서트 오디션을 보던 베로니카는 고음 부분에서 손가락에 감았던 끈을 끊는다. 그녀의 죽음 이후 베로니끄는 알 수 없는 누군가로부터 구두끈을 선물받고, 이는 베로니카와 베로니끄를 잇는 매개체가 된다. 구두끈이 그저 잘못 배달된 것으로 생각했던 베로니끄는, 창 밖 어딘가에서 비쳐오는 알 수 없는 빛을 통해 끈의 의미를 알게 된다. 분명 건너편에 거주하는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빛은 계속해서 베로니끄의 집을 비춘다. 베로니끄는 자신의 불안정한 심전도 그래프 위에 끈을 놓고는 쭉 잡아당기고, 그것은 사망 선고를 받은 사람의 심전도 그래프처럼 일자를 그린다. 비로소 베로니끄는 자신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진 베로니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자신이 찍은 사진에 우연히 포착된 베로니카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존재를 확신한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까닭 모를 상실감의 원인을 찾게된다.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설정은 키에슬로브스키의 특징 중 하나인 ‘빛을 이용한 영상’으로 나타난다. 수없이 등장하는 거울과 유리창, 쇼윈도 앞에 선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의 얼굴은 반사면에 또 하나의 얼굴을 창조해내고, 심지어 벽의 그림자까지 여기에 일조한다. 그들은 똑같은 투명 구슬을 갖고 있고, 그 구슬을 통해 주변의 경치를 바라본다. 구슬에 비친 바깥의 배경은 거꾸로 보인다. 다르게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로니카와 베로니끄의 삶은 유리에 비친 또 하나의 얼굴처럼,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동반적 존재의 경험이다. 보통 도플갱어는 괴담의 소재로 쓰이지만,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의 도플갱어는 삶 속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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