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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 (2014) Factory Complex
평점 9.3/10
위로공단 포스터
위로공단 (2014) Factory Complex
평점 9.3/10
장르|나라
다큐멘터리
한국
개봉 | 영화시간/타입/나라
2015.08.13 개봉
95분, 15세이상관람가
감독
(감독) 임흥순
주연
(주연) 김진숙, 신순애, 이총각, 김영미, 강명자
누적관객
꿈과 행복을 찾기 위한 `일`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총 제작기간 3년! 22,000km의 기나긴 여정!
독창적 스타일에 담긴 따뜻한 마음, 2015 휴먼 아트 다큐멘터리!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변모했지만, 공장 속 여공1, 여공2는 빌딩숲 속 미생1, 미생2로 이름만 바뀌었다. 나이키 공장에서 일해도 나이키 운동화를 신을 수 없었던 어제의 그녀와 슬퍼도 웃어야만 하는 감정노동의 굴레에서 신음하는 오늘날의 그녀까지 40여 년을 아우르는 이들의 과거와 현재가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진다.

생존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저마다의 꿈을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어제 그리고 오늘의 우리가 말하는 눈물, 분노, 감동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ABOUT 베니스 비엔날레(Venezia Biennale) ]


세계 3대 비엔날레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이탈리아 국왕 부처의 제25회 결혼기념일을 축하하여 베니스시가 창설한 미술전시회로, 세계 현대 미술계에서 ‘휘트니 비엔날레’, ‘카셀 도쿠멘타’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행사로 꼽힌다. 미술뿐만 아니라 영화ㆍ건축ㆍ음악ㆍ연극 등 5개 부문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시각에 독립된 행사를 벌이고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상은 본전시 1명, 국가관 1명에게 수여하는 황금사자상과 역량 있는 젊은 작가 1명에게 수여되는 은사자상이 있다. 그리고 비엔날레 총감독과 심사위원에 따라 공로상과 특별상이 수여되기도 한다. 심사는 세계적 권위를 가진 미술관장이나 미술사가, 평론가들4~5명이 초청돼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또한, 그 해 전시 감독이 누구인가는 비엔날레의 가장 큰 화제다. 이 같은 국제적인 대형 전시에서 예술감독은 자신이 지지하는 작가와 작업의 경향을 소개할 뿐 아니라 전시를 통해 동시대의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입장을 표명하곤 한다.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 총감독인 오쿠이 엔위저(Okui Enwezor)는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평소 동시대 예술의 사회경제정치적 조건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큐레이터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는 ‘모든 세상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라는 타이틀 아래 전 세계 53개국 작가 136명을 초청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전시 총감독(Curator)이 담론을 담아 구성하는 본 전시이다. 93년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고(故) 백남준 작가조차 본 전시가 아닌 국가관별 전시의 독일관 대표로 참가했을 만큼, 본 전시의 위상과 진입 장벽은 매우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러한 본 전시에서 <위로공단>은 한국 영화 최초로 영화 전편을 상영하는 이례적인 업적을 이뤄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과거 한국의 구로공단과 현재의 캄보디아를 잇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실존 인물들의 인터뷰와 독창적인 스타일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지며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학적 성취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와 세대에 통용되는 유효한 질문을 던진 작품으로써 “아시아 여성들의 노동조건과 관련된 불안정성의 본질을 섬세하게 살펴보는 영상작품”, “자본 이동과 노동 변화에 따른 현실 불안을 예술적 언어로 써내려간 새로운 역사기록”이라는 심사위원단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 ABOUT MOVIE ]


최초! 이변! 파격! 전 세계를 뒤흔들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최초 은사자상 수상!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초청!
전 세계 영화계와 미술계 모두를 사로잡은 유례 없는 다큐멘터리!

세계 최대의 미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본 전시에 영화 전편이 그대로 상영된 데 이어 한국 작가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린 미술가 겸 영화감독 임흥순의 <위로공단>은 생존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저마다의 꿈과 행복을 위해 일해 온 사람들의 눈물, 분노, 감동의 이야기를 생생한 인터뷰와 감각적인 영상으로 풀어낸 휴먼 아트 다큐멘터리다. <위로공단>은 <노예 12년>을 만든 스티브 맥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인 아이작 줄리앙, 페미니즘 영화의 숨은 거장인 샹탈 애커만 등 전 세계 53개국 작가 136명과 영예로운 경합을 펼친 끝에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한국 영화 사상 최초이자 한국 미술 사상 최초의 이례적인 기록이라는 독보적인 행보를 입증이라도 하듯, <위로공단>은 지난 6월 개막한 제18회 상하이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쾌거를 달성하며 또 한 번 이목을 집중시켰다. 93년 중국에서 최초로 출범한 국제 영화제이자 국제 영화 제작자 연맹(FIAPF)의 공인을 받은 중국 대표 영화제인 상하이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위로공단>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최초로 상하이국제영화제 공식경쟁 부문인 ‘골든 고블렛 어워드’에 진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자로 참여한 자연 다큐멘터리 <비룽가(Virunga)> 등 4개 작품들과 함께 열띤 경합을 펼쳤다. 또한, 제39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오브 더 월드 부문 초청, 제40회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언급,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된 데 이어 제3회 무주산골영화제 한국영화경쟁 부문 ‘창’ 섹션에서 ‘무주관객상’을 거머쥐며 “여성 노동자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들의 내면을 아우르는 정서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신선한 작품”이라는 호평을 이끌어내며 세계 영화계와 미술계는 물론 국내에서도 그 뛰어난 위상과 가치를 입증했다.


3년의 제작기간, 22,000km의 여정, 65명의 인터뷰
한국을 넘어 캄보디아, 베트남까지
긴 시간과 여러 장소, 수많은 이들을 거쳐 탄생한 웰메이드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은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스에 약 2년간 머물던 임흥순 감독이 옛 구로공단 지역을 둘러보던 중 ‘그 많던 구로공단의 여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린 데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궁금증과 더불어 40년이 넘게 봉제공장 ‘시다’ 생활을 했던 어머니와 백화점 의류매장과 냉동식품 매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해온 여동생, 보험설계사인 형수의 삶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임흥순 감독은, 구로공단에서 실제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과 첫 인터뷰를 한 후 본격적으로 <위로공단>을 기획, 3년 여의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직군에 종사하는 일하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공장 등 촬영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제작진은 현존하는 촬영 카메라 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는 레드 에픽 카메라부터 스마트폰 카메라 등 다양한 촬영 장비들을 동원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주력했다.

<위로공단>에는 임흥순 감독의 어머니를 비롯해 여성 노동자 21명, 역사의 현장을 직접 카메라에 담은 사진사 1명이 등장해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작진은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노동인권단체 관계자, 사회 활동가, 심리학자, 여성학자 등 65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 중 직접 경험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들을 들려준 22명의 이야기들만이 영화 속에 담겨있다. 이들의 이야기 속엔 1978년 동일방직 회사 측이 노동조합의 대의원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 여공들에게 똥물을 끼얹은 동일방직 오물투척 사건, 1979년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여성 노동자 중 한 명이 강제 진압과정에서 사망한 YH무역 사건, 2005년 7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로 촉발된 기륭전자 사태 등 우리 현대사의 아픈 기록들이 담겨 있다. 여기에 감정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고달픈 삶을 이어가고 있는 마트 점원, 콜센터 상담원, 승무원 등 오늘날의 직장인들까지 40여 년을 아우르는 그들의 이야기는, 세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사람들의 내면의 풍경이 여전히 닮아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위로공단>은 한국을 넘어 캄보디아, 베트남에 이르는 월드 로케이션을 진행,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2015년의 오늘, 캄보디아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과거 우리의 모습과 맞닿아있어 더욱 공감을 자아낸다. 이렇듯 22,000km의 기나긴 여정을 통해 여러 장소의 기록들을 담아낸 <위로공단>은 그 놀라운 여정만큼이나 깊은 울림을 전하는 이야기들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과 일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가치를 되물을 예정이다.


꿈과 행복을 위해 일해 온 사람들의 눈물, 분노 그리고 감동을 그린 휴먼 드라마!
'국제시장 세대'부터 '미생 세대'까지 모두를 사로잡을 영화!

이 시대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헌사 <위로공단>은 이 사회를 만들어 오고 지탱해온 ‘국제시장 세대’와 미래를 책임질 ‘미생 세대’까지 여러 세대들이 함께 어울려 볼 수 있는 세대 공감영화다. <위로공단>은 브랜드 운동화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지만, 자신이 만든 운동화를 사서 신을 수 없었던 여공들부터 시작해 시급으로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밥 한 끼 사먹을 수 없는 이 시대의 미생까지 과거와 현재에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다를 바 없는 일하는 풍경을 데칼코마니처럼 비추며 공감을 자아낸다.

40여 년의 세월을 아우르며 각 세대의 일하는 풍경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만나게 하는 <위로공단>은 사람들이 발 디디고 서 있는 산업 환경은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바뀐 것처럼 변모했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처지는 현재로 귀환된 과거의 모습임을 여실히 나타낸다. 내 집 마련은 요원한 일이며, 일을 할수록 가난해지고, 꿈과 희망을 쫓아 일을 하는 것은 사치로 여겨지는 모습은 그때 그 시절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로 남아있다. <위로공단>에는 마치 나의 엄마, 언니, 이모를 떠올리게 하는, 어디서나 쉽게 만나 봄직한 보편적인 인물들이 인터뷰로 등장해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들이 전하는 진정성 넘치는 이야기는 우리가 모른 채 살았던 각 세대의 삶을 응시하게 함과 동시에 서로를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임흥순 감독이 건네는 진심 어린 따스한 위로 <위로공단>은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위로 받을 수 있게 하며 세대간의 소통 창구를 열어주는 영화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변방의 아티스트에서 단숨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다!
미술가 겸 영화감독 임흥순에게 시선 집중!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임흥순 감독은 사실, 그 이전부터 꾸준하게 변방에서 삶의 예술을 실천해온 예술가이다. 그는 노동자로 살아 온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점점 더 소외되어가는 노동자 계층과 지역, 여성, 공동체 문제에 관심을 두고 다큐멘터리 영화와 공공미술, 전시장과 극장 그리고 생활현장을 오가며 다양한 형태의 작업물을 만들어 왔다. <위로공단> 이전에는 가난의 이념을 독특한 형식적 스타일로 구현해 낸 <내 사랑 지하>(2000),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 헌정한 <긴 이별>(2011) 등의 단편 작업을 비롯, 과거 제주 43과 오늘날의 강정마을 이슈를 현대 미술로 재현해 낸 다큐멘터리 <비념>(2012) 등을 연출했다. 이처럼 그의 작품들은 개인의 역사로부터 시작해 사회 문제를 들여다 보며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아이러니를 깊이 있게 성찰해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꾸준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변방의 아티스트 임흥순 감독이 <위로공단>을 통해 세계 속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주류 사회를 뒤흔들었다는 점은 미술계와 영화계 모두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삶과 일터에서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수많은 이들에게 바치는 임흥순 감독의 헌사의 영화 <위로공단>은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으로 입증된 뛰어난 미학적 성취를 보여줄 것은 물론, 꿈과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해온 모두의 삶을 어루만지는 임흥순 감독의 따뜻한 메시지로 관객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




[ KEYWORD로 보는 위로공단 ]


<위로공단>은 역사 속 신념을 잃지 않고 일했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위로공단>이 비추는 1970년대부터 2015년에 이르는 세월 속엔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처지를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게 하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눈물이 배어있다. <위로공단> 속에서 스치듯 지나간 그 역사의 현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1) 동일방직 노동자 투쟁
동일방직 인천공장은 전체 1,300명의 노동자 중 1천 명 이상이 여성인 사업장으로서 이미 1946년에 노조가 결성되었으나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다가, 72년 한국 최초로 여성 지부장 주길자를 선출한 이래 도시산업선교회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활발한 노조활동을 진행해왔다. 76년 7월 23일 노조지부장 이영숙이 경찰에 연행된 틈을 타 회사 측의 사주를 받은 고두영이 회사 측 방침에 순응하는 대의원 24명만을 모아 대의원대회를 열고 자신을 지부장으로 선출케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수백 명의 여성 조합원들은 즉각 농성에 돌입, 회사 측의 처사에 항의했다. 농성조합원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투입되자, 70여 명의 조합원들은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저항했으나 경찰은 곤봉과 주먹을 휘두르며 이들을 무차별 연행, 40여 명이 기절하고 14명이 부상하는 등 현장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한편 ‘동일방직분규 수습대책회의’의 합의사항에 따라 이총각을 지부장으로 하여 새롭게 구성된 집행부는 78년 2월 21일을 대의원 선거일로 공고하고 준비 중이었는데, 선거 당일 회사 측에 매수된 남성노동자 4명이 투표장을 기습, 부근에 있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끼얹으며 노조 사무실을 습격, 조합원들을 집단 폭행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방조하고, 전국섬유노조는 3월 6일 동일방직노조를 사고지부로 처리, 이총각 지부장 및 총무부장 등 4명을 제명했으며, 회사 측은 124명의 조합원을 무더기 해고시켰다.

2) YH무역 농성사건
1979년 8월 9일부터 11일까지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동에 있던 YH무역 노동자 200여 명이 회사 측의 부당한 폐업 공고에 반대해 마포구 신민당사에서 회사 운영의 정상화와 노동자들의 생존권 요구를 주장하며 벌인 농성 투쟁 사건을 말한다. YH무역은 1966년 자본금 100만원, 종업원 10명으로 설립한 작은 가발 제조업체였으나, 가발 경기의 호황과 정부의 수출 지원책에 힘입어 1970년대 초 종업원이 최대 4,000여 명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후 창립자인 장용호는 미국에서 백화점 사업체를 설립해 외화를 빼돌리고 은행 빚을 얻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으나, 1978년 제2차 석유파동 이후 가발산업의 후퇴와 수출 감소 등으로 인해 회사 운영이 어려워지자 노동자를 500여 명으로 줄이고, 이듬해 4월 폐업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폐업 철회와 임금 청산, 고용 승계를 위한 농성을 시작했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을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1,000여 명의 경찰이 신민당사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르며 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했고, 취재하던 기자 및 신민당 소속 국회의원•당원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노조 집행위원장인 김경숙이 사망했고, 경찰을 제지하던 172명의 여성 근로자와 신민당 당원 26명이 강제 연행되었다.

3) 구로동맹파업
대우어패럴 노동조합 김준용 위원장의 구속으로 시작, 노조 탄압에 연대투쟁으로 맞선 구로지역 민주노조들의 동맹파업으로,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최초의 동맹파업이자 이후 대한민국 노동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85년 6월 22일 구로 지역의 중심 노조였던 대우어패럴 김준용 위원장에 대한 정부의 구속조치가 파업의 발단이 되었다. 6월 24일 대우어패럴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는 것을 신호로 효성물산•가리봉전자•선일섬유가 즉각 파업에 돌입했고, 25일에는 남성전기•롬코리아가, 28일에는 부흥사 노조가 동맹파업에 가담함으로써 참여 노조 숫자는 총 10개, 노조원은 약 2천 5백여 명에 달했다. 또한, 동맹파업을 지지하는 노동자•학생•재야단체가 가리봉 5거리에서 가두사위를 벌였고, 농성해산 당일에는 10여 명의 학생들이 지붕을 넘어 대우어패럴 농성장에 합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들은 모두 강제해산 당했고, 마지막까지 농성을 벌이던 대우어패럴마저 농성장 벽을 뚫고 진입한 회사 측의 보복조치로 해산, 천여 명에 달하는 노조간부와 핵심조합원들이 해고되는 등 구로동맹파업은 많은 피해를 내고 끝났다.

4) 기륭전자 사태
기륭전자 사태는 2005년 7월 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한 뒤 이어진 비정규직 해고사태로부터 시작됐다. 2005년 기륭전자에 노동조합이 설립됐을 때, 생산직 노동자 300여 명 중 정규직은 단 15명 뿐이었다. 특히 파견직 노동자들은 기본급이 법정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641,840원으로, 잔업 100시간을 일해야 100만원의 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최악의 수준이었다. 노조는 이에 대응해 점거농성과 파업을 벌였고 그 해 10월 기륭전자는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으나, 오히려 생산라인을 도급으로 전환하고 80여 명을 해고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에 노조가 삭발, 단식, 고공농성등을 벌이며 정규직화 투쟁을 지속하면서1,900여일동안 수십 차례의 교섭과 결렬을 반복해 왔다.

5) 캄보디아 유혈사태
캄보디아 의류 노동자들은 월 9만원이 되지 않는 최저 임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며 최저임금을 월 15만원 이상으로 인상해줄 것을 2013년 내내 요구해왔다. 캄보디아 정부가 주도한 노동자문위원회의 실태조사반도 월 15만원 이상으로 임금인상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의류산업 업체를 의식한 캄보디아 정부가 월 11만원 수준으로만 인상하겠다고 발표하자, 캄보디아 노동조합은 총파업을 감행했다.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자 한국, 일본, 중국 업체들은 자국 대사관을 통해 캄보디아 정부에 사태 해결(강경진압)을 촉구하였다. 특히 한국 대사관은 캄보디아 당국에 서한을 보내 한국 업체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후 2014년 1월 2일, 노동자들이 한국 의류업체 약진통상 앞을 행진할 때 캄보디아 정예 특수부대가 노동자들을 습격했다. 무차별 구타와 폭행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5명의 승려를 포함한 10명이 연행되었다. 폭력 진압이 자행된 다음 날인 1월 3일, 캄보디아 헌병대 및 경찰은 노동자들에게 실탄을 발사했고, 이 총격으로 5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이틀에 걸친 진압으로 체포된 23명의 노동자와 승려, 활동가들은 지금까지 어디에 구금되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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