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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 (2007) Hansel and Gretel
평점 7.7/10
헨젤과 그레텔 포스터
헨젤과 그레텔 (2007) Hansel and Gretel
평점 7.7/10
장르
판타지/드라마
개봉
2007.12.27 개봉
영화시간/타입/나라
116분, 12세이상관람가
나라
한국
감독
(감독) 임필성
주연
(주연) 천정명, 은원재, 심은경, 진지희
누적관객
가지 마세요...
우린 나쁜 애들 아니에요

“그러게, 빵가루를 떨어뜨리며 갔어야죠!”

어릴 적 떠나간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 은수는 사고로 정신을 잃는다.
깊은 밤, 숲에서 눈을 뜬 그의 앞에 돌연 나타난 소녀.
은수는 홀리듯 그녀를 따라 세 아이가 살고 있는 ‘즐거운 아이들의 집’으로 향한다.
그림책에서 빠져 나온 듯한 집은 장난감과 과자로 가득찬 아이들의 천국.
하지만 전화는 불통이고 숲은 아무리 헤매어도 출구를 찾을 수 없다.

“우린 뭐든지 다 있어요. 상상만 하면 못 할게 없거든요.”

바깥 왕래가 없는데도 늘 풍성한 식탁, 다락에서 흘러 나오는 기이한 울음소리, 아이들이 알려준 대로 가 봐도 미로처럼 제자리로 돌아오는 숲. 설명할 수 없는 일들 속에 은수는 아이들에게 비밀이 있음을 감지한다. 아이들을 무서워하던 엄마, 아빠는 설상가상 메모 한 장 남긴 채 사라지고, 아이들은 석연찮은 변명만 늘어놓는다. 며칠 후, 마치 아이들의 계획인양 또 다른 길 잃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집을 찾아오고, 은수의 불안과 의구심은 더욱 깊어만 간다.

버려진 아이들의 잔혹한 상상, 헨젤과 그레텔

[ about movie ]

200 여 년 전, 숲 속에서 길을 잃었던, 아이들
그들이 들려주는 못 다한 이야기, 잔혹동화 <헨젤과 그레텔>

다시 태어난 잔혹동화 <헨젤과 그레텔>

200년의 시공을 건너 뛰어 영화로 다시 태어난 <헨젤과 그레텔>. 동화 속 오누이와 ‘과자로 만든 집’은 2차원의 그림책을 빠져 나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3차원적 실체를 얻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히 동화의 복원에 머물지 않는다. 굶주림에 지친 부모가 자녀를 숲 속에 갖다 버린, 당시 유럽에서 비일비재했던 실화에 기초한 그림동화의 텍스트에서 모티브를 빌려 오되 동화가 쉽게 던진 해피 엔딩을 되짚어 보는 데서 시작한다. 만약 ‘헨젤과 그레텔’ 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아이들끼리 숲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면? 이라는 잔혹한 상상이 영화의 출발점이다.


동화 vs 영화

어린 오누이 vs 사춘기의 소년, 소녀 그리고 막내

동화 속 오누이는, 영화에서는 막 사춘기에 접어든 맏이 만복(은원재)과 둘째 영희(심은경), 그리고 막내 정순(진지희)의 세 아이로 바뀌었다. 버려진 아이들이란 설정은 동일하나, 영화 속 세 아이는 ‘순수하기’만 한 아이들과는 거리가 있다. 빵가루를 뿌려 길을 표시했던 지혜는 거꾸로 어른들을 길을 잃게 만드는 영특함으로 대체되고, 마녀의 꾐에 넘어갔던 순진함은 ‘이번엔 괜찮을지’ 어른들을 지켜보는 속 모를 의뭉스러움으로 변형되었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과자로 만든 집 vs 어른들을 붙잡아 놓는 즐거운 아이들의 집
동화의 ‘과자로 만든 집’은 마녀가 아이들을 잡아먹기 위해 만든 집이었으나 영화 속 아이들의 집은 길 잃은 어른들을 붙잡아 놓기 위해 아이들이 장치한 일종의 덫이다. 물론 아이들이 만든 집이다 보니 각종 장난감이 어우러진 아이들의 천국. 하지만 빠져나갈 길 없는 어른들에게는 악몽의 공간이 된다.


동화 속 마녀 vs 영화 <헨젤과 그레텔>의 어른들
동화와 영화는 아이와 어른의 역관계가 정반대다. 마녀가 아이들의 우위에 서 있었다면 영화는 아이들이 주도권을 쥔다. 마녀를 무찌르고 집으로 돌아갔던 동화 속 오누이와 달리 돌아갈 집이 없는 아이들은 스스로 집을 만들고 부모를 직접 찾기로 한다. 자기들밖에 길을 모르는 미로 같은 숲 속에서 어른들을 꼼짝 못 하게 묶어 놓고 지켜보는 것이다. 어른들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 하면? 결과는 오직 아이들만 알고 있다. 또한, 아이들을 버리거나 잡아먹으려 했던 나쁜 어른 일색인 동화의 구성과 달리, 영화 속 은수(천정명)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로 그려진다. <헨젤과 그레텔> 속 반복되는 악몽을 풀 열쇠를 쥔 이도 바로 은수다.


아이들의 순진한 상상이 어른들의 악몽으로-
악몽의 네버랜드를 시각화한 프로덕션 디자인

아무도 길을 모르는 깊은 숲 속 외딴 집. 아이들이 어른들을 유혹하기 위해 지은 집을 만들
기 앞서 미술팀은 어린 시절을 돌아보았다. ‘헨젤과 그레텔’의 세 아이처럼 상상만 하면 뭐
든지 할 수 있었다면 그 시절 가장 갖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아이라면 누구나 세상의 모
든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한다. 밤이 되어, 모두가 잠들고 난 어느 시간, 장난감들이 깨어
나 속닥거리고 돌아다닐 거란 상상에 깨어있으려 애써 본 기억도 있다. ‘즐거운 아이들의
집’은 그런 기억과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출발. 온갖 장난감들로 가득 한 아이들의 낙원으로
태어났다. 벽지 속 토끼는 핑크 드레스에 싸여 기사의 영접을 받고 연기를 내뿜는 증기
기관차가 거실을 달리며 포옥 감싸 안길 만큼 큰 곰 인형이 마루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
름다운 환상은 여기까지다. 부모의 사랑을 받은 적 없이 버려진 아이들의 분노와
사랑해 줄 어른들을 찾으려는 아이들의 절박함이 [헨젤과 그레텔]이 처한 현실. 그 결과,
아이들에겐 낙원이지만 어른들에게는 탈출 불가능의 악몽이라는 이 집의 이중성은 목 잘린
인형들, 빨간 눈을 치켜 뜬 토끼 등 언뜻 봐선 눈에 띄지 않는 섬뜩함으로 구석 구석에 도
사린다. 동화라는 장치 속에 부모가 아이가 버린다는 잔혹한 현실을 툭 내던졌던 [헨젤과
그레텔]처럼, 그림책같이 아름다운 집 안 곳곳에 잠복한 괴이함은 아름다움이 강할수록 섬
뜩함이 강조되는 언밸런스한 악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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