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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특선 (2000)

EBS | 일 23시 00분 | 2000-12-09 ~

네티즌 평점

(1명 참여)
네티즌별점9.0

회차정보

  • 2013.02.24 (일)

    [안내] 2013년 2월 서비스 운영정책 변경으로, 2월 24일 회차부터 회차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 2013.02.17 (일)

    신라의 달밤
    감독 : 김상진
    출연 : 이성재, 차승원, 김혜수, 이종수
    제 작 : 2001년
    영화길이 : 119분
    나이등급 : 15세
    HD 방송

    줄거리
    고등학교 짱 최기동(차승원 분)과 모범생 박영준(이성재 분)은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마지막 날, 신라의 달빛 아래에서 전설의 패싸움이 벌어진다. 최기동은 무리를 앞장서고, 박영준은 신발끈을 고쳐매다가 무리에서 낙오된다. 결국 최기동은 선생님들에게 두들겨 맞고, 박영준은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한다. 10년이 흐르고 두 사람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인생은 서로 뒤바뀌어 있었다. 최기동은 조폭 같은 선생이 되었고, 박영준은 일등급 깡패가 되었다. 그 둘은 반갑게 인사하지만 내심 10년 전 사건을 떠올리며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 라면집 주인 민주란(김혜수 분)이 나타나면서 두 남자는 민주란을 향한 팽팽한 대결을 펼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끼어드는 또 한 명이 있었으니 민주란의 동생, 민주섭(이종수 분)이다. 주섭은 기동 학교의 소문난 문제아로 평소 조폭 생활을 동경하는데, 영준을 만나게 된 후 그의 후계자가 되려고 결심한다. 한편, 영준을 노리는 반대파 조직은 그를 쫓다가 영준의 주변인물인 기동과 주란을 표적으로 삼게 되고 주란을 납치한다. 영준은 적진에 제 발로 찾아가게 되고 위험에 처한다. 그 때 영준을 구하려고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기동이다. 영준, 기동, 민주 세 사람은 우정과 사랑을 걸고 그들과 정면승부를 벌이게 되고 두 남자는 사랑을 초월한 우정을 회복하게 된다.

    해설
    10년 전, '학교 짱' 최기동과 '모범생' 박영준이 10년 후, '학교 선생' 최기동과 '엘리트 조폭' 박영준이 되어 우연히 재회하게 되면서 한 여자를 놓고 벌이는 코미디 액션. 감독은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흥행에 성공한 김상진이고, 스태프진도 박정우 작가, 김미희 제작자, 손무현 음악감독 등이 그대로 참여했다. 이성재, 차승원 김혜수, 이종수 등이 출연하였고, <주유소 습격사건>에 출연하였던 강성진, 김수로, 이원종, 유해진 등이 다시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김상진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인 <신라의 달밤>은 장르영화로써의 코미디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사실 코미디라는 게 생각만큼 그리 쉬운 장르가 아니다.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려는 것이 코미디 영화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보았을 때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그러한 웃음을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요컨대 ‘김상진’식 코미디 영화의 특징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컨셉의 코미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든 5편의 영화가운데 <깡패수업>한 편을 제외하면 모두 코미디 장르에 속하는 영화인데, 이들 영화들은 한결같이 하나의 핵심적인 컨셉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돈을 갖고 튀어라>의 기본 컨셉은 “내게 만약 100억 원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보았음직한 질문이다. 거액의 돈을 수중에 넣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생각해 볼 때, 이와 같은 컨셉은 특히 코미디 장르에 적절하다고 하겠다. <투캅스 3>도 단순한 컨셉으로 시작하는 영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만약 파트너가 남자들끼리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기이한 파트너라면 어떻게 될까하는 것이었다. <신라의 달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출발점은 한 줄의 컨셉이니까 말이다. “10년 전의 고교 동창생이 ‘깡패’와 ‘선생’으로 재회,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좌충우돌 코믹액션”이 바로 영화의 기본 컨셉이었던 것이다. 감독은 <주유소 습격사건>에 이어 <신라의 달밤>을 거쳐 2002년 <광복절 특사>라는 코미디물까지 잇달아 대박 행진을 펼침으로써 강우석을 잇는 흥행의 귀재로 자리잡았다.

    2002년 제25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인기남우상(차승원), 2002년 제3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신인남우상(이종수)을 수상하였다.

    감독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데뷔작 <돈을 갖고 튀어라>(95)에서 <신라의 달밤>(01)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인 코드를 효과적으로 공략하며 한국 코미디 영화의 강자로 떠올랐다. <주유소 습격사건>(99)으로 제19회 벤쿠버영화제에 진출하기도 했던 김상진 감독은, 기발한 유머감각으로 역대 흥행작 순위를 연거푸 바꿔놓았던 흥행사이기도 하다.

    주요 연출작
    <돈을 갖고 튀어라>(1995년), <깡패 수업>(1996년), <투캅스 3> (1998년), <주유소 습격 사건>(1999년), <신라의 달밤>(2001년), <광복절 특사>(2002년), <귀신이 산다>(2004년),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2007년), <주유소 습격 사건 2>(2010년), <투혼>(2011년)

  • 2013.02.10 (일)

    춘향뎐
    감독 : 임권택
    출연 : 조승우, 이효정, 김성녀, 이혜은
    제작 : 2000년
    영화길이 : 134분
    나이등급 : 15세

    줄거리
    조선조 숙종시대, 남원부 자제 이몽룡은 방자를 앞세우고 광한루 구경을 나선다. 단오날, 여러 무리속에서 뛰어난 미인 춘향을 발견한 몽룡은 방자를 시켜 자신의 뜻을 전하지만 춘향은 "안수해, 접수화, 해수혈"이라는 말을 남기고 그네터를 떠난다. 직접 자신을 찾아오라는 춘향의 뜻을 알아챈 몽룡은 야심한 밤을 틈타 춘향집을 방문한다. 몽룡은 춘향 어미 월매에게 춘향과의 백년가약을 원한다는 뜻을 밝히고 불망기를 써서 자신의 마음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임을 맹세한다. 이후 둘은 꿈결같은 세월을 보낸다. 하지만 몽룡의 아버지가 한양으로 가게 되니 이몽룡도 별수 없이 부모를 따라 한양으로 가게 된다. 이때 호색한으로 소문난 변학도는 남원골 춘향이 절색이란 소문을 듣고 남원부사로 부임하고 춘향에게 수청 들기를 강요한다. 이에 춘향은 자신은 비록 기생의 자식이나 명부에 올리지 않았으므로 기생일 수 없고 구관댁 도련님과 백년가약하였으니 이부종사는 할 수 없다고 버틴다. 화가 난 변사또는 춘향에게 모진 고문을 가하지만 춘향은 절개를 굽히지 않는다. 한편, 몽룡은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로 임명받아 전라도로 내려오고 변학도의 폭정과 춘향의 높은 절개에 칭찬이 자자함을 알게 된다. 걸인 차림으로 몽룡은 옥방의 춘향을 만나고 춘향은 몽룡을 향해 변함없이 뜨거운 사랑을 보낸다. 다음날 광한루, 변학도의 생일잔치가 장대히 벌어지고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 암행어사 출두가 붙여지고 몽룡은 변학도를 응징한다. 몽룡과 춘향은 재회하고 동헌은 축제 분위기로 충만해진다.

    해설
    이미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던 <춘향전>을 인간문화재 조상현의 판소리를 중심으로 새롭게 연출한 영화.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최초로 선보이는 판소리판 <춘향전>. 국창 인간 문화재 조상현의 춘향가가 영화 전반에 흐르며, 이것을 그대로 영상화했기 때문에 가장 원작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으며, 화면이 빼어나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으나 수상은 못했다. 2000년 12월 29일 미국 뉴욕에서 소규모로 개봉하였다. 조상현의 춘향가는 동편제인 김세종제의 것이라 한다. 철종 때의 김세종 명창의 제자 김찬업을 거쳐 정응민에게 전수되었으며, 정응민에게서 조상현으로 전해진 것인데 뛰어난 명창들을 통해 내려온다고 한다. 주연인 춘향과 몽룡 배역은 원작의 나이와 비슷한 10대의 신인으로 구성되어, 여고1학년인 이효정이 춘향 역을, 단국대 연극영화과 2학년인 조승우가 몽룡 역을 연기했다. 그리고 김성녀, 이혜은 등 널리 알려진 배우들이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다. 민속학자와 사학자들이 고증작업에 참가하였으며, 30억여 원의 제작비에 힘입어 옥사에서부터 요리까지 당대의 생활상을 풍성하게 재현했다. 여기에 시골길과 마을 그리고 한국적 산수의 아름다움은 임권택과 오랫동안 함께 일한 정일성 촬영 감독의 영상도 수준급이다. 국내 평론가들에게도 거장에 대한 찬사로 호평을 받아냈다.

    수상내역
    제37회 대종상 영화제 (2000)
    * 심사위원특별상: ㈜태흥영화
    * 미술상: 민언옥

    제36회 백상예술대상 (2000)
    * 영화부문 대상: 임권택
    * 영화부문 감독상: 임권택

    감독
    임권택 감독은 1936년 전남 장성 출생. 해방전후 부친과 삼촌의 좌익활동으로 집안의 가세가 많이 기울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유년시기와 학창시절을 지냈다. 한국영화가 양적 풍요로움을 구가하던 60년대 감독으로 출발한다. 1970년대에 <왕십리>(1976),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상록수>(1978), <깃발없는 기수>(1979)를 통해 작가적 역량을 축적하여 1980년대로 접어든다. 1980년대는 감독 스스로 다시 제작하고 싶은 영화라고 부를 정도로 애정을 지닌 <짝코>(1980)를 연출하면서 전성기를 열어간다. 대표작은 1981년 <만다라> <아제아제바라아제>(1989)가 있으며 1993년 한국영화 관객동원 100만을 돌파한 기념비적인 작품인 <서편제>와 2000년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된 <춘향뎐>등 1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99번째 작품인 <취화선>(2002)으로 제 5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최근작으로는 그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2011)가 있다. 그는 현재 2014년 인천에서 열릴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선임된 후 프로그램에 우리 문화재를 담아내는 것에 대해 고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2013.02.03 (일)

    접속
    감독 : 장윤현
    출연 : 한석규, 전도현
    제작 : 1997년
    영화길이 : 106분
    나이등급 : 15세

    줄거리
    갑자기 떠나버린 옛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폐쇄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남자 동현. 그는 같이 일하는 방송작가 은희가 보내는 맹목적 집착으로 자신의 선배 태호와 원치 않는 삼각관계에 얽혀 있다. 어느 날 옛 사랑인 영혜로부터 전달된 음반으로 인해 그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친구 희진의 애인을 짝사랑하는 CATV 홈쇼핑가이드인 수현은 짝사랑의 외로움이 깊어지면 심야 드라이브를 한다. 어느날 드라이브 중에 자동차 사고를 목격함과 동시에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매료되어 통신을 통해 그 음악을 신청한다. 동현은 옛사랑, 영혜로부터 음반을 받은 후 그 음악을 방송으로 내보냈고, 수현은 사고를 목격하면서 그 음악을 들은 것. 수현이 음악을 신청하자, 동현은 그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PC통신을 통해 접속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고 실망한다. 그러나 수현이 자기처럼 외로운 사람이고 반응없는 사랑에 대한 열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통신 속 만남이 빈번해지면서 그들은 어느덧 서로 에게 빠져든다. 수현은 어느덧 짝사랑을 정리하고, 동현도 원치 않는 삼각관계를 이유로 방송국을 그만둔다. 일체의 모든 관계로부터 자유로워진 이들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만남을 벗어나, 함께 얼굴을 맞대고 영화를 보기로 약속한다.

    해설
    PC 통신을 통해 서로의 아픈 과거를 치유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사이버 로맨스. 1997년 방화 최고 흥행작(68만, 전국 150만)으로, 이미 여러번 외화에서 주제곡으로 사용했던 "사랑의 송가"가 큰 히트를 하여 국내 영화에선 보기 드물게 OST 앨범이 70만장 팔리는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는 동일한 형식의 1996년도 일본 영화 <하루(ハル)>를 표절했다는 시비가 있었는데, 감독은 부인했다. 한편, 주연한 한석규는 국내 최초로 2억원대 개런티를 받았다. 1997년 부천판타스틱 영화제 네티즌 초이스상, 1997년 대종상 작품상, 신인감독상, 조명상, 편집상, 각색상, 신인여우상, 1997년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 1997년 청룡영화제 최고흥행상, 신인여우상 수상.

    감독
    1989년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1992년 헝가리 국립영화학교 수료하였고, 1987년 단편영화 <인재를 위하여>를 연출했다. 1988년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를 공동연출했다. 1997년 영화 <접속>을 연출로 흥행에 성공하며, 1998년 대종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1998년 (주)쿠앤씨필름을 설립,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1999년 <연풍연가>를 제작했고, 두 번째 작품 <텔 미 썸딩>에 이어 세 번째 작품 <썸>을 연출했다. 그 후 2007년 <황진이>, 2012년 <가비>를 발표했다.

  • 2013.01.27 (일)

    남부군
    감 독 : 정지영
    출 연 : 안성기, 최민수, 최진실, 이혜영
    1990년 작
    컬러, 157분
    15세

    줄거리
    1950년 9월말. 이태(안성기 분)는 ‘조선 중앙통신사’의 종군 기자로 전주에 파견 근무를 하게 된다. 파죽지세로 낙동강까지 내려왔던 인민군이 패전을 거듭하자 이태는 ‘조선 노동당 유격대’에 합류하게 된다. 취재활동이 있을 때까지 전투대원으로 참가하라는 지시였다. 전세의 변화에 따라 남부군은 부대를 개편하게 되는 데 이때 이태는 '지리산 승리의 길'이라는 빨치산의 진중신문 편집과 전사기록의 책임을 맡아 빨치산의 전투 활동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얼마 후 빨치산에게 전투 회담의 소식이 전해지자 빨치산은 이제 북으로의 귀환과 열렬한 환영을 기대하며 가슴이 부푼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남쪽으로부터의 추격과 북쪽으로부터의 버림을 받게 되는 남부군의 최후의 서곡이었던 것이다. 청용 작전이 무너지고 토벌대에 쫓기면서 부상당한 이태는 자신을 간호해 주던 박민자(최진실 분)와 사랑에 빠지지만, 본대복귀 명령으로 슬픈 이별을 하는데... 겨울은 깊어만가고 이태의 소대는 악담봉 전투에 참여한다. 그곳에서 시인 김영(최민수 분)을 만나 그는 동족간의 전쟁의 허무함을 토로한다. 계속되는 전투에 쫓긴 남부군은 지리산에 밀려와 상상속의 이현상 사령관을 만나고, 이태는 김희숙 대원(이혜영 분)의 용감성 놀란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부 소속의 정식당원이 된다. 휴전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대원들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고, 남부군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궁지에 몰린다. 생존을 위한 필사의 투쟁, 쇄진해진 사기로 위기에 놓인 남부군, 최후의 발악같은 전투가 벌어지고 대열에서 낙오된 이태는 눈속을 헤메고 결국, 그의 기나긴 빨치산 투쟁도 막을 내리게 된다.

    해설
    ‘거리의 악사’, ‘위기의 여자’(1987)를 연출한 정지영의 대표작의 하나. 1988년에 펴낸 이태의 자전적 소설 <남부군>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그동안 금기시돼왔던 빨치산을 역사 평가의 대상으로 삼은 첫 작품이기도 하다. 6·25 당시 합동통신 기자였던 이태(李泰, 1922~1997)는 서울에서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북한 조선통신 기자가 되었으며 1950년 9월, 순창 엽운산에 빨치산으로 입산, 남부군에 가담하여 실제 빨치산(Partizan)으로 활동하다가 1952년 3월에 토벌대에 체포되었다. 영화는 그가 직접 경험한 지리산 빨치산 활동과 왜 남과 북이 갈라서고 왜 동족끼리 죽이고 죽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사유를 보여준다. 이는 지리산에 갇힌 남부군이 남한의 토벌대에 쫓기면서 결국 북한에서도 버림받는다는 비극적인 운명으로 결론짓는다.

    1949년에서 1954년까지 소백 지리 지구 유격전에서 사망한 군경 및 빨치산 수는 2만여 명. 또한 3년여에 걸친 한국전쟁 기간 동안 남북 양쪽의 총 희생자 수는 사망 130만 명, 행방불명 111만여 명으로 이 작품은 그들의 영전에 바쳐졌다. 작가는 당시의 처절함과 참혹상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남과 북 어느 쪽에도 승리는 없다. 우리는 외세의 힘으로 해방되었고, 외세로 인해 분단되었으며, 외세가 개입한 전쟁을 하고 있다. 어디가 이기든 그것은 남과 북이 아니라, 미국이나 소련의 승리일 따름이다”이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공산주의인 빨치산의 활동상과 처지를 객관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그린 최초의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지식인의 관점에서 그려졌고 빨치산이 지나치게 개인적으로 재현되었으며 민중들을 비주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남부군 빨치산 미화 역사의식 혼돈우려(글 정영창)」 동아 90. 7. 14) 제작기간 3년에 엑스트라가 3만 명, 항공기까지 지원받은 당시로써는 보기 드문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CF스타였던 최진실, 가수 임창정 스크린 데뷔작. 관객 33만여 명 동원, 1990년에 제작된 영화 111편 중 한국영화 흥행 순위 2위.

    감독
    1946년 충북 청주 출신. 고려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충무로에는 김수용 감독의 작품을 10여 편 참여하여 조감독 생활을 충무로 생활에 젖어들었으며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하면서 작업의 범위를 점차로 넓혀갔다. 1982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를 통해 본격적인 감독의 길에 들어선다. 1987년에는 한수산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거리의 악사>를 연출했다. 그 후 <위기의 여자>(1987), <여자가 숨는 숲>(1988), <산배암>(1989) 등 1980년대 성애영화의 경향에 부응하는 영화들을 감독하였다. 1990년대 접어들면서 문화 전반적인 이념적 해금분위기에서 빨치산 수기가 출판되고 월북 문인들의 작품들이 출판되는 시기에 빨치산을 다룬 영화를 선보인다. 그 작품은 빨치산 활동을 했던 이태의 수기를 토대로 출판된 <남부군>이었다. 반공영화가 주류를 이루었던 한국영화사에서 남부군을 주인공으로 하고 빨치산들의 실생활을 리얼리즘적 시각에서 접근한 영화로서 <남부군>을 주목을 받았다. 그 후 고은의 소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을 영화화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을 연출하였다. 이 영화는 이미 김기영에 의해 <파계>라는 작품으로 영화화 된 적이 있다.

    1992년에는 안정효의 원작 <하얀전쟁>을 영화화하였다. 이 영화는 월남전쟁의 후유증을 다루었으며 전쟁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수작이었다.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아 동경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1994년에는 안정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를 연출하였다.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에 영화를 좋아한 주인공들의 일화를 담아내어 한국관객들의 노스탈지아를 자극한다. 시나리오 작가가 된 주인공은 미국영화의 지나친 영향으로 의도하지 않은 표절 시나리오를 써서 파행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굴절된 우리사회와 미국영화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그 후 1997년 <블랙잭>과 1999년 <까>가 연이어 흥행과 평가에서 양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였으며 2002년 <은지화>를 연출하였다. 최근작으로 2011년 <영화판>, <부러진 화살>, 2012년 <남영동 1985> 등이 있다. 한국영화인회의 이사장과 서울예술전문학교 학장을 지냈다.

  • 2013.01.20 (일)

    개그맨
    감 독 : 이명세
    출 연 : 안성기, 황신혜, 배창호
    1988년 작
    HD, 컬러, 127분
    15세

    줄거리
    자신이 천재라는 환상 속에서 위대한 영화 감독의 포부를 안고 사는 29세의 삼류 캬바레의 개그맨인 이종세와 장차 영화 배우가 꿈인 31세의 변두리 이발소 주인인 문도석, 그리고 무위도식하는 처녀 오선영은 무더운 여름날 서로 만나게 된다. 그들은 영화의 탄생을 장담하며 손을 잡고, 꿈에 도전한다.

    해설
    ■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 배창호 감독의 배우 데뷔작
    ■ “이땅에서도 이제 비로소 영화적 반성과 유희가 싹틀 수 있음을 선포한 영화. 그 점에서 이 영화는 확실히 새로운 공기와 같다”(김정룡)

    - 개봉 당시는 관객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 이전의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험적인 영화기법을 제시해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변두리 이발소를 내부 풍경을 더듬는 유려한 롱테이크 장면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관습들을 마음대로 유희하며 뫼비우스 띠처럼 영화와 현실, 현실과 환상을 엮어낸다.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대한 영화광적 자의식은 인물설정에서 채플린이라는 아이콘을 비틀어 끌어온 데서 쉽게 엿볼 수 있으며, 코미디, 갱스터의 문법들 또한 마구 동원되고 있다. 영화는 관객의 관습적인 기대를 배반하며 자꾸만 다른 이야기로 건너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의기투합한 개그맨과 이발사라는 영화 초반의 인물 설정은 <개그맨>을 ‘영화에 대한 영화’로 상상하게 하지만, 그 지점에서 영화는 갱스터 영화로 비약한다. 영화제작을 향한 이들의 욕망은 어이없게도 강도 행각으로 실현되며, 장난만 같던 이들의 강도짓이 실제 살인 사건을 불러일으키면서 이야기는 다시 한번 도약한다. 이어 경찰의 체포가 임박한 위기의 순간, 모든 것이 꿈이었음이 밝혀지면서 그 동안 축적된 영화적 긴장감은 한순간에 풀어지고 만다. 코믹한 톤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만 일관성을 가질 뿐, <개그맨>은 전통적인 드라마트루기와는 거리를 둔 채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 사이를 마음대로 누비며 어떤 전통에도 묶이지 않는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런 까닭에 이 영화에 대해 ‘낯설다’거나 ‘어설프다’거나 하는 식의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것이야말로 뒤늦게 진가를 발휘하게 된 이 영화의 의중이었다.

    감독
    1957년 충남 아산 출생.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 영화과 입학. 1988년 <개그맨> 연출. 1991년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아태영화제 등 신인감독상 수상. 1993년 <첫사랑>으로 청룡영화제 각본상, 아태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 1995년 <남자는 괴로워> 연출. 1996년 <지독한 사랑> 연출. 2000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로 도빌아시아영화제 대상, 감독상 수상.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 그랑프리. 2005년 <형사 Duelist>로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작품상, 감독상 수상. 2007년 연출.

  • 2013.01.13 (일)

    길소뜸
    감 독 : 임권택
    출연 : 김지미, 신성일, 한지일, 이상아
    제작 : 1986년 작
    영화길이 : 105분
    나이등급 : 15세

    줄거리
    해방 후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화영(김지미)은 황해도 길소뜸이라는 마을에서 아버지의 친구 집에 얹혀살다가 그 집 아들 동진(신성일)과 사랑에 빠져 아들 석철을 낳게 된다. 그러나 동진네 집에서 쫓겨난 화영은 전쟁통에 석철을 잃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지금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동진도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이산가족 찾기가 한창이던 1983년 여름, 화영은 남편의 권유로 아들을 찾으러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동진과 함께 아들을 찾기로 한다. 두 사람은 잃었던 아들 석철을 만나지만 화영은 왠지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듯한 석철의 언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유전자 친자확인으로 석철이 자신의 아들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영은 완전한 확증이 아니라면서 이를 거부하려 든다. 30년 이상을 떨어져 살아온 상대방이 자신의 혈육이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화영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동진 역시 법의학의 애매한 진단결과와 화영의 회의에 망설이다가 석철에게 “자주 만나자”는 말만 남기고 돌아서버린다.

    해설
    이산가족의 아픔을 통해서 전쟁이 남긴 상처와 고통을 다룬 이 영화는 전쟁과 분단에 대한 시각을 이데올로기의 단순 비교차원에서 휴머니즘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인위적인 이별을 강요당했던 시대의 아픔을 묘사하였다.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소재로 한 임권택 연출작. 그러나 감독은 이산가족 찾기 감정에 침몰되지 않고 비정할 정도로 현실을 직시하는 냉정성을 지킨다. 즉 “그들은 만나서 정말 행복했을까”(한국영상자료원편, 유지나 외, 『한국 영화사 공부 1980-1997』, 이채, 2005년, p.49)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는 3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은 그들을 하루아침에 한 가족으로 묶을 수 없으며 그들은 그들이 살아온 삶과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큰 주제를 살리기 위해 모든 군더더기를 제거했다는 감독의 말대로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일종의 리얼리즘 영화로 이끌어나간다.

    카메라는 가정으로 돌아가는 화영의 모습에서 결국 석철이 자신의 자식임을 알고 있는 모성의 진한 눈물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화영과 동진이 옛날을 회상하는 장면과 현재 자신들이 서있는 시점을 플래시백 교차로 잡으면서 그들이 어떻게 엇갈리고 어떻게 서로 다른 삶을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추억은 아름답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며 두 사람은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으로 너무 멀리 달려왔다는 사실을 클로즈업시킨다. 실제 KBS의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촬영분을 섞어서 편집해선지 생동감이 더 하다. 신성일과 김지미는 자신들의 목소리로 연기했으며 김지미는 대종상 여우주연상, 임권택은 백상예술대상과 영평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개봉 당시 호평을 받았고 10만 4,796명 관객동원으로 흥행에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제3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본선 진출, 제22회 시카고 영화제에서 게츠세계영화상을 받았다.

    감독
    임권택 감독은 1936년 전남 장성 출생. 해방전후 부친과 삼촌의 좌익활동으로 집안의 가세가 많이 기울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유년시기와 학창시절을 지냈다. 한국영화가 양적 풍요로움을 구가하던 60년대 감독으로 출발한다. 1970년대에 <왕십리>(1976),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상록수>(1978), <깃발없는 기수>(1979)를 통해 작가적 역량을 축적하여 1980년대로 접어든다. 1980년대는 감독 스스로 다시 제작하고 싶은 영화라고 부를 정도로 애정을 지닌 <짝코>(1980)를 연출하면서 전성기를 열어간다. 대표작은 1981년 <만다라> <아제아제바라아제>(1989)가 있으며 1993년 한국영화 관객동원 100만을 돌파한 기념비적인 작품인 <서편제>와 2000년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된 <춘향뎐>등 1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99번째 작품인 <취화선>(2002)으로 제 5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최근작으로는 그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2011)가 있다. 그는 현재 2014년 인천에서 열릴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선임된 후 프로그램에 우리 문화재를 담아내는 것에 대해 고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2013.01.06 (일)

    아다다
    감 독 : 임권택
    출 연 : 신혜수, 한지일, 이경영, 전무송
    1987년 작
    컬러, 118분
    15세

    줄거리
    벙어리라는 이유로 눈총을 받으며 살아온 아다다는 지참금을 가지고 영환에게 시집을 온다. 그녀는 시부모와 남편을 정성껏 모시고 열심히 일해서 집안 살림을 일으켜 세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남편 영환은 아다다를 귀찮아하며 술집으로 겉돌더니 급기야는 돈을 쥐고 중국으로 달아난다. 세월이 흘러 외지에서 돈을 번 영환은 신여성 미옥을 데리고 귀향한다. 미옥의 아양과 선물공세에 놀아난 시부모는 아다다가 시집올 때 가져온 지참금까지 돌려주면서 정을 끊어버린다.친정에서도 쫓겨난 아다다는 어린 시절 오빠처럼 따르던 수룡에게 의지하게 되고 수룡은 그녀를 맞아들여 사랑과 행복을 약속한다. 그러나 그녀가 시집에서 돌려받은 지참금을 본 수룡은 돈에 욕심이 나선지 물질적 풍요를 꿈꾸게 된다. 돈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생각하는 아다다는 어렵게 얻은 행복을 지키기 위해 돈을 강물에 뿌린다. 뒤늦게 달려온 수룡은 이를 보고 미친 듯이 아다다를 끌고 강물 속으로 뛰어든다. 수룡은 아다다 때문인지, 흘러가버린 돈이 아까워서인지 주먹을 부르쥔 채 물결만 바라본다

    해설
    계용묵 원작. 돈에 눈이 먼 배금주의와 영혼의 아름다움을 대비한 향토색 짙은 작품. 1956년 나애심이 주연한 이강천의 ‘백치 아다다’ 이후 30년 만에 리메이크 되었다. 임권택의 ‘아다다’는 우리 영화계 각 분야의 일류들이 모여 만든 영화답게 기술적 완성도와 작품 해설력이 조화된 작품이다. 또한 임권택의 연출은 원작의 단조로움을 엄격한 화면구성과 긴밀한 이야기 전개로 극복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선전 포스터 문구가 던지는 “이 영화는 왜 다시 만들어져야 했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이 제시되지 않는다는 평이 있었다. 여주인공인 신혜수가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1987년 ‘씨받이’의 강수연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에 이어 또 하나의 국제적인 평가를 다시 입증했다. 제24회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제12회 몬트리올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제26회 대종상 편집상, 신인연기상(신혜수), 제12회 황금촬영상 특별상(신인얼굴부문: 신혜수), 제3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출품, 제42회 깐느국제영화제 출품.

    감독
    임권택 감독은 1936년 전남 장성 출생. 해방전후 부친과 삼촌의 좌익활동으로 집안의 가세가 많이 기울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던 유년시기와 학창시절을 지냈다. 한국영화가 양적 풍요로움을 구가하던 60년대 감독으로 출발한다. 1970년대에 <왕십리>(1976),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상록수>(1978), <깃발없는 기수>(1979)를 통해 작가적 역량을 축적하여 1980년대로 접어든다. 1980년대는 감독 스스로 다시 제작하고 싶은 영화라고 부를 정도로 애정을 지닌 <짝코>(1980)를 연출하면서 전성기를 열어간다. 대표작은 1981년 <만다라> <아제아제바라아제>(1989)가 있으며 1993년 한국영화 관객동원 100만을 돌파한 기념비적인 작품인 <서편제>와 2000년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초청된 <춘향뎐>등 1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99번째 작품인 <취화선>(2002)으로 제 5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라섰다. 최근작으로는 그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2011)가 있다. 그는 현재 2014년 인천에서 열릴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선임된 후 프로그램에 우리 문화재를 담아내는 것에 대해 고민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2012.12.30 (일)

    기쁜 우리 젊은 날
    감 독 : 배창호
    출 연 : 안성기, 황신혜
    1987년 작
    컬러, 130분
    15세

    줄거리
    소심한 성격의 대학생 영민(안성기 분)은 연극 공연을 보던 중 주인공 혜린(황신혜 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혜린을 처음 본 순간부터 짝사랑을 시작한 영민은, 그렇게 혜린의 열렬한 팬이 되어 공연 때마다 꽃과 선물을 보낸다. 그러나 소심하고 용기없는 영민은 혜린에게 자신의 존재도 알리지 못한 채, 익명으로 선물을 보내며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몇 년 후, 대학을 졸업한 혜린은 한 산부인과 전문의와 결혼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영민은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소중한 첫 사랑을 가슴에 묻고 지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평범한 회사원으로서 살던 영민은, 우연히 지하철에서 자신의 첫사랑 혜린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에게 상처를 입은 이혼녀의 모습이었다. 영민은 힘겨워하는 혜린을 지켜줘야겠다는 일념으로 그녀에게 끈질긴 구애를 하고, 영민의 사랑에 감동한 혜린은 그와 두 번째 결혼을 한다.

    행복하게 살던 영민과 혜린에게 아이가 생기지만, 그녀는 불행히도 임신중독의 증상을 보인다.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면 혜린의 생명까지 보장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혜린은 영민과 자신의 소중한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노라 선언한다. 혜린의 강력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영민은, 아이를 낳다 죽은 혜린을 대신해 자신의 딸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로 키울 것을 다짐한다.

    해설
    1987년 태흥영화주식회사에서 제작하였다. 각본은 이명세, 배창호이고, 감독은 배창호. 안성기, 황신혜, 최불암, 전무송 등이 출연하였다. 한 여자를 일편단심 사랑한 소심한 남자의 행복담을 그린 멜로드라마 영화이다. 제26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녹음상, 제32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에서 안성기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감독
    1953년 대구 출생.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곧 서울로 이사해 어린시절을 보냈다. 집안의 반대로 배우의 꿈을 접었지만 늘 영화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던 어머니 영향으로 많은 영화를 접했고 배우를 동경했으나 점차 감독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1971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 재학시절에 연극반에서 연극인 오태석과 활동하기도 했으며 글 쓰는 것을 즐겨 직접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여러 영화사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졸업 후 ‘한국개발 리스’와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하여 안정적인 생활을 했지만 늘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슴속에 남아있었던 배창호는 이장호와 만나 그동안 참았던 영화의 열정을 발산하기로 한다. 1978년에는 아프리카 케냐로 발령을 받아 출국까지 했지만 이장호 감독의 재기 소식을 듣고 귀국. 1980년 <바람불어 좋은날>의 조감독으로 영화 일을 시작한다.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 응모했던 '정오의 미스터 리'가 당선되면서 데뷔작을 준비하던 그는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을 선택한다. 이 작품은 서민들의 가난하고 힘겨운 삶에 대한 애착과 질긴 생명력을 리얼리즘에 입각하여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받으며 그는 처녀작으로 일찌감치 이름을 알린다.

    첫 작품의 성공으로 고무된 그는 다음해 최인호 원작의 <적도의 꽃>을 연출한다. 폐쇄적인 성격의 주인공 나(안성기)는 어느 날 맞은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선영(장미희)을 발견한다. M이란 존재로 선영 주위를 맴돌던 그는 곤경에 처한 그녀를 위해 사람을 해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깊은 외로움에 고통 받던 선영은 M의 사랑을 외면한 채 자살해버린다. 아파트라는 고독한 공간과 산업사회로 치달아 가면서 겪게 되는 인간의 소외감이 비정상적인 애정에 몰두하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 작품으로 그 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사회에서 소외된 3명의 젊은이가 고래를 잡으러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로드무비형식의 <고래사냥>은 크게 히트하며 80년대 억눌리고 자유를 잃어버린 젊은이들의 감성과 심정을 대변한 영원한 청춘영화로 자리매김을 한다. 안성기, 김수철, 이미숙이 주연을 맡았고 영화음악까지 담당한 김수철의 노래도 인기를 끌었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을 그린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1984), 한창 미국이민의 길고 긴 줄이 이어지던 시절. 아메리카 드림 하나만 믿고 낯선 땅으로 많은 사람이 길을 떠난 80년대.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으며 점차 낯선 이국의 땅에서 절망하여 쓰러지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과 잘 짜여진 내러티브로 표현한 <깊고 푸른 밤>(1984), 첫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보고서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 80년대 발표한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일찌감치 상업적 흥행감독으로서 입지를 확실하게 다졌다.

    흥행의 부담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그는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도전을 시도한 <황진이>(1986),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 <꿈>(1990) 등의 작가주의 계열의 작품을 꾸준히 연출한다. <꿈>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의 설화를 영화로 옮긴 것으로 수도승 조신이 화랑 모례의 약혼녀 달례를 빼앗아 달아나자 모례가 그 뒤를 쫓는다는 이야기. 달례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파계승이 된 조신의 고통과 좌절을 통해 인상의 무상함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나약함을 깊이 있게 살핀 철학적인 영화이다.

    롱 테이크와 미장센을 중시하면서 예술성을 강조한 이들 작품은 배창호 감독이 나름대로 영화미학적 성찰을 끊임없이 연구, 실험을 모색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계기가 되었으나 흥행에서는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전작의 성공에 안이하게 영합하려 했던 <고래사냥2>(1986)와 화려한 톱스타로 성장한 한 여인이 위선과 허울을 과감히 포기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천국의 계단>(1992)은 배창호가 처음으로 시도한 본격적인 여성영화였지만 평범한 멜로드라마에 그치고 말았다.

    계속된 흥행실패로 인해 3년간의 공백기를 거친 후 그는 1995년 ‘배창호 프로덕션’을 설립, 대기업 자본으로 젊은 관객층을 겨냥한 <젊은 남자>(1995)로 다시 메가폰을 잡았다. 모델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젊은 한 남자가 부와 여자, 쾌락에 점차 물들어 가며 타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한 인터뷰에서 배창호가 밝힌 바 있듯이 <이유 없는 반항>, <태양은 가득히>등의 계보를 잇는 젊은 날의 강렬한 욕망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맡는 청춘영화이다. 청춘스타 이정재와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신은경이 주연을 맡아 호연했으며 물질만능과 쾌락의 9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감각을 제대로 포착하여 상업적 감각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자신의 프로덕션에 처음으로 제작한 <젊은 남자>의 성공에 고무된 그는 오래 전부터 기획한 일상 속에 잔잔히 녹아있는 사랑의 모습을 포착한 자전적인 영화 <러브스토리>(1996)를 발표한다. 실제 아내인 김유미를 출연시켜 관심을 끌었다. <러브스토리>는 자신의 실제 연애담을 보여줌과 동시에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과장하지 않고 아름답게 미화하려고도 하지 않은 사랑의 이야기이다.

    의욕적으로 도전한 <정>(1999)은 프랑스 베노데 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최우수 관객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국내 개봉에서는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정겨운 시골 풍경과 전통 혼례식, 옹기장이, 옛 장터 등 한국적 정서를 잘 포착한 화면이 무척 아름답다. 지금은 노파가 된 순이가 자신의 기구한 삶을 돌아보는 형식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열여섯 나이에 시집과 남편의 외도로 집을 떠나게 되고 어려움 끝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지만 그를 사고로 잃고 또다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많은 여인의 이야기를 여백이 있는 미장센에 담아내었다.

    독립제작 방식으로 만든 <러브스토리>,<정>이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며 의기소침했던 그는 2001년 총 4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미스테리 스릴러 <흑수선>으로 야심 찬 도전을 한다. 이미연, 이정재, 정준호, 안성기 등 최고의 스타를 동원하고 현재와 50년 전의 시간을 넘나들며 거제도 포로 수용소를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는 블록버스터.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진지한 시각과 공들인 스펙터클한 화면 등이 인상적이었지만 관객동원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80년대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인정받았던 그의 시대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소박하고 잔잔한 그의 영화세계는 현재의 관객과 조우하기엔 멀어진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배창호의 영화에는 늘 사랑과 젊음이 숨쉬고 있다. 차갑고 무덤덤한 현실은 우리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히 따듯한 사랑이 존재하리라는 소박한 믿음이 간직된 그의 영화는 그래서 여전히 위안으로 남는다. 현재 산업화에 밀려 점차 사라져 가는 전통적인 우리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70년대 장터를 떠돌아다니는 대장장이를 통해 그린 초저예산 독립영화 <길>을 촬영했으며, 20여 년 동안의 의사다난했던 영화감독 인생을 돌아본 자전적 에세이 '창호야 인나 그만 인나'(2003,여백미디어)를 발표하기도 했다. 2004년 신설되는 건국대학교 디자인 문화대학 예술학부 영화예술전공 초빙교수. 최근작으로 2009년 <여행>을 발표했다.

  • 2012.12.23 (일)

    저 하늘에도 슬픔이
    감 독 : 김수용
    출 연 : 이만성, 김인문, 서인석
    1984년 작
    컬러, 95분
    15세

    줄거리
    1960년대 초 불과 11세밖에 안된 윤복은 위로 병든 아버지와 밑으로 3남매를 거느린 다섯 식구의 가장이다.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도 않은 폐허의 한 구석에서 모진 세파와 안쓰럽게 대결한다. 윤복은 학교가 끝나면 껌팔이, 구두닦이로 골목을 누빈다. 이런 오빠를 돕겠다고 순나는 거리로 뛰쳐 나오지만 지탱하기란 힘겨운 노릇이었다. 그런 과정에도 윤복은 하루도 빼지 않고 일기를 쓴다. 이런 사실이 담임 선생님과 김동식 선생님에게 발견된다. 이 두 선생은 비굴하게 살지 않는 윤복을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순나가 돈을 벌겠다고 집을 떠나고 그 무렵 김동식 선생의 주선으로 윤복이의 일기(저 하늘에도 슬픔이)가 책으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로 부상된다. 그것도 모르는 윤복은 순나를 찾아 서울로 올라온다. 방황하던 윤복은 기자들의 추적으로 남대문 지하도에서 발견되어 자신의 영광을 비로소 깨닫는다.

    해설
    대구 명덕초등학교 5학년 이윤복 어린이가 쓴 수기를 바탕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소년가장의 고달픈 삶을 그리고 있다. 본 영화는 김수용 감독이 1965년 완성한 동명의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리메이크 하였다. 1965년 영화는 감독 김수용 감독, 기획 최현민, 각본 신봉승이 트로이카를 형성하여 당시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원작 수기는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도 국제극장에서 개봉되어 흑백영화의 흥행 기록(29만 명)을 세우는 등 1965년도 관객동원 1위에 올랐다. 당시 서울 인구는 500만 명. 그러나 영화검열 과정에서 비참한 산동네를 부각시켰다는 이유로 영화가 보류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한국 64. 12. 27) 이후 무허가 판자촌을 원경에 담은 ‘어둠의 자식들’ 등에서 비슷한 장면이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경화 프로덕션은 이윤복 어린이에게 원작료 10만 원과 시나리오료 15만 원 등 총 25만 원을 지불, 대구에서의 개봉 첫날 수입도 이윤복 어린이에게 보내졌다. 1970년 이상언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속)’이 제작되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20년 만인 1984년 김수용이 이를 리메이크했으나 역시 흥행에 실패했다. 그 외 한명구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2007, 인정시네마)가 있다.

    감독
    1929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58년 <공처가>로 데뷔해, 총 109편의 영화를 연출했으며 그 가운데는 수작과 태작이 공존한다는 평가. 오영수의 원작을 영화화한 <갯마을>(1965)을 비롯해,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원작인 <안개>(1967), 차범석의 희곡을 영화화한 <산불>(1967)과 김동리, 김유정 토속적 작품세계 등을 영화로 만들며 ‘문예영화’를 가장 많이 만든 감독. 1960년대의 한국영화의 산업-정책-비평 등을 김수용이라는 프리즘을 통하면 잘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1960년대는 그의 전성기였고, <사격장의 아이들>을 만든 1967년은 <안개> <산불> <어느 여배우의 고백> 등 무려 10편을 연출했던 왕성한 작품활동 시기였다. ‘한국의 안토니오니’ 라는 별명을 듣게 했던 <안개>(1967)를 비롯해, <야행>(1977), <화려한 외출>(1977) 등은 관습적 내러티브 영화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형식실험을 시도했던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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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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