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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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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 (2017) Anarchist from Colony 평점 7.9/10
박열 포스터
박열 (2017) Anarchist from Colony 평점 7.9/10
장르|나라
시대극
한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17.06.28 개봉
129분, 12세이상관람가
감독
(감독) 이준익
주연
(주연) 이제훈, 최희서, 김인우
누적관객

"조선인에게는 영웅, 우리한텐 원수로 적당한 놈을 찾아."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6천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된다.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관심을 돌릴 화젯거리가 필요했던 일본내각은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하던 조선 청년 '박열'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한다.

"그들이 원하는 영웅이 돼줘야지"

일본의 계략을 눈치챈 '박열'은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사형까지 무릅쓴 역사적인 재판을 시작하는데....

조선인 최초의 대역죄인!
말 안 듣는 조선인 중 가장 말 안 듣는 조선인!
역사상 가장 버릇없는 피고인!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은 사상 초유의 스캔들! 그 중심에 '박열'이 있었다!

[ PROLOGUE ]

<박열>을 통해 시대를 막론하고
젊은이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신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과연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일제강점기의 ‘박열’만큼
세상을 정면으로 보고 살아가는지 되묻고 싶다.

- 이준익 감독 –




[ ABOUT MOVIE ]

이준익 감독, <사도><동주>를 잇는 또 한번의 울림 예고!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강렬하고 새로운 시대극의 탄생!

이준익 감독과 ‘박열’의 첫 만남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화 <아나키스트>(2000)를 제작 중이던 이준익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조선의 독립 운동의 역사를 다룬 다양한 서적에 등장하는 수많은 독립투사 가운데 ‘박열’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게 된다. 1919년 3.1운동 당시 고등학생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폭압에 강한 분노를 느끼고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인 도쿄로 건너가 적극적으로 투쟁했던 청년 ‘박열’에게 운명처럼 매료된 것이다. 서양의 사상과 이념이 난립하던 1920년대, 유럽의 혁명 정신에서 영향을 받은 아나키즘에 사로잡힌 ‘박열’의 삶에 주목한 이준익 감독은 “’박열’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나키스트로서 탈 국가적이고, 탈 민족적이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의 가치관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쁜 일본인’, ‘억울하지만, 선량한 조선인’ 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로 영화를 그려내고 싶지 않았다”라고 연출을 시작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참혹한 역사를 묻으려는 일본 내각을 추궁하고, 적극적으로 항거했던 ‘박열’에 대해 우리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스스로 부끄러웠다”고 고백한 이준익 감독은 “영화로나마 ‘박열’의 삶과 가치관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20년을 공들인 끝에 드디어 영화 <박열>이 탄생할 수 있었다”라며 ‘박열’의 영화화에 얽힌 특별한 사연을 밝혔다.
영화 <박열>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 속에 가려진 인물 ‘박열’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고 있다. 영조, 사도세자, 정조까지 3대에 걸친 비극적인 가족사를 재조명했던 정통 사극 <사도>, 평생을 함께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시인 윤동주와 송몽규 열사의 청년 시절을 담담하게 그려낸 <동주> 등 다수의 시대극을 연출해 오면서 역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이준익 감독은 <박열>을 통해 전작들의 틀을 완전히 탈피한 새롭고 강렬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의 한복판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이념을 따랐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삶을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강렬하게 그려낸 이준익 감독은 열두 번째 작품 <박열>을 통해 그의 한계 없는 연출 스펙트럼을 다시 한번 입증하며 6월 극장가에 뜨거운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믿기 힘든 실화!
철저한 역사 고증에 기반한 스토리가 선사하는 강력한 울림!

최근 일본 정부가 1923년 발생한 간토(關東, 관동)대학살 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명할 예정이 없다는 답변서를 채택했다는 언론매체의 보도가 전해졌다. 2017년 5월 12일, 일본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에서 국무회의를 통해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같은 입장을 밝혔음을 전했다. 영화 <박열>은 9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간토대학살 사건이 벌어졌던 1923년 당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간토(關東,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내각은 민란의 조짐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를 계기로 무고한 조선인 6천여 명이 학살 당하는 이른바 간토대학살이 벌어지게 되는데, 국제사회의 비난이 두려웠던 일본은 사건을 은폐하기에 적합한 인물로 불령사 를 만들어 활동했던 대표적 불령선인 ‘박열’을 지목하게 된다.
영화 <박열>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일본 내각의 계략을 눈치챈 ‘박열’은 그들의 끔찍한 만행에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스스로 황태자 암살 계획을 자백하고, 조선 최초의 대역죄인이 되어 사형까지 무릅쓴 공판을 시작한다. ‘박열’과 ‘후미코’의 이러한 활약은 아사히 신문을 비롯한 당시의 일본 신문들에서 상세히 다뤄졌는데, 제작진은 철저한 고증을 위해 각 신문사에 연락을 취해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의 신문 기사 내용을 모두 요청해 검토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보면 많은 분들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대법정에서 조선인이 어떻게 저런 일을 벌일 수 있지?’라고 놀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모든 이야기는 당시 ‘박열’의 활약이 담긴 신문과 기록물들을 통해 고증된 명백한 사실이다”라며 영화 속 모든 사건이 영화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픽션이 아닌 철저하게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임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했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불꽃 같은 삶을 담은 영화 <박열>은 관객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는 물론, 뜨거운 감동까지 선사해 줄 것이다.


2017년 스크린을 뒤흔들 뜨거운 두 배우의 만남!
가장 강렬한 변신 이제훈 X 가장 빛나는 발견 최희서
거침없이 저항하며 불꽃같이 타올랐던 가장 불량한 청춘을 완성하다!

데뷔 이래 가장 강렬한 변신에 도전한 이제훈과 올해 가장 주목할 만한 신예 배우 최희서가 이준익 감독의 열두 번째 작품 <박열>을 통해 세상을 바꾸길 꿈꿨던 특별한 동지로 만났다.
장르를 불문하고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과시하며 대세 배우로 거듭난 이제훈은 실존인물 ‘박열’을 지독하리만큼 사실적으로 재현해 냈다. 1923년 당시 발행된 신문과 항일 운동 조직의 단체 사진 등을 활용한 철저한 고증을 거쳐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선 최고의 불량 청년 ‘박열’로 완벽하게 변신한 이제훈은 그의 내면을 이해하고 동화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박열>이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작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연기적인 면에 있어서도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려 노력했다”고 고백한 이제훈은 실제로 감옥에서 단식 투쟁을 벌였던 ‘박열’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촬영 내내 자발적으로 금식하며 완벽을 기했다. 일본 경찰에게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도 ‘가짜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고집으로 곤봉 세례를 자처했던 이제훈은 촬영이 끝난 후 실신 상태에 이르렀을 정도로 이전과는 또 다른 열정을 드러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감정적, 육체적으로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조선 청년 ‘박열’ 그 자체로 분했던 이제훈의 인생 연기는 관객들에게 뜨거운 여운을 선사할 예정이다.
한편, ‘박열’의 신념의 동지이자 연인인 일본 여성 ‘가네코 후미코’는 이준익 감독의 전작 <동주>에서 ‘동주’의 시를 사랑한 일본인 ‘쿠미’ 역을 통해 눈도장을 찍었던 신예 배우 최희서가 맡았다. 적은 분량에도 섬세한 감정 연기와 완벽한 일본어 실력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발산했던 최희서는 <박열>에서 당당히 주연 배우 ‘가네코 후미코’ 역에 이름을 올리며 이준익 뮤즈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에 데뷔, 8년간 100여 편의 드라마, 영화, 연극 작품에 출연하며 탄탄한 내공을 쌓아 온 준비된 신예 배우인 그녀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홀로 꽃을 피우는 야생화 같은 굳세고 당당한 여성 ‘가네코 후미코’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상처와 아픔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소감으로 첫 주연 작에 임하는 포부를 전했다. 실제 일본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의 어눌한 한국어 발음을 표현하기 위해 한국어 대사를 모두 히라가나로 바꿔가며 완벽한 발음 연기를 소화한 것은 물론, 촬영 분량이 없는 쉬는 날에도 현장에 머무르며 배우들의 일본어 선생님을 자처하는 등 영화 <박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던 최희서가 이번 작품을 통해 여배우로서 단단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뜨거운 공감의 힘!
2017년의 우리는 ‘박열’만큼 뜨겁게 살고 있는가!

시대극, 혹은 일제강점기 독립투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박열>은 1923년을 살아가던 젊은이들의 일상에 주목한 영화다. 당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인물들은 대부분 20대 초, 중반의 젊은이들이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도 마찬가지다. 영화 속에서 ‘박열’은 22살,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후미코’는 21살에 불과했다. 암울했던 시기, ‘박열’과 ‘후미코’는 부당한 권력이 장악한 세상에 대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불덩이 같은 청춘이었다.
서구의 사상들이 이념의 장처럼 난립하던 시대에 ‘박열’은 유독 아나키즘에 관심을 보였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이념으로 제국주의가 가진 폭력성에 대해 분노하고 투쟁하는 아나키즘 사상에 사로잡힌 ‘박열’은 일본의 중심부인 도쿄로 건너가 보다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펼쳤으며, 종국에는 일본 역사상 첫 조선인 대역죄인이 되어 재판정에 선다. 죽음도 불사한 채 일본 제국의 부도덕한 태도를 추궁하며 일본 내각을 가지고 놀았던 뜨거운 청춘 ‘박열’을 스크린에 되살린 이준익 감독은, 그의 삶을 통해 2017년의 우리는 과연 얼마나 뜨겁게 살아가고 있는지 반문한다.
영화 <박열>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최근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힙합에 열광하고 있다.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음악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더 나은 삶의 가치를 향해 나아가려는 이들의 목소리가 힙합이라면, 영화 <박열> 역시 한마디로 힙합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신념’, ‘저항’, ‘투쟁’, ‘아나키스트’라는 단어들은 생소할지 모르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내면에도 ‘박열’과 결코 다르지 않은 저항정신이 살아 있음에 주목한 것이다. 실제로 ‘박열’ 역을 연기한 배우 이제훈은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박열’이라는 인물이 투영되어야만 하는데, 과연 나는 세상과 역사 앞에 그만큼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동안 현실에 안주하고 비겁하게 살아오지는 않았는가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남다른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후미코’ 역의 최희서 역시 “’후미코’는 단 한 번도 본인의 이름을 알리고 싶다거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을 갖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박열’과 함께 아나키스트로서 투쟁했던 그녀의 강인한 모습에 매료되었다”라며 감회를 전했다.
이렇듯 영화 <박열>은 오늘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청춘들에게 뜨거운 공감의 메시지를 던질 것이다.




[ PRODUCTION NOTE ]

이준익 감독 & 충무로 대표 베테랑 제작진
불꽃처럼 타올랐던 저항의 역사를 스크린에 담아내다!

영화 <박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삶과 가치관을 진정성 있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이준익 감독을 필두로 이재성 미술감독(<동주><검사외전><역린> 외 다수), 조태희 분장실장(<사도><광해, 왕이 된 남자><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외 다수), 방준석 음악감독(<사도><베테랑><도둑들> 외 다수) 등 충무로 최고의 베테랑 제작진은 일제 강점기, 불꽃처럼 타올랐던 청춘들의 삶을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옮겨 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1923년, 눈앞에 펼쳐지다 _ 영화에 숨결을 불어넣는 미술
영화 <박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박열’과 ‘후미코’가 시대를 마주했던 자세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사회관과 국가관, 세계관 등의 사상일 수도 있고, 삶 그 자체일 수도 있었다. “픽션이 가미된 오락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스펙터클하고 버라이어티 한 볼거리가 필요했겠지만, <박열>은 달랐다. 오락성에 치중하여 ‘박열’과 ‘후미코’에 대한 진정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실존 인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미술 역시 실존 인물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 낼 섬세한 디테일이 가장 중요했다. 완벽한 고증을 위해, 1920년대 ‘박열’과 ‘후미코’가 활약했던 시기의 모든 신문의 원본을 찾아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미술팀의 노력으로 영화 <박열>은 더욱 사실적인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시대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소품 중 하나는 바로 신문인데, ‘박열’과 ‘후미코’의 사진이 동일하게 분장한 ‘이제훈’, ‘최희서’의 사진으로 바뀐 것만 제외하고 작은 기사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재현해 낸 신문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당시 ‘박열’의 활약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를 실감하게 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신문 못지않게 중요한 자료는 ‘후미코’의 자서전이었다. <박열>의 모든 제작진은 ‘후미코’의 자서전을 읽고, 또 읽었으며 한 문장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박열’과 ‘후미코’의 집이자 ‘불령사’의 아지트가 신발가게 2층으로 설정되었던 것과, 창문 밖에 써 붙인 붉은 하트 무늬 위 ‘반역’이라는 글씨는 모두 ‘후미코’의 자서전에 등장하는 내용 그대로를 재현한 것이다. 또한 제작진은 ‘박열’과 ‘후미코’가 처음 동거를 시작하는 장면에서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 한 권 한 권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아나키스트로 활약했던 ‘박열’이 영향을 받았을 법한 그 시대의 사상 서적들을 100여권 정도 직접 제작한 것이다. 당시 책들의 대다수는 국내에서는 이미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제작진은 일본의 국회 도서관이나 중고 서적 사이트를 샅샅이 뒤지는 노력을 기울여 실제 책 이미지를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이재성 미술 감독은 “시대적 고증을 과한 스케일로 보여주는 것보다 디테일하고 작은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박열>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시대의 정서가 느껴지는 밀도 있는 미술을 통해 관객들은 ‘박열’과 ‘후미코’라는 인물이 살아온 인생과 성장 배경 등을 큰 설명 없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1923년, 선율에 빠져들다 _ ‘인터내셔널가’ 그리고 ‘이태리정원’
영화에 등장하는 음악 중 ‘인터내셔널가(International)’와 ‘이태리정원’은 시대와 인물의 신념을 담아내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먼저, ‘인터내셔널가’는 ‘박열’과 ‘후미코’를 비롯한 ‘불령사’ 단원들이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독립운동가가 아닌, 아나키즘 사상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아나키스트임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노래이다. 프랑스어가 원 가사인 ‘인터내셔널가’는 사회주의 전통을 상징하는 노래로, 1871년 ‘외젠 포티에(Eugène Pottier)’라는 철도 노동자가 가사를 작성했고 1888년 가구세공인 ‘피에르 드제이테(Pierre Degeyter)’가 곡을 붙였으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노래 중 하나다. <박열>에서는 자경단의 무차별적인 학살을 피해 제 발로 감옥에 걸어 들어간 ‘불령사’ 단원들이 ‘박열’을 주동자로 지목해 끌고 나가는 일본 군경을 향해 일본어로 번역된 버전의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을 통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청춘들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인터내셔널가’가 불령사의 사상을 드러낸다면, 영화의 OST로 등장하는 곡인 무용가 최승희의 ‘이태리정원’은 영화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다. 피카소와 헤밍웨이가 찬사를 보냈을 만큼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최승희가 1936년, 일본의 콜롬비아 레코드사에서 녹음한 곡인 ‘이태리 정원’은 당시의 향락적 도시 정서를 반영하고 있어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박열>의 정서와 ‘이태리정원’의 곡이 가진 배경이 어우러지며 만들어 내는 아이러니함에 주목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본토에서 민족적 한계와 사상을 뛰어넘어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살아냈던 ‘박열’과 ‘최승희’가 지닌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준익 감독은 “최승희의 음악을 넣는다는 것은 굉장히 아이러니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굴레 속에 복잡 미묘하게 얽혀있는 인물과 사건들을 보면 본래 역사는 아이러니 한 것이다”라는 연출 의도를 통해 평소 인물을 통해 시대를 바라봤던 그만의 통찰력을 입증했다.

1923년, 시대와 마주하다_ 스크린에 되살아 난 일제 강점기
불꽃같이 타올랐던 ‘박열’과 ‘후미코’의 투쟁의 삶을 담아 내기 위해 간토대지진, 간토대학살 등 시대적 배경을 완벽히 재현하는 것만큼 중요했던 것은 두 사람이 격렬히 저항했던 일본 제국주의의 실체인 일본 내각의 면면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이었다. 실제 역사 기록에 의하면 혼란스러웠던 시대적인 상황으로 인해 1923년부터 1926년까지 일본 내각이 총 3번 교체된다. 이준익 감독은 일본 내각의 교체가 ‘박열’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일본이 숨기고 싶어 하는 역사를 파헤치고 추궁하는 영화에 일본인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시대적 배경은 당시의 건물, 의상, 소품 등의 사진 자료를 찾아 재현할 수 있었지만, 일본 내각의 면모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일본인 배우들의 캐스팅이 반드시 필요했다.
간토대학살을 주도했던 내무대신 ‘미즈노’ 역에 <동주>에서 윤동주를 심문하는 일본의 고등 경찰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배우 김인우가 합류했지만, 그 외에도 다수의 일본인들이 등장해야 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일본어 연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다양한 배우들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에 여러 방면으로 일본인 역할을 해 줄 배우들을 수소문했던 제작진은 ‘신주쿠양산박’ 이라는 재일교포 극단을 찾아냈다. 재일교포와 일본인으로 구성된 극단 ‘신주쿠양산박’을 이끄는 수장 김수진 대표는 극단의 배우들과 함께 흔쾌히 일본 내각의 수뇌부 역할에 응했고, 배우들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폭력성과 비도덕적인 면모를 가진 캐릭터들을 마다하지 않고 열연을 펼쳤다. 그 결과 영화 <박열>은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방식으로 일제 강점기 일본 정부의 수뇌부들의 실체를 보다 선명하게 재구성할 수 있었다.




[ SPECIAL STORY ]

아나키즘의 시작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조선의 아나키스트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과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망의 표출

1. 아나키즘(anarchism)의 태동과 변천

권력 또는 정부나 통치의 부재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an archos’ 라는 어원으로부터 유래된 ‘아나키즘’은 모든 제도화된 정치 조직,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을 뜻한다. 개인의 자유를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고, 그에 대한 모든 억압적인 힘을 부정하는 사회철학이자 정치이념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활약했던 근대 아나키즘의 선두주자 영국의 W.고드윈(William Godwin)에 의해 성립되기 시작했고,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며 사상을 형성시킨 프랑스의 P. J.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이 세계의 아나키즘을 이끌었다. 이후, 러시아의 M.A. 바쿠닌(Михаил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акунин)이 민족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결부시켜 성격을 바꾼 아나키즘은 19세기 유럽의 혁명운동에 영향을 미치며 남유럽, 북미 등 산업화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크로포트킨(Pyotr Alekseevich Kropotkin)의 이론에 의해 더욱 체계화된 아나키즘은 한, 중, 일 등 동아시아의 혁명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대의 아나키즘은 정치적으로는 분산되었으나 관료화되고 조직화된 현대의 산업사회 가운데 여전히 매력적인 사상으로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으며, 그 결과 생태주의, NGO 활동과도 연계해 발전해가고 있다.

2. 일제강점기 아나키즘과 항일 투쟁 운동
서구의 사상들이 이념의 장처럼 난립하던 일제강점기, 3.1 운동을 계기로 한인 학생들 사이에서는 민족주의적 투쟁과 함께 아나키즘 운동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일본 제국주의 권력의 부당함과 폭력성에 분노하던 조선의 젊은이들은 민족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민중의 평등성, 권력과 폭력의 부당성을 기저로 한 아나키즘을 토대로 항일운동을 본격화했다. 일본 제국주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천황제와 제국주의 내각의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한 조선의 젊은이들은 보다 더 직접적인 행동으로 항일 투쟁 운동을 시작했고, 이들이 바로 조선의 아나키스트들이었다.

3. 조선의 아나키스트
일제 치하의 한국 아나키즘은 식민지 시대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일본과 중국에서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 시기 일본과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벌이던 박열, 신채호, 김원봉, 유림, 이회영, 백정기, 유자명 등이 대표적인 조선의 아나키스트들이다. 이들은 권력의 속성인 억압과 강제를 거부하고 평등을 이념으로 삼은 독립된 주체로서 자유를 신봉하는 휴머니스트이기도 했다. 또한 아나키즘의 사상과 이념을 바탕으로 시, 소설의 창작 등 문학 활동을 비롯해 음악과 그림으로 이어지는 예술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젊은이들의 저항 정신과 독립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표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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